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눈>
"핀란드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나요?"
내가 물었다.
마리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럼요, 아주 흔한 일이죠. 사실 그런 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괴물들>
처음부터 정열은 부재했고 따라서 퇴색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온함마저 변질 될 수 있음을 여자는 시간이 감에 따라 느끼고 있었다. 간간이 대화가 오가던 식사 자리는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어색해져갔다. 겉도는 기류가 마음속에서부터 확산됐고 여자는 그 허전함의 이유가 무엇인지 자주 혼자 고민해야 했다.
기억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아이들은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말썽을 피웠다. 젊음을 빼앗아가고, 인생을 주름지게 하고, 가정의 균열을 일으키는 악마들. 그런데 왜 그렇게들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고, 아이가 없는 것이 모자란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오랜 시간을 노력해 얻은 일조차 포기하는 것일까. 이미 자신이 거쳐온 길임에도, 아이를 향해 미련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기회만 있다면 외치고 싶었다. 결국 당신들도 잡아먹히고 말 거라고.
하루 사이에 아이들은 제 고치를 뚫고 나와 허물을 벗은 것 같았다. 몹시 어려 보이고 또 몹시 늙어 보였다. 문득 환영처럼 두 아이의 얼굴에 오래된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영겁의 세월을 거치고 아비 어미를 통과해 여자의 몸을 갈라낸 두개의 얼굴이 열일곱의 나이를 지닌 채 눈앞에 앉아 있었다.
<zip>
영화는 대체로 '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묘한 전율을 느꼈던 것 같다. (중략) 그 말은 그것을 지칭하는 뜻을 모두 담기엔 너무 깔끔하고 짧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석연찮은 동지애를 나누며 꽤 오랜 시간을 한 공간에 살아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러는 동안 영화고 기한도 서로를 처음 알게 된 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집안이 곪아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가 고름을 대물림하게 돼 있어.
(중략)
내면의 어둠은 바깥으로 발설할수록 몸집을 부풀려 결국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영화는 학창 시절과 짧았던 직장생활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왜 귀에는 덮개가 없을까. 눈은 감아버리면 되고 입은 닫아버리면 되고 숨은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참아버리면 그만인데 귀는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 걸까.
모든 일을 되뎔려 일어나지 않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가능한 쪽을 택하고 편 들어야 했다. 가능하고 확실한 건 눈 앞에 보이는 새롭고 무궁한 아이였다.
<아리아드네 정원>
나이라는 놈은 행동에 깃든 조심성을 앗아간다.
스스로의 얘기에 빠졌을 때는 몰랐는데 유리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눈을 빛내며 집중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내 졸린 표정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인의 얼굴에 언제나 걸려 있다고 느꼈던 옅은 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민아는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 아이들이 자신에게 깊은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은 민아만의 착각인 것일까.
"...... (중략) 어떻게 하면 사람이 그렇게 늘긍ㄹ 수가 있는거죠? 늙으면 다 그렇게 되는건가요?"
(중략)
"늙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몰라. 변한다는 걸 빼곤 확실한 게 없으니까."
"가장 답답한 건 젊다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에요. 젊음은 불필요한 껍데기 같아요. 차라리 몸까지 늙었으면 좋겠어요. 남아 있는 희망도 없이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건 절망보다 더한 고통이니까요."
<타인의 집>
좁은 공간은 인간을 좀 먹는다. 방의 벽들이 가운데를 향해 달려드는 듯한 방 안에서 느껴지는 옥죄는 고립감은 중력보다 무겁게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곤 했다. 대화의 기능을 상실한 입은 무언가를 먹으려 할 때만 제구실을 했고 그건 나 스스로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허기의 냄새가 내 인생의 냄새 같았다.
<상자 속의 남자>
물론 그들은 형에게 감사해했다. 그러나 감사의 대가는 통렬하다. 당엲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거짓말이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기에 하는 새빨간 거짓말일 뿐이다. 나는 깊은 밤 형이 고통과 회한에 울부짖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을 쉽게,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고, 그러곤 아무일도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있잖아,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만약이란 없어.
하지만 유일하게 위안 삼을 수 있는 점은, 아픔도 기쁨도 한 종류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거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사십 중반을 막 넘어선 그들의 관심사는 대부분 살기 위한 삶 그 자체, 말하자면 돈, 집, 차, 아이들, 주식에 관한 주제를 벗어나지 못했고 윤석은 그들과 다른 세계에 속한 자신과, 그들의 비루한 이야기를 철저한 관찰자로 바라볼 수 있는 스스로의 위치에 일말의 자부심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글쓰기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음'을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열리지 않은 책방>
마지막으로 'open'이라는 팻말을 잘 보익 걸어두면, 주인에게는 'close'라는 글자가 보인다. 밖에서는 열려 있고 안에서는 닫혀 있따. 그러니까 닫혀 있지만 열려 있는 책방이다.
손님은 길을 걷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인다. 줄인 것이 아니라 줄어든 것이다. 부유하던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멈춘다. 머무는 것이 아니라 멈춰진 것이다. 우구커니 서 있다는 그가 뒤를 돌아본다. 돌아본 것이 아니라 돌아보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