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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어스 Nov 24. 2020

이런 언니 어디 없어요? 나 구독 좀 하게.

[인터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던 40대의 우리, 정기원님 인터뷰 #2

Q1.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한옥에 대해 소개 좀 해주세요!


정기원(이하 기원)네, 여기는 경복궁 근처 서촌에 있는 제가 사는 집입니다. 그래서 매우 오래된 낡은 한옥을 수리해서 일부는 에어비앤비로 손님들이 오셔서 묵으시고, 나머지 부분은 제가 재택근무하면서 살고 있어요.


일하는 우리(이하 우리): 어떻게 한옥을 고르고 살게 되신거예요?


기원: 제 삶에 있어 수도 없이 망한 플랜중에 좀 큰건인데요. 스타트업 회사를 접고, 제 커리어를 재개를 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럼 이제 한국과 미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살게되지 않을까 라고 구상을 했어요. 그러면 한국에서 자리를 비웠을 때도 부수입을 창출할 수 있거나 비용이 날아가지 않는 환경을 좀 만들어 볼 수 없을까 라고 해서 서구 분들이 한국에 출장이나 관광을 오시면 전통적인 거나 구도심을 보고 싶어하실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왜냐면, 제가 그 취향이기 때문이에요.


인생의 그릇된 타이밍으로 인해
딱히 희망하지 않았던 한옥에 대한 많은 지식을 보유하게 되었어요.


기원: 인제 그릇된 인생의 타이밍 으로 인해. 양옥이 별로 매물이 없고 당시에는 한옥이 되게 많이 나와있어서 한옥은 어떤건지 구경이나 좀 하자 라고 했다가 오래된 집을 수리까지 하면서 시간과 비용과 한옥 건축의 테크닉에 대한 용어 등등에 대한 딱히 희망하지 않았던 많은 지식을 보유하게 되었어요.


Q2. 디자인을 하시다가 왜 최근엔 그로스 컨설팅을 하게 되신 걸까요?


기원: 이제 스타트업을 접고 컨설팅으로 일을 일을 복귀했을 때는 디자인 쪽 일을 좀 하다가 그로스라는 분야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는 결핍과 절망과 (웃음) 트라우마가 합쳐서 내 스타트업은 제대로 마켓을 만나서 돈을 벌어보지 못하고 망한 한을 풀기 위해서 그로스 라는 거를 좀 배워서 일단 다른 스타트업에라도 좀 도움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내가 저번에 못한거를 나는 알아내고 싶다. 라는 거죠. 이게 뭐 제가 뭐 특별히 좋은 생각이 있었겠습니까. 이게 다 결핍과 트라우마와 이제 열받고 그런 것들 충격으로 인해서. 네 (웃음)


우리: 그로스 플러스 또 약간 아까 일화에 말해주셨던 약간 덕질의 결합체가 그 미니댄스라는 유튜브 채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기원: 그 중간에 했던 여러 실험들 중에 하나가 이 에어비앤비를 오픈해서 어떻게 하면 슈퍼호스트가 되고 어떻게 하면 에어비앤비 검색에 더 위에 뜨고 뭐 이런 것들도 좀 알아 봤었고. 제가 다니던 미장원의 인스타그램 계정 키우는 것도 해보고. 그 중에 조금 오래 했던것 중에 하나가 한 9개월 정도 유튜브 채널을 하나 했었죠. 네네. K-POP을 소재로 한 K-POP 리액션과 댄스 튜토리얼 및 한국어로 된 가사를 영어로 외국인 K-POP 팬들 분들에게 설명해드린 그런 대략 고 3가지 정도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어요.


Q3. 유튜브 할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기원: 한 몇달 동안 유튜브만 하고 나 사실 일 안했어! 라고 친구한테 말을 (웃음) 했을 때. 이제 친구가 너 어느 정도 기간동안 생활비 있어? 너 지금 재정적으로 문제 없어? 라고 했을 때, 어. 고때까지는 없어. 라고 하니까. 그럼 하고 놀아! 라고. 얘기를 해 줬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 되게 신기하다? 시도 자체가 저라는 사람이 너무 하지 않을 뭐 K-POP에 유튜브에 댄스에 이런 것들이 저의 저같은 이력을 가진 사람이 (그쵸) 전혀 하지 않을 만한 거를 하니까. 흥미롭게 봐주셨죠. (웃음) 사람들한테 정당화를 하자면, 내가 서비스 (웃음) 디자인 컨설팅하는 입장에 봐서 이제 콘텐츠 마케팅 안하시면 안 되고 콘텐츠도 이제는 영상 안하시면 안되고 네 지금도 그 유튜브 채널을 한번 해봤고 그걸로 단기간에 구독자 베이스로 얼만큼 키워봤고 그런 거로 인해서 스타트업이나 이런 사업에 관련된 상담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기는 있습니다. (웃음) 네.


우리: 그럼 정당화 하는 거 말고 또 뭐가 있었던거 같으세요? 


기원: 글쎄요. 제 상담 선생님께 여쭤봐야 될거 같습니다. (웃음) 선생님하고는 아직 유튜브 얘기는 시작도 못했는데.


우리: 아 그래요? 아, 상담 받고 계신가봐요.


기원: 네네네. 안 받으세요? (웃음)


우리: (웃음) 안 받는게 이상한 세상이죠.


기원: 저기 이제 돈을 모아야 합니다. 제 나이 또래쯤 되면 친구들과 하는 말인데, 짧게는 4년 길게는 7년에 한번 정도 상담을 받아야할 일들이 터집니다. 그러니까 돈을 모아 놓으셔야지 약간 사주에서 대운 들어오는 것처럼 (웃음) 한 7년에 한번 정도는 상담비를 이렇게 좀 꿍쳐놓으셔야지 (웃음) 네네. 통장 하나. (웃음)


사주에서 대운 들어오듯 상담 받을 일이 생깁니다.


우리: 왜 그렇게 상담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그때 되면은? 저도 이제 준비를 통장을 적금을 하나 파거나 해야할거같은데. (웃음)


기원: 상담 선생님께서 저한테 '네가 내 말을 듣는 이유는 네가 나한테 돈을 냈기 때문이야. (웃음) 내가 하는 말이 네 지인, 친구, 가족들이 하는 말 보다 특별히 우수하지 않을 수 있다. 특별히 유용하지 않을 수 있는데. 네가 나한테 돈을 냈기 때문에 네가 귀기울여 듣고 있다.'


기원: 뭐 친구 동료 이런 분들도 그렇지만 가장 최악이 가족이죠. 맞는 말을 하더라도 가족들의 말은 듣기 어렵게 되고. 많은 경우는 가족들로 부터 나의 판단의 혼란이 오는 경우도 많잖아요. 온전히 나의 문제를 얘기할 수 있고, 나의 입장에서 반응해줄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을거 같아요. 예 그치 않을까요? 그리고 잘 모르겠어요.


우리: 그래서 30,40대가 되면 상담을 많이 하는 경우가 주변에 좀 있다.


기원: 어 그쵸 20대 때 많이 시작해요. (웃음)


Q4. 기원님 같은 경우는 왜 상담을 시작하게 되셨던 걸까요?


기원: 제가 미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석사를 졸업하고 나서는 몬산토라는 회사 같은 케이스도 있고, 우리가 믿는 신념하고 우리 돈이 투자되는 방식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문제 의식을 가지고 핀테크 스타트업을 했는데. 그 핀테크 스타트업을 결국은 의미 있는 사업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접었고, 이제 여러가지 일들이 중첩이 되면서 제가 잘 몰랐던 저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이런 많은 일들이 겪게 될때 많은 것들이 나를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저는 제가 좀 더 통뼈인 줄 알았어요. 저는 이렇게 제가 잘해서 (웃음) 그 지금까지 이력을 쌓는 데 거침이 없고 하고싶은게 눈에 보이면 대부분의 경우 내가 그걸 가질 수 있고, 라는 (웃음) 생각을 했었고, 당시에는 그 많은 것들이 전 제가 자기 결정의 산물 인 줄 알았는데, 특히 미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서의 그런 타이트한 인간 관계랑 좀 멀게 살 수가 있었어요.


제가 통뼈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어요.


기원: 근데 저한테는 환경이 되게 중요했던 거예요. 제가 제 삶을 사는 (웃음) 데에. 이 한국에 와서 이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전에 제가 알던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했을 때 가지고 있던 저 자신에 대한 이미지 인식이 엄청 이제 빠그러진거예요. (웃음) 나는 내가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다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한국에 오니까 이 한국 사회의 특유의 요소에 제가 엄청난 영향을 받는구나. 성역할도 그렇고 당시에는 강남역도 그렇고 그 여성들에 대한 묻지마 살인이나 이런 많은 폭력 그리고 일상에서 느끼는 여성에 대한 취급이나 폭력같은것에 대해서 생각보다 되게 위축이 되고 영향을 많이 받더라고요.


Q5. 한국의 상황이 미국과 어떻게 많이 다르던가요?


기원: 제가 직접적으로 좀 많이 느낀게 일단 두가지가 있을거 같은데, 하나는 외국에서 외화 앵벌이로 살 때와 (웃음) 여기 들어와 있을 때는 가족의 울타리와 가족과의 관계로 인한 많은 의무와 많은 고민과 시간 할애와 (맞아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그게 거의 없이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매우 큰 영향을 받았던 거 같아요. 


어릴 때는 특히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 딸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


기원: 어릴 때는 특히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 딸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 그래서 부모님과 나 내가 하나라고 믿으면서 자라기도 해요. 나의 편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지만 이제 나라는 유닛은 따로 있고, 내가 결혼을 했건 아이가 있건 없건 상관 없이 나라는 유닛이 있어야 되는데,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을 안했거나 (웃음) 아이가 없으면 그 유닛으로서의 무게를 부여하지 않죠. 의미를 충분히 부여해주지 않기 때문에, 결혼을 안했거나 아이가 없는 여자분들의 경우는… 부모님으로부터 성인의 대접을 충분히 받고 있지 못하죠.


기원: 그러다 보니까, 가족으로부터의 의무나 뭔가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꼭 자기부부나 자기 아이나 자기 본인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뭔가 좀 확대된 가족 내에서의 친척이나 가족 내에서의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의 커리어와 나의 커리어 중에 어느 쪽이 그 문제 해결에 투신을 하게 되느냐고 하면 거의 대부분 여자 친구들 쪽에서 그런 역할을 하게 되면서, 잠깐 쉬게 되는게 잠깐이 아니죠. 30대 중후반이나 30대 말쯤이나 이런 특히 가족과 관련되서 뭔가 본인의 역할이 나의 일에서 다 남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다른 역할로 변했을때, 그러면 이 일하던 우리가 알고 있던 이 사람의 경로에서는 이 사람이 사라졌잖아요. 그게 뭐 6개월 몇개월 이렇게 걸리는 것이 아니라, 1,2년도 아니고, 4,5,6년 정도 씩들은 사라지기 십상인거 같아요. 저도 생각보다 지금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리고 있고. 네네네.


우리: 듣다보니까 요즘 K-Daughter라고해서


기원: 아, 네네. K 장녀 뭐 이런 거.


우리: 저도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독립을 하니까는 엄마와의 관계가 더 좋아졌다 이런 얘기도 많이하고 (네네) 그런 생각도 많이 들고.


기원: 그래서 첫번째는 달랐던게, 큰것들만 꼽자면, 첫번째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선을 그어야 하고 나 자신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확 들어왔는데, 제가 준비가 그다지 되어있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소비되고 한쪽에서는 계속 피해자이고


기원: 두번째는 아무래도 성차별적인 것과 여성에 대한 만연된 생활에서의 폭력이 상당히 사람을 마모시키더라고요. 사람의 사기나. 저의 제 경우는 그랬어요. 대단한걸 겪지 않더라도 그냥 뉴스나 매체에서나 여성을 어떻게 호칭하고 어떻게 소비하고 한쪽으로 소비되고 한쪽으로는 계속 피해자이고 그런것들을 매일매일 계속해서 본다는게 제가 상상한 것 보다 훨씬 저한테 더 큰 심리적인 영향을 준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되게 놀랐어요. 네네네.


Q6. 지금은 다 괜찮아지신 걸까요?


기원: 음 아니요? (웃음) 네네네네.


우리: 아직도 열심히 이제 회복하고 계시는 중에 계신건가?


기원: 그니까 그거를 잘 모르겠어요. 회복이라는게 원래의 나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품고 있을 수 있잖아요. 근데 원래의 나가 아까 1부에서 말했던 그런 이력을 가졌던 사람과 지금의 저는 너무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 전 1부 얘기를 할 때도 이제는 매우 어색하고, 전에 알던 남의 얘기를 (웃음) 생동감있게 재현해야 하는 무슨 서프라이즈 배우 같은. (웃음) 그래서 좀 어색 많이 어색해요.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 중에 하나가 낯설음이에요.
나 자신에 대한.


기원: 30대 중반 쯤이나 30대 말 그 쯤부터 특히 많은 여자분들이 이탈을 하면서 느끼는 공통적인 제가 뭐 샘플 사이즈는 작지만 (웃음) 공통적인 감정 중에 하나가 낯설음이에요. 나 자신에 대한. 뭔가 내 커리어를 찾아서 능동적인 스텝을 한 두 번씩 해본 약간 성취감을 가져 봤던 분들이 갑자기 가족이라던가 외부 요인들이 훅훅 치고 들어오면서 그게 내 삶을 이렇게 가져가는 가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전 같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을 내가 한다거나, 하지 않을 결정을 한다거나. 전에 알던 활발하거나 진취적이거나 능동적이었던 나, 그리고 환경과 나는 별개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나랑 지금의 나는 너무 낯설은 사람인거야. 내가 왜 이러지? 전 같으면 이거 3개월이면 조금 우울 했다가 다시 올라올 얘긴데, 나는 왜 안 나아지는지 이해가 안간다. (웃음) 왜 이렇게 오래 걸리고, 오히려 더 안좋아지는 거 같기도 하다. 라는 그런 당혹감과 이질감? 본인에 대한 이질감에서 좀 어려움들을 많이 겪고. 그니까 뭐 상담 선생님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웃음)


우리: 이게 완전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은 수준 인거죠.


기원: 예. 그리고 그 사람이 되게 마음에 안드는 거죠.


우리: 아, 옛날의 내가.


기원: 세상이 좀 더 단순하거나 좀 더 쉽게 보였을 때의 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약간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내가 용납도 안되고 이해도 안가고. 너무 약간 쪽팔리고 당혹스럽고 막 그 숨고 싶고 막 그래요. (웃음)


Q7. 그 과정에서 일이 본인에게 갖는 의미가 좀 달라지셨을까요?


기원: 이거는 진짜 순전히 '이렇게 되기도 하는구나' 라는 그냥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를 제공한다는 (웃음) 의미에서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일에 대해서 저에게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옛날엔 언제든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고, 하고 싶은 거에 비해서 나의 능력 나의 시간 나의 에너지가 너무 부족해서 우선 순위를 정하거나 나의 이상과 나의 현실 사이의 갈등. 이 괴로움의 원천이었다면. 지금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그런 나 자신이 도대체 누군지 알 수 없다. 라는 게 가장 큰 일에 대한 화두죠.


아, 나는 은퇴를 했던건가?


기원: 상담을 하면서 들은 얘기이기도 한데, 상담 선생님은 60대의 미국 여자분이신데, 상담 선생님께서 아 나 지금 세미 은퇴 상태야. 라고 얘기를 하신거예요. 오프라인에서 병원에 출근을 하셔서 하시는 일들이 있고, 이렇게 온라인으로 하는 사람이 50명 정도 된다는 거예요. (웃음) 그 상담에서 저는 나와 일의 관계가 다 어그러진 거에 대한 상담을 막 하고 있는데, 실상 저는 특히 최근에는 프로젝트 계약 사이 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일을 한 10시간 했나 뭐 그 정도였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게 좀 너무 웃긴거예요. 선생님과 저의 대조가. 50시간을 일하는데 일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와, 10시간을 밖에 일을 하지 않으면서 일이 나의 전부다 라고 주장하는 이 둘의 (웃음) 불협 화음 '우리 이거 뭐예요. 우리 둘다 이상해요'. 막 이렇게 얘기를 하다가, 그때 처음 이 생각을 해봤죠. '아, 나는 은퇴를 했던건가?' 라는 생각을 (웃음) 해봤죠.


여러번의 은퇴를 하고 다시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거 아닐까?


기원: 요즘 일의 의미에 대해서 N잡러 또 그런거를 떠나서도 이런 프리랜서나 자기 일을 하려는 분들이 많다보니까. 평생 직장이라는 게 없어졌다는 말은 오래 되었고, 그러면 한 삶에 여러개의 커리어가 있다는 건데 그러면 여러번의 은퇴를 하고 다시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거 아니냐라는 강의나 책들이나 그런 생각들이 이제 사람들한테서 점점 회자가 되고 있기는 하거든요. 음 그래서 친구들도 이제 제가 '나 은퇴 했었나봐' 막 이랬더니, (웃음) 친구들이 (웃음) '어, 그럴 수도 있네. 요즘 세상이 그렇게 되고 있으니까 말 되네.'


Q8. 어떻게하면 이 모든걸 좀 덜 아프게 겪어낼 수 있을까요?


기원: 몇년 전만 해도 제가 아마 첫번째로 나오는 말이 남자의 풀을 넓혀서 보세요 였을거 같아요. (웃음)


우리: 아, 남자 잘골라라. 남자.


기원: 아 근데 한국 남자만 보시지 마시고 (웃음) 글로벌하게 (어~) 네네네. 영어도 배우시고 중국어도 배우시고 (웃음)


우리: 해외로 나가자! 코로나가...


기원: 코로나가 있고 지금 두번째로는 이미 젊은 여성분들께서 비혼 주의가 많아지셨기 때문에 일단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이 전제 자체가 약간 후진 전제가 된거 같아서. 그거가 1순위가 아니고, 저 같은 경우도 이제 파트너가 없이 저 한 개체로서 가구를 이루고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동료나 친구의 역할 어떻게 보면 유사 가족? 나에게 유사 가족에 해당하는 그런 느슨한 집단들이 나에게 결정적인 생존의 무기가 되거든요.


유사 가족에 해당하는 느슨한 집단들이 생존의 무기


기원: 저희 한 30 중반 이상 정도 된 다음에 여자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수렴되는 원하는 서비스들이 있어요. 하나는 언니 구독 서비스. 내가 몰랐던 거를 알려주는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친언니랑은 되게 다른 개념인거 같고. 두번째는 꼰대 알람이 필요하다. 그게 생각보다 일찍 와요. 그니까 내가 부당하다는 거를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생각보다 빨리 저 누군가가 나를 어 어 부당하게 보는 시점이 생각보다 빨리 오면서 되게 놀라요. 헉. 막 이렇게 되거든요.


우리: 삐삐. 막 이렇게 알람. 지금 꼰대되기 일보 직전이니까 조심하세요.


기원: 그런 꼰대나 넌씨눈이 될 수가 있는데, 그럴 때 옆에서 '야, 너 (웃음) 너 지금 안된다. 너 지금 가만히 있어!' 아니면 '너 지금 저거 잘못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친구나 언니가 필요하죠. 네네. 그 일단은 제일 많은 얘기가 그 두갠거 같아요.


우리: 너무 좋은 서비슨데요?


기원: 언니 구독과 꼰대 알람 서비스를 많은 30대 이상의 여성분들이 제가 알기로는 원하고 있어요. 저의 사회생활 경험에서는 30대 중반 쯤 부터 과반수의 내 주변의 여성 분들이 사라지기 시작을 하거든요. (맞아요.) 그럴 때 어 그래 너 이상해. 전 같지 않아. 왜 이렇게 달라졌냐? 라고 나한테 물어봐 줄 수 있는. 내가 선로를 이탈할 때, 너 이탈하고 있어! (웃음) 이탈한 다음에도 너무 못살게 굴지는 않지만, 여튼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해요. 왜냐면 이탈을 할 때 놀랍게도 대부분 놀라운 수준의 고립에 빠져요. 혼자 1인 고립에 빠지거든요.


우리: 도움을 청할 생각을 잘 못하고.


기원: 네, 그리고 내가 흔치 않은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웃음) 내 주변에.


우리: 나만 이렇다고 생각


나만의 경험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경험이니,
혼자 고립에 빠지지 말기를...!


기원: 나한테 닥친 이런 상황이나 뭐 그게 가족의 사정이든 뭐든 되게 특수하다고 약간 그런 편향을 가지게 되고 그러므로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있고 이거는 정말 특수한 상황이고 다른 옵션이 전혀 없고, 그러므로 내가 나를 갈아넣는 수 밖에 없다라는 확증 편향 같은 거에 쉽게 빠지기도 하고 그럴때는 외부 활동도 거의 안하기 때문에 계속 끈이 있어야지 되거든요. 네, 좀 어려워요. 


우리: 대부분 개인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또 따지고 보면 그 사람만의 특수한 경험이 또 아닐 때도 있잖아요. 이게 생각보다 되게 사회에서 많은 여러 명이 겪고 있는 경험이다. 저도 이걸 최근에 느낀게, 전 이제 90년대 생이고 90년에 IMF를 겪은 사람인데, 제 주변에 다들 딱 그 IMF 시기에 가정이 파괴된 친구들이 엄청 많았던거예요. 그게 되게 공통의 경험이었는데, 다들 그게 우리집만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아무도 얘기를 안했던거예요. 그게 뭔가 되게 숨기고 살았던거죠. 계속.


기원: 아, IMF 정도로 국가 보편적인 경험인데도 그래요?


우리: 근데 그게 연결을 못지은 거예요. 그게 IMF 때문에 우리집이 망한게 아니라, 우리집은 망하거나 우리 가정이 파괴 됐다고 생각을 못하고, 그냥 우리집이 불우해서, 우리집의 부모님만 특이하게 사이가 안좋아서 우리집 나만 되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나 혼자 겪은 일이야.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걸 밖으로 얘기를 안하는 거예요.


최소한 혼자 있으면 안돼요.
혼자 있으면 안돼.


기원: 그래서 동료로서 그 같이 헤매고 있는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뭔가 자기 일을 이뤄나가고 있는 친구들 아니면 나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제로 건강 문제라던가 힘든 일들이 있으니까. 그런 다양한 상태에 있는 친구들이 끈을 서로 놓지 않고 있으면 정말 좋아요. 그니까 그게 언제나 같은 호흡으로 갈 수는 없고, 잠깐 사라지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친구의 그룹이 있는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제 경우는 지난 한 2년 정도는 그런 친구 그룹에 상당히 덕을 봤어요. 네네. 최소한 혼자있으면 안돼요. 혼자 있으면 안돼.


우리: 중요한 지점인거 같아요. 맞아요.


Q9. 다른 일하는 우리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게 있으실까요?


기원: 물어보고 싶으신건 오늘 어떠셨어요?


우리: 40대의 어떤 선배의 얘기를 진짜 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의 그런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전 너무 좋았고요. 사실 기원님 걱정 되게 많이 해주셨는데, 다 하나하나 주옥같이 너무 좋아갔고 이걸 빨리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빨리 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되게 가득가득해요. 너무 좋은 얘기들이 많았고, 이런 얘기를 왜 아무도 안해줄까! 이런 생각에 되게 답답한게 많았어서 그걸 이제 할 수 있겠구나.


기원: 아, 은퇴를 했었기 때문에 잃을게 별로 없어서 (웃음)


[에필로그]


우리: 혹시 오늘은 좀 어떠셨어요? 기원님은?


기원: 어 저는 좀 아웅. 음 좀 네 조금 불만족 스러웠어요. 저의 퍼포먼스가 좀 불만족스러웠고 음 저희가 사전 인터뷰 했던 걸 가지고 약간 한 레벨을 올려서 좀 더 추상적으로 질문을 주시니까 제가 그 패턴을 잘 음 잘 못잡았던거 같아요. 어떻게 말을 하면 재밌을 지에 대해서. 아이.


우리: 그래도 여기 집도 초대해주시고. 예쁜 한옥에서 찍고 해서 저희는.


기원: 근데, 언제나 걱정은 그런거예요. 그래도 이거는 "너는 이렇게 예쁘게 생긴 집이 있고 그니까 뭐 가진 것도 많아보이고 그러는데 공감이 가능한 얘기인가"에 대한. 그 선에 대해서 이 정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감이 약간 줄타기에 대한 감이 점점 생기는데, 오늘 그 감이 조-금 불안해요.


우리: 아, 그래요? 오~ 저희는 다 너무 공감이 많이 됐어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원: 네, 그러면 어떻게 좀 잘 부탁드립니다. 예예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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