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이 난무하는 사교육에서 중심잡기
자식의 공부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 내가 공부한 기준을 아이에게 적용하면 부작용이 난다. 아이와 나의 결이 비슷하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끈임없이 연구하고 공부도 해야겠지.
나와는 다른 성향인 아이를 잘 지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고민이 되어 자연스레 여러 강의나 책을 많이 찾아봤다. 소위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절대로 선행을 하지 말라- 는 것이었다.
교육대기자티비의 방기자도 그렇게 많은 전문가들과 인터뷰하면서 초등생 자녀를 학원에 하나도 보내지 않고, 정승익 강사역시 자기 자녀들은 거의 안 시키고 있다고 하니 본인 자식들을 그렇게 지도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공통적으로 그분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흥미, 자기주도성을 바탕으로 한 홈스쿨이었다. 학원을 안 간다고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니니깐. 집에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학교를 즐겁게 최선을 다 해 열심히 다니는 것. 방기자님의 아이는 학교가 너무 좋아서 1등으로 등교한다고 하니 말 다 했지.
우리 아이도 학원?을 가장한 보육을 꽤나 다니고 있지만 얼마나 알차게 다니는지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좀 줄이고 싶은데 아이가 절대 못 끊게 하는 것들이 있고 내가 생각하기에 꼭 다녀야 하는 과목도 있고.
그놈의 자기주도학습은 어떻게 하는거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선행한다고 학원 등록해놓고 어중이 떠중이로 몸만 왔다갔다 하는 거다. 풀린 눈을 하고 학원 의자에만 앉아 있는다고 뭐가 되는게 아님을 잘 알고 있고, 혹여나 많은 학원 공급?으로 아이가 그렇게 되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제어하고자 한다.
사실 유아/초저때 가장 중요한 것은 1순위가 노는 거다. 놀이를 통한 몰입의 경험, 본인이 논다고 생각하면서 관심분야를 파고 포켓몬이든 곤충이든 자동차든 덕후가 되어 보는 것이 평생의 엉덩이 힘을 기르는 초석이 된다고 본다.
그게 바로 공부력이고, 공부력은 자존감+자신감+자아효능감+집중력+주의력+몰입경험의 합산인 것 같다.
어릴 때는 공부조각(독서, 직간접경험) 줍줍 하다가 나중에 그 조각들을 스스로 연결하는 유레카 모먼트가 와서 스티브잡스가 점을 선으로 연결했듯 뭔가가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제공해 주면 안된다. 스스로 하도록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공간을 줘야 한다. 무엇보다 결핍은 필수다. 결핍에서 오는 동기야말로 결국 자기주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기자분은 아이들과 외출시 자차대신 버스, 지하철을 탄다고 한다. 포인트 A에서 B로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 보다는 대중교통을 타며 다리도 아프고 사람들 구경도 해봐야 진정한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핍이 아이들을 더 단단하게 해준다고.
공부도 마찬가지다. 결핍을 줘야 오히려 더 습득하게 된다. 어떻게 아이에게 결핍을 줄 수 있을까? 나도 돌이켜 보면 영어가 고팠다. 그래서 영어를 그렇게 찾아 습득했고 그 과정이 재미있었나보다. 그러다보니 잘 하게 된거고.
그렇다고 영어 숫자 원천차단한다고 아이가 스스로 찾아서 하겠나? 흥미유발-> 스스로학습이 제일 이상적인데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사 모두 쉬울테니깐. 공부는 원래 하기 싫은건데 그냥 해야 하는거라고 조선미 교수님도 말했다. 그래서 결론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긴 시켜야 한다. 자기가 알아서 찾아 하는 유아/초저는 유니콘일 뿐.
그러나 공부를 하는 것과 무분별한 선행을 하는 건 또 다른 개념이다. 우리때도 선행이 있긴 있었지만 요즘은 선행이 너무 만연하고, 시기가 당겨졌고, 또 유행처럼 번진 것 같다. 정말 덥석 덥석 받아먹는 아이에게 일부러 진도를 늦출 필요는 없지만, 옆 집 따라하다가 어렵다고 의자에 길게 누워버리는 아이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아이에게 조금 챌린지 되는 수준 -1년, 2년 이하 선행-을 던져주는게 맞다고 본다.
같은 명문대생인데 왜 다를까?
같은 대학이라고 해도 사고의 깊이는 학생마다 차이가 난다. 나는 이걸 뼈져리게 느꼈었다. 진짜 명문대생이랑 허울만 좋은 명문대생. 왜냐면 내가 후자였기 때문이다. 벼락치기로 성적은 좋은데 진짜 머리에 든 게 없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시험 후 휘발하는 느낌. 대학은 진짜 말그대로 큰 공부를 하는 곳이었고 단순암기로는 깊은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다. 하지만취업 양성소가 된 지 오래된 대학교에서 최소한만 하면 졸업장을 따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배움이 깊이가 깊고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발표하는 몇몇 친구들을 보며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똑똑한 친구들을 관찰하다보니 그들은 학원도 별로 안 다니고 소위말하는 자기주도형 공부를 해 왔고, 무엇보다 부모님 혹은 형제자매와 '대화' 혹은 '토론'을 많이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유대인 하브루타 교육법과 일맥상통하는 바다.
https://youtu.be/4nk0_9Z3ebw?feature=shared
또한 과제집착력도 있었다. 외고에서 수학문제 하나 가지고쉬는 시간에 서로 모여 토론을 하거나, 선생님 바지가랑이 잡고 물어보다가 쉬는시간 끝나 버리는 광경들을 봤었다. 물론 그 애들은 다 잘됐지. 그래서 유튜브 강의에서 양치기 벡날 소용없고 어려운 문제를 늘어잡고 풀어본 그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나보다. 그 과정에서 사고력이 깊어진다고.
그렇게 하나를 골똘히 연구하다보면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고, 타인에게 개념 설명을할줄아는 능력이 생긴다. 정승제 선생님이 아래 영상에서 말했듯 전교 1등 애들이 시험기간만 되면 시간도 없는데 옆 친구들 질문에 풀이 설명해 주고 있지 않냐며, 그런데 사실은 그게 오히려 득이 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설명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찾아보고 완벽한 개념 습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현재단계에 대한 완벽한 개념 이해와 적용 없이 다음 개념으로 달려가는 것은 아주 나쁜 방법이라고 한다. 마치 패스도 못하는데 축구 전술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학원에서 왜 선행을 그렇게 시키냐면, 진도를 빼는 건 쉽지만 심화를 가르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개념으로 훑고 지나가면서 초3에 중3 수학 진도만 빼면 학원이 잘 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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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은
영화관에서 자꾸 앞 사람들이 일어나서 보더라. 그래서 나도 일어나야 하나 쭈뼛거리게 된다. 하지만 공부는 영화와 다르다. 먼저 일어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서 보다가 다리 아파 누워버릴 수도 있는거다.
나의 결론은 그냥 심플하다. 수학 선행은 1-2년만 하기. 심화서로 다지기. 아이와 서로 설명하는 연습을 하며 개념 체득하기. 선행의 맹점에 빠지지 않고, 번 시간에는 닥치는대로 도서관과 박물관에 가기로.
영어는? 영유 다니는 동안은 영어에 빠지게 해주고 7세고시는 안보기로 했다. ㅎㅎㅎ 연계 초등영어 가서 레벨에 상관없이 영어책과 영어콘텐츠를 즐기는 아이가 되어 나중에 네이버 검색보다 구글링이 더 편해지는 것을 목표로 잡아본다.
마지막으로 모교 게시글중 아주 좋은 글을 보아 여기에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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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심리학적으로 2년 이상의 수학교과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아동들은 현실 세계와 추상적 수학 세계를 필요에 따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있으며 (e.g. 삼각법으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하라는 문제에서 자를 사용해 삽화로 있는 피라미드의 높이를 잼)
또한 (표면적으로) 현실과 괴리되어있는(?) 추상적인 수학적 대상들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미분계수 & 접선의 기울기 & 흔히 "증가하는 빠르기"로 표현되는 것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각각 계산의 결과, 각도기를 써야 야는 것, "그게 뭐임?"으로 받아들임)
심지어 추상적인 계산과정 자체를 다시금 수학계산의 대상으로 쓰는 행위는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죠. ("이동"을 내포한 벡터를 가지고 내적과 정사영(, 외적)을 하는 것 or "계산절차"로 인식되는 함수를 대상으로 미분이나 부정적분 (심화과정에 따라선 행렬화, 테일러전개) 등을 시행하는 것)
저는 개인적으로야 고교수학이 다루는 내용이 깊고 넓어졌으면 좋겠으나, 그건 단지 저를 포함한 종사자들의 막연한 바람일 뿐이고, 실제로는
"변별력이나 대학수학 준비를 위해서 지금의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vs "그건 맞지만 고등학생 나이가 되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추상적인 수학 능력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인것도 사실 아니냐?"
의 대립구도가 팽팽히 교착상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 그건 일반 학부모들이 생각하듯이 "너네 아이의 지능이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그저 인간의 두뇌발달과정을 고려했을때, 모든 인간은 그러한 단계를 반드시 연령대에 따라 거쳐가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IQ 딸림", "능지부족"과 "아직 그러한 지능(또는 설치되지 않은 "슬롯"이나 "업데이트" 따위로 비유되기도 함)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은 다른 것인데, 이를 비전공자인 학부모에게 쉬운 용어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죠.
참으로 씁쓸합니다. 애들은 뭔잘못일까요. 저것이야말로 ㄹㅇ 해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체력과 멘탈만 갉아먹는 말 그대로의 좆뺑이인것입니다...
추가적으로 조금 더 쓰자면, 이런 떡밥이 나올때마다 주로 "근데 암튼 가르치면 계산하긴 하던데"와 같은 반론이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하여 잘 생각을 해보아야하는게,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행위의 수학적 의미를 파악했다는 것을 내포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과학고나 수학과, 수교과로 진학하는, 보편적으로 수학적 지능의 수준이 아웃라이어로 취급되는 집단을 제외하면, 2년 이상의 선행과정 내용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숫자 계산의 절차를 기억한 것으로 봐야하지, 진짜로 방정식을 풀거나 미분적분학의 내용을 이해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옛시절을 생각해봅시다. 흔히 "닭과 양의 마리수 합은 6, 닭과 양의 다리 수의 합은 16..."으로 시작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 학생이 몇학년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3마리, 3마리로 때려맞추고 닭과 양의 마리수를 올렸다 내렸다하는 시행착오법(흔히 노가다라 하죠)을 사용합니다.
그 다음 학년에는 표를 만들게 해서 양이 몇마리냐에 따라 양의 다리 개수와, 닭의 마리 및 다리 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고, 그냥 맞는 칸을 선택하게 됩니다.
초교 고학년이 되면 닭의 마리수를 , 양의 마리수를 로 표현하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립일차방정식
+ = 6
2 × + 4 × = 16
을 쓰게 됩니다.
또 시간이 흐르면 이제 학생들은 대신 x를, 대신 y를 사용하여 방정식을 풀게 됩니다. 빈칸인 , 와 문자인 x, y의 차이는 굉장히 큰 것이어서 전자가 되는 학생이 후자는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오며 이런 방정식 중 답이 없거나 무한쌍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음을 배웁니다. 표를 사용하는 방법도 재정립합니다.
이건 나중에 함수의 그래프 개념이 도입되면서 "두 직선의 교점의 좌표를 구하는 것"으로 문제의 차원이 확장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의 유년기, 또는 초등학교때 수학성적이 잘 나온 반 친구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나 를 배우는 학년에서 연립방정식을 짜 의 방법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술한 아웃라이어들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그 방정식 2개가 "조건을 만족하는 닭과 양의 마리수가 갖는 관계를 식으로 표현한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단지 "이렇게 하면 왠지는 모르겠지만 답이 나오더라."의 상태에 머무릅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시적으로는 답을 빨리 구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함수나 변수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는데에 장해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노가다나 표그리기가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동이 변수나 방정식의 개념을 대수적, 추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에 넣는 숫자가 바뀌면, 에 들어갈 숫자도 바뀌며, 그 숫자는 반드시 하나만 나온다."라는 개념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우리는 잘 알겠지만, 중등수학에서의 함수의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습 니다.
근데 이걸 건너뛰게 되는 경우 학생들은 단순히 "답 구하는 방법"만을 기억하게 되고, 나중에 연립방정식이나 함수의 개념을 배우며 같은 문제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답을 구하는 그 과정과, 그 과정의 의미를 연결하지 못하게 되는 파국을 낳습니다. 그러면 미지수가 3개로 바뀌거나, 방정식이 일차가 아니라 xy=4, x+y=4의 형태 등으로 제시되거나, 해가 없거나 무수히 많은 경우와 같은 "예외"들에서 학생은 혼란스러워하고 수학을 포기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시 말하지만, 참으로 씁쓸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