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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Jun 30. 2022

[책리뷰] 작별인사 by 김영하

삶과 죽음, 기계와 인간

 대학시절, 철학개론을 들으면서 썼던 글이 기억이 난다. 죽음도 삶의 일부이라는 사유를 풀어서 썼던 글이었는데 그 때의 생각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그래서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동물의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는데 나는 아픔에 대한 공포는 있어도 경험해보지 않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럼에도 의문을 품은 일은 많다. 어디까지가 '나'이며, 나의 의식이며, 내가 누구이며, 여기가 어디인지는 늘 고민한다. 그에 대한 김영하 작가의 답변을 참고해보시길.



P. 106~7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중략) 설계자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요소를 프로그래밍한것은 단지 그것들이 더 잘, 문제 없이 오래작동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였지만, 그 결과로 이들은 궁지에 몰린 인간들처럼 잔인하고 무정하게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럴 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 되었다.



P. 163

"우주정신이 절대적인 의식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믿는 우주정신은 절대적인 의식과는 달리 생명체로 태어나 개별적인 자아로 존재하는 것도 허용하는 거야. (중략) 그리고 그 생명체 중의 극소소는 우주와 우주정신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존재이고,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지만, 우주정신이 그렇게 한,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어."


P. 164~5

 "마음이라. 마음이 뭘 말하는지를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기억일까요, 어떤 데이터 뭉치일까요? 또는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감정의 집합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뇌나 그 것을 닮은 연산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어지러운 환상들일까요?"


P. 194

"어디 인간 같지도 않은 게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거야.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 휴머노이드는 저렇게 실려가면 간단하게 기억을 지운 후에 해체하고 부품을 재활용해. 그런데 나를 봐. 인간의 육체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죽음은 쉽게 오지도 않고, 고통은 끝도 없어. 인간에게는 인권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게 있어서 그냥 죽어지지가 않아. 걔들이 뭐가 불쌍해? 나, 나, 인간으로 태어나 늙어가는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저 기계들이나 개새끼들이 아니라."


P. 203

인간은 지독한 종이야.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이라는 걸 받아들여.


P. 222

"나는 이제 인간에게는 믿음이 없어."


P. 228

"철이를 어떤 목적으로 만드셨든, 철이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겁니다. 그게 박사님이 생각하시는 바람직한 인간의 정의에도 부합하리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마치 철이를 성숙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척 하지만, 그의 개별성은 지워버릴 생각이잖아.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개 노드로 만들어버릴 거잖아. (중략) 오직 효율만 추구하는 기계 문명의 부품이 될래?"


P. 265

 나는 한동안 순수한 의식의 상태로 존재했다. 달마는 내 뇌의 매핑을 바꿔 있지도 않은 육체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러자 후러씬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육체가 없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나의 의식은 처음부터 내 육체가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어여, 육체로부터 그 어떤 자극도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런 상태에 적응하게 되리라.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P. 276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P. 288

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묻는다. "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라고. 거기까지 읽었을 때, 선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P. 291

바깥이 소란한 것 같아 문을 열고 나가보니 클론과 휴머노이드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한 명씩 다가와 차례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들이 어떻게 선이의 죽음을 알았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어쨌든 그들은 알았고,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


P. 293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거야.


P. 294~5

그러나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모른 채 휴먼매터스 캠퍼스에서 살아가던 그 철이가 아니었다. 그곳을 떠나 많은 것을 보았고,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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