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rkingmom B Jun 12. 2022

회색인간

흑과 백 그 중간 즈음 어디

"꼭 과장님은 험담 하시다가 말미에는 '다 생각이 있겠지.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시더라구요. 그거 너무 웃겨요."


 내가 아끼는 후배가 나를 관통하는 말을 한다. 나를 너무 잘 안다. 정확히는 남 험담만 하는 너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그 말은 진심이기도 하다. 사람이 선과 악에 100% 기울어지는 힘들다. 아무리 악해 보이는 사람도 선한 구석 한 군데는 있기 마련이다. 20대의 나라면 지금의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누구보다 흑백인간처럼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뜨겁거나 차가웠다. 미지근한 법을 몰랐다. 흑백처럼 선명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고 왜 선명하지 않느냐고 비난도 했다. 

사람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한 친구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 표정과 행동을 보면 네 사람과 아닌 사람 구분이 명확하게 된다고. 


 그때는 회색지대에 서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비겁해보였다. 조선시대 거느리 두 종, 사월이와 언년이 싸움에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는 황희의 말은 기가 막힌 말이다. 둘 다 맞다니. 내 사전에 둘 다 맞는 일은 없었다. 친구와의 싸움에도 늘 나는 내가 맞았으니까.


 사람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냥 좋거나 싫다는 말로 설명이 안되는 관계가 있다. 흔히들 말하는 애증의 관계의 색깔은 흑백이 아니다. 예를 들면 나와 시어머니와의 사이 말이다. 서로의 생활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의 대상이 아끼는 대상이 같음에도 그 방식에는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고 오롯이 서로를 안기에는 또 모자란 관계가 고부관계다. 하물며 신랑과도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은가.


 회사에서는 또 어떤가. 회사는 그야말로 회식지대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흑과 백인 인간들이 만나서 서로 부대끼다가 자기 색을 잃고 다 회색이 되어버린다. 근데 사람들이 섞이면 그 색이 섞이는 것이 우리는 그것을 타협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겠다. 


서른보다 마흔에 가까운 나의 오늘 검정색과 흰색 사이의 회색의 팔레트를 더 넓혀가는 중이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종류의 회색이 얼마나 많을까.

작가의 이전글 [책리뷰] 타인의 집 by 손원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