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산다는 것
방학을 이용해서 사이판에 다녀왔다. 북마리나제도에 위치한 사이판. 지도를 보며 아이에게 이곳에 간다고 이야기 해 주니 어리둥절하지만 즐거워 하는 표정이다. 수영과 게임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녀석.
아이는 아주 사소한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어렸을 땐 나도 놀이터에서 하루종일 놀다 붉어진 하늘을 보며 손톱의 까만 때를 겨우 씻고 밥을 먹던 그 나날이 참 행복했는데.
이제는 수많은 조건을 걸고 그 체크리스트가 모두 충족해야만 그제서야 나는 만족스러운가? 싶다가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곁눈질하며 그 만족과 행복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버렸다. 한국 사회에서 평생을 엄청난 경쟁으로 단련된 전형적인 한국인.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경쟁과 교육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뤄낸 업적이니 박수를 보내는 바다.
하지만 하늘의 색깔만 보고도 행복해 했던 아이가 그 낭만을 자주 잊어버리고 성취, 성공, 사회적 위치, 혹은 아파트 가격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시 경쟁과 과열된 교육시스템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족이지만 그래서 남편과 결혼 했다. 남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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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인을 특정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이 눈치싸움이다. 가령 식당이나 이벤트의 줄을 서야 하거나 해변가선베드에 자리를 맡아야 하거나 할 때면 1등은 높은 확률로 한국인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몇시부터 수영하러 온 건지 대단하다 싶다. 아니면 전날 밤부터 맡아두었나?
일본에서 연착된 비행기에 일사분란 움직이는 한국인 탑승객들과 허둥지둥 하던 기타 다국적 승객들의 비교 에피소드 글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인 승무원이 안 되는 발음으로 천천히 여권 나눠주는 모습에 속터져 한국인 승객끼리 일사천리로 여권교부 끝내고 이미 일부는 기둥 옆 콘센트 찾아 노숙할 준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래 이게 한국인이지. 하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눈치경쟁에 익숙하면 이럴까 싶어 씁슬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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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미안하다. 이제 겨우 6세인 아이에게 벌써 이 경쟁 시스템에 들어가게 한 것 같아서. 학습을 시키고 평균과 퍼센테이지가 적힌 성적표를 보며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티를 안내다가도 나도 모르게 불쑥 감정의 송곳이 불쑥 튀어나와 아이를 찌를 듯 위협한다. 결국에는 나 스스로가 싫어진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만의 페이스가 있을 텐데. 나의 선택으로 영어유치원에 다니며 그것도 학습식으로 제일 빡세다는 곳에서 전국 평균 반평균 분석표가 담긴 성적표를 받아오다니. 고등학생 전국 모평도 아니고 6살이 그렇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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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에서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길래 아이를 데리고 가봤다. 방학이라 아무도 없었지만 미국(령) 학교라는 곳을 구경해 봤다는 것이 신선했다. 초록색 도마뱀이 기다란 꼬리를 숨기며 도망가는 학교 정문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살짝 들어가보았다. 선생님들의 지정주차장이 있고 그 앞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학교의 캠페인이라는 어떤 문구 때문에.
그곳에는 큰 글씨로 YOU ARE ENOUGH 라고 써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이 너는 너로서 충분하다라는 말이라니.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생각났다. 어머님, 아이가 영특한데 조금만 더 시험 대비 해주세요. 그러면 더 잘 할 것 같아요. 이번주 금요일에 먼쓸리 대비 책 보내드릴께요. 라는 선생님과의 대화처럼 우리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은, 한국 사회 안에서 YOU ARE NOT ENOUGH 인데. 한계를 뚫고, 천장을 뚫고, 더 채찍질 하기 마련인데. 잘 하는 아이는 잘하니깐 초저때 고등 수학을 하고 못하는 아이는 못하니깐 엄마가 앉혀놓고 공부 시키고. 왜냐면 넌 더 잘 할 수 있고 옆집 아이보다는 잘 해야 하니깐. 그게 우리 사회니깐. 그렇지 않으면 낙오 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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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저따위 짧고 별거 없는 문구 하나에 내 영혼도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너는 너만으로 충분하다고.
아이야, 나는 너가 어제보다 더 발전하고 성장함에 감동할 뿐이란다. 말이 느렸지만 기다려 주었던 것 처럼 너의 시간에 맞춰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저 손가락 발가락 10개씩 다 있음에 감사했던 그 때를 기억할께. 다른 아이들의 속도와 비교하지 말자꾸나. 최소한 그렇게 하고자 엄마가 노력할께.
그리고 다짐했다.
이 성적표를 절대 보여주지 않으리라.
Because you are enough as the way you 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