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 그 중간 즈음 어디
그때는 회색지대에 서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비겁해보였다. 조선시대 거느리 두 종, 사월이와 언년이 싸움에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는 황희의 말은 기가 막힌 말이다. 둘 다 맞다니. 내 사전에 둘 다 맞는 일은 없었다. 친구와의 싸움에도 늘 나는 내가 맞았으니까.
사람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냥 좋거나 싫다는 말로 설명이 안되는 관계가 있다. 흔히들 말하는 애증의 관계의 색깔은 흑백이 아니다. 예를 들면 나와 시어머니와의 사이 말이다. 서로의 생활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의 대상이 아끼는 대상이 같음에도 그 방식에는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고 오롯이 서로를 안기에는 또 모자란 관계가 고부관계다. 하물며 신랑과도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은가.
회사에서는 또 어떤가. 회사는 그야말로 회식지대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흑과 백인 인간들이 만나서 서로 부대끼다가 자기 색을 잃고 다 회색이 되어버린다. 근데 사람들이 섞이면 그 색이 섞이는 것이 우리는 그것을 타협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겠다.
서른보다 마흔에 가까운 나의 오늘 검정색과 흰색 사이의 회색의 팔레트를 더 넓혀가는 중이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종류의 회색이 얼마나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