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사내 리더 개발 코칭 프로그램 진행 중)
남들은 쉽게만 그 자리에 오르는 것만 같은데, 나에게는 더디게만 느껴진다. 나는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하다가도, 스피치를 준비하거나 발표 중 크고 작은 질문에 당황하는 부족한 내 자신을 보면 아직도 한참 먼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더 늦기 전에 이제 나도 제대로 내 자신을 리더로서 포지셔닝하고 개발시켜보자며 마음 먹고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결심했었다. 이왕 조직 생활을 시작했으니, 그리고 여기까지 운좋게 왔으니 글로벌 마켓에서 높은 책임자 자리까지 한번 가보자며 호기롭게 나름 여정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소극적으로 책을 보거나 정보를 찾아보는 것 말고, 평소의 나 답지 않게 정말 나를 가까이에서 보고 경험하는 시니어 리더들이나 나에게 전문적으로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약점과 터무니없이 높은 aspiration 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챙피할 것 까지는 없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나를 드러내고 낮추며 이야기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노력을 기울인지 3-4개월 정도 지난 것 같다...
후회하냐고? 처음엔 그래 듣기 싫은 소리도 듣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나를 바꾸려고 노력해왔는데... 3-4개월이 지나니 슬럼프가 온건가.. 안타깝게도 지금은 내가 이걸 왜 이렇게 시작했을까 싶기도 하고.. 그냥 후회가 들기까지한다. 내 보스도, 인사부 리더도, 그 외의 사람들도 이제 많이 알아버려서 그들은 시도때도 없이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며 진심어린 조언이자 잔소리를 나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네가 정말 일을 잘하지만, 이런 일 외적인 것들로 너의 능력이 dilute (희석)되면 안되자나.. 라면서 시작된 이야기들.
머리 스타일은 왜 그렇게 하는거야?
화상 회의 할 때, 네 배경이 시니어 리더 답지 않자나? 멋진 그림을 좀 가져다 걸던가.
옷은 좀더 화려하게 입는것이 어떻겠어?
왜 이번에 이 포지션에는 지원하지 않았어?
좀더 영향력 있는 concept이나 비전을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해보면 어떻겠어?
모두 다 나를 위한 조언들이고 정말 감사하기도 했지만, 내가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는 갖가지 조언들이 쏟아지니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았다. 이렇게 되려면 내 자신을 그냥 송두리째 갈아버려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절망감도 크고,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후회가 들었다. 머리 스타일 바꾸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내 자신이 처음부터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해서 내가 아닌 "나"로 바꾸어야 하는게 씁쓸한 기분인 것 같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가보다. 요즘은 매일 여성리더들의 머리 스타일과 옷만 보면서, 나름 내 스타일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지만.. 내가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적극적으로 헤집고 다닌 덕분인지, 사내의 인재개발 프로그램을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주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유명 헤드헌팅/경력개발 회사의 코칭 프로그램이다. 리더로서의 capability에 대해서 먼저 평가 (assessment)를 한다. self awareness, peer, direct report, boss 이런식으로 360 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코칭 서비스가 제공되고 가따른 교육/훈련 등까지 풀 패키지이다. 일단 평가 결과는 꾀나 긍정적였고 이미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나의 강점 및 약점 등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정리가 되니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so what?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실질적인 문제 앞에 나는 여전히 방황 중이다. 약점은 알겠고, 근데 어떻게 개발시키지..? 코칭을 통해서도 특별히 만족스러운 구체적인 솔루션까지는 제시가 안되고, 통상적인 on the job training 아니면 그냥 교육 프로그램의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어떻게 소개를 받은 퍼블릭 스피치 분야의 전문가와 상담을 했다. 내가 특별히 고민하는 분야의 코칭을 하는 분이었고, 어떤 식의 프로그램을 갖고 계시는지, 내가 혜택을 볼 수 있는지 등등을 확인차 미팅을 했다. 당연히 내 사비를 털어서 해볼 생각이었고, 가성비는 중요했다. 그가 나에게 부른 액수는 어마어마 했다. 6회의 코칭 서비스에 거의 4,000 달라. 물론 나름 유명한 분이셨고 나도 벌만큼 번다하지만, 가성비가 내 예산을 초과하기도 하고.. 결과에 대한 믿음이 안가기도 하고 아직도 고민 스럽다.
현재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외부 커리어 코칭을 받고 있지만, 사실 코칭 시간의 대부분은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아직까지 큰 benefit을 모르겠다 솔직히. 그렇다보니 4천달라를 투자할지 말지 확신이 안선다. 그럼 도대체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도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다양한 피드백을 소화하고 동네방네 솔루션을 찾아 다니던 중.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승진이 확정되었다. (참고로, 이게 내가 가고자 했던 시니어 리더로서의 목표는 아니다. 즉, 위의 노력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 우리 회사 같은 matrix 조직에서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아예 높은 포지션에 새롭게 지원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리를 겟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포지션에 있으면서 소위 한국식 직급이 오르는 승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데, 나의 경우 같은 포지션이지만 업무의 성격이 많이 달라지고 그 scope 도 넓어졌기에 엄격한 인사부의 심사를 통해 승진이 결정되었다. 나의 보스와 인사부 헤드가 크게 지원사격을 해준 덕분이다.
그간의 열심히 일한 노력과 성과들이 인정 받아 기뻤다. 내 주변에 나를 돕는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신 나의 신께도 감사를 드림은 물론이고. 10여년 전의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능력도 한몫했겠지만 이렇게 나의 노력과 성과를 기억하고 지지해주는 리더들이 주변이에 있다는 "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시댁과 친정, 남편에게도 기쁨을 나누며 고기도 썰고 축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기쁨도 잠시, 나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이런 코칭 및 조언 등의 과정이 은근히 많은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만 괴로워하고 어서 내 방식대로 소화할 수 있기를. 2021년에는 머리스타일도 바꾸고 내 커뮤니케이션 스타일도 바꾸고, 리더로서 활골탈퇴된 내 모습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