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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직장인 Oct 24. 2021

기를 쓰고 강남에 있는 회사에 가는 이유

로마와 강남 사이 : '집적의 경제'의 비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대다수가 들어본 격언일 것이다. 작은 도시 국가로 시작한 로마는 훗날 번영의 상징인 로마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로마(Rome)라는 지명은 여전히 이탈리아의 수도로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로마 제국의 중심지이자 찬란한 문화와 기술의 요람이었던 로마시(Rome City)를 직접 체험하고자 지금도 한 해에 수 천만명의 여행자들이 찾아든다.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고대 로마시의 건축물, 예술 작품, 포장도로 등을 보면 당대 다른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월드 클래스'의 수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로마의 번영에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었을까?


   로마의 부흥은 간단한 경제학 개념으로 분석해 볼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세 가지 투입 요소를 자본, 노동, 기술이라고 하는데 로마는 이 모두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로마는 ① 정치인들과 재력가들이 모여 있는 자본의 중심지였고, ② 건축ㆍ교량ㆍ수도시설 등을 일찌감치 개발한 기술의 중심지였다. ③ 로마시의 인구가 당시 인류 역사의 최대인 100만 명으로 추측되고 있으니 풍부한 노동력 또한 말할 것도 없다. (로마 시대는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데, 나름 대국이라 여겨지는 고구려의 총 가구수는 69만 호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실 자본, 기술, 노동이라는 이 세 가지 요소는 각자 독립적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아무리 자본이 많아도 일을 해줄 사람(노동력)이 없거나 재화를 생산할 기술력이 없다면 경제가 번영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한편 로마는 이 세 가지 조건이 한 데 모여 조화를 이루며 생산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기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2017년도에 직접 촬영한 로마 유적



* 2017년도에 직접 촬영한 로마 유적지




   고대 로마가 자본과 기술의 핵심지 역할을 한 것과 같이 현대에는 특정 도시나 지역들이 기업과 산업을 끌어당기며 높은 생산성과 혁신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융의 허브(Hub)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뉴욕, 런던, 상하이가 있다. 특히 뉴욕의 ‘Wall Street’은 전 세계 유수의 투자 은행, 증권거래소 등이 위치해있어 많은 직장인들의 꿈의 무대이다. 한편 암스테르담, 싱가포르 항구에는 각종 물류 회사와 크루즈 업체들이 몰려 있다. 이런 기업들이 한 데 모여 있는 이유는 항만,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적, 지적 자원을 교류하며 또 다른 경제 주체자들을 끌어들이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제학에서는 기업과 산업단지 인근에 자리 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이 발생되는 것을 '집적의 경제'(Economy of agglomeration)라고 하는데, 여기서 집적(集積)은 ‘모아서 쌓음’이라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인근이 위치한 기업들은 서로 간의 지식과 자원을 교류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비용 절감이나 혁신과 같은 긍정적인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ies)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애플, 구글, 테슬라 등 글로벌 첨단 기업들이 몰려들어 혁신의 요람이라고 불리게 된 실리콘밸리는 집적의 경제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혹자는 기존의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테슬라가 실리콘밸리가 아닌 디트로이트(미국의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단지)에 있었다면 지금의 테슬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디트로이트에 위치해 있었다면 혁신 모빌리티 기업을 일낸 소프트웨어 개발자, 엔지니어 등 최고의 인력들이 모여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전역 4천 개 이상의 산업 혁신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와 유수의 기업과 산학 연구단지가 모여있는 뉴욕/뉴저지, 그리고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연구결과는 이를 증명한다.


    한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강남 테헤란로에는 대기업들이, 여의도에는 금융 관련 기업이, 광화문에는 언론사가 모여있다. 또한 파주 출판단지부터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ㅇㅇ 가구단지', 'ㅇㅇ 화훼마을' 등에 이르기까지 지역별로 유사 업종군이 밀집되어 있으니 말이다. 최근 많은 혁신 업체들이 판교에 모여들고, 스타트업 캠퍼스가 조성되는 등 집적의 경제가 창출됨에 따라 IT 중심으로 클러스터화가 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일 직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상당하다. 기술의 신비는 더 이상 신비가 아니다. 그 신비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공기 중에 있고,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그것을 배우게 된다. 잘한 일은 정당하게 칭찬을 받고, 기계나 공정이나 조직 등의 개발 및 개선에 대해서는 곧바로 논의가 이루어진다. 한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사람들은 거기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인다. 이렇게 아이디어는 더 많은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 알프레드 마샬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 집적의 경제, 언젠가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집적의 경제는 주로 기업과 산업의 영역에서 논의되긴 하지만 개인의 일상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필자 주변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소재의 대학을 다니거나, 서울에서 직장을 얻은 사람들이 제법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처음에는 왜 굳이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주는 다양한 기회들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이 같은 생각은 세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도 역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취업 준비생이 그룹 단위로 면접을 준비를 하거나 어학 스터디를 찾는다고 가정해보자. 서울에 있을 경우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훨씬 커지게 된다. 직장인이 된 이후 업무 미팅은 물론 취미나 예술 활동 등 문화적인 교류를 원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소도시보다는 서울에서 인적 교류를 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고 시간의 기회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주위에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인 선배들을 보아도 어떻게 해서든 서울로, 그중에서도 '강남권'으로 진입하여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잘하는 학생은 어디에서도 잘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이 강남에서 누릴 수 있는 인적 교류나 다양한 잠재 기회에 대해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 전입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천정부지인 강남 집값은 여전히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마다 각자의 가치관대로 살아가고 행복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말(馬)은 풀과 들판이 많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 서울로 보낸다는 옛 말에도 경제학적 함의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최근에는 Zoom과 같은 화상 커뮤니케이션부터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메타버스' 기술의 발전으로 집적의 경제가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코세라(www.coursera.org)와 같은 웹사이트를 통한 '온라인 공개 수업'이 보편화됨에 따라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 유수의 명문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MIT의 Open Courseware라는 채널을 통해 전문적인 코딩 교육 또한 받을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라인을 통해 명문 학교의 교육과정을 수강하며 각국의 학습자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 아닌가? 또한 최근에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교류의 장을 만들어 대화하는 클럽하우스라는 앱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 이처럼 언택트 매체를 통한 교육과 인적 교류가 보편화된다면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더욱더 많은 이들이 집적의 경제의 순기능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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