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달간 굉장히 바빴고 앞으로도 그러할 암울한 상황이다. 그동안 바쁘지 않았던 적은 없었을텐데,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는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부분이다. 담당하는 업무량이 많아진 것도 맞고 개인적으로 벌려놓았던 일들도 상승세를 타면서 업무량이 늘었다. 그렇다고 육아와 집안일도 줄어들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말이다. 업무량이 많아진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최근에 바뀐 내 보스이다.
최근에 바뀐 내 보스는 좀더 개인적이고 freindly 하면서도 업무에도 무척 실무적이면서도 열정적였다. 이전에도 2-3년정도 알고 지냈었는데, 항상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말을 청산유수로 논리적으로 잘할까 하며 늘 감탄했던 리더 중 하나였기도 했다. 내 보스가 되어서는, 나의 개인적인 career development plan에도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자 조언을 해주고, 업무적으로도, 회사 내 정치 및 network 관리 등에 있어서 배울 것이 정말 많았다. 다만 열정적인 만큼 부작용(side effect)이 있었다.
모든 executive들이 대부분 그렇듯, 핵심만 간단히, 짧은 대화를 선호했던 내 이전 보스와는 달리, 지금 내 보스는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기본 30분에, 뒤에 다른 미팅이 있지 않은 이상 1:1으로 2시간 이상의 화상 미팅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 일대일 회의이니 딴 짓도 못하고 카메라를 꺼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처음에는 인수인계를 해야 하니, 처음이니까 서로 친해지고 알아가야 하니까.. 설마 업무상 최측근인 나한테만 이러는 거겠지 다른 시니어 리더들에게도 이러는 건 아니겠지... 수 개월 이상이 지난 이제는 내가 당면한 현실을 직시했고, 이젠 미팅을 짧게 끊어가는 대응 전략이 필요해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나와 나의 보스, 그리고 나와 같이 보스에게 reporting하는 다른 시니어 리더 1명, 이렇게 3인간의 회의였다. 30분 회의였고, 우리가 준비해온 프로젝트 팀의 목표 및 방향성에 대해서 보스가 기본적으로 "잘했고, 이러한 부분도 추가하면 좋겠다.. 결과를 기대하겠다" 정도로 짧게 마무리 될 간단한 미팅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내 보스의 길고 긴 연설이 시작되었다. 우리 둘다 업계 20년 경력의 나름 베테랑인데... 잔소리 같기도 하고 설교 같기도 한..이 상황. 보스가 엄숙히 말씀을 이어가는 중이신데, 다른 한 분께서 본인은 다른 회의가 있다며 (사실은 없는거 다 아는데....) 둘이서 결정하라며 나만 남겨두고 drop off를 해버리셨다. 나도 다른 회의가 있지만 열변을 토하고 계시는 나의 새로운 보스를 홀로 두고 떠날 수 없어 열심히 경청을 했더랬다. 보스의 스토리텔링은 정말 논리정연하지만, 보스가 나에게 "이렇게 해" 라고 핵심만 말한다 한들 내가 못 알아듣지 않을텐데 말이다.
두번째 문제랄까, 곤란한 점은... 모든 상황에 완벽한 디테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란 상황이 계속 유동적일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 어느 정도 깊이 있게 detail을 파고들어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정하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한 법이다. 상황이 수도 없이 바뀌고 있는데 때마다 깊고 깊은 분석과 디테일, 브리핑, 디스커션을 하고자 하다보니 업무량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밤새 무언가를 만들면 상황이 또 달라져 있고 다시 업데이트를 해야 하고, 새로운 상황에 맞는 또 다른 질문이 생기고.. 그렇게 주변의 사람들은 번아웃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본사와의 미팅을 위해, 때로는 동일한 주제로, 때로는 계속 추가되는 각기 다른 분석으로 일주일에도 3-4번씩 몇시간씩 미팅을 반복하다보니.. 일이 많은 것이 싫은 것보다 신이 안난다. 성과 없는 비효율적인 쳇바퀴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 기분.
그렇다고 새로운 보스에 대해 불평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원래 모든 회사 일에는 삽질이 반 이상은 차지하는 법이니까. 그 덕분에 나도 디테일에 깊숙히 관여하게 되고 많은 기회를 얻고 배워가고 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극단의 리더쉽을 경험하면서, 그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보스가 내 삶의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됬을 뿐이다. 운좋게도 나는 최근 크게 demanding 하지 않은 보스들이 많았었고, 대부분 보스들이 최소한의 기본 정보를 가지고도 본인이 필요한 결정을 내리곤 했고, 나에게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이끌어가는 delegation을 잘 해주는 편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불만은 있었다. 나에게 좀더 contribution할 기회를 주지 않는지, 더 많은 정보를 나에게 공유해주고 함께 전략을 짜거나 더 심도있는 논의를 같이 하지 않는지 말이다. (풉. 지금 딱 소원성취했지 않는가)
그리고 내 리더쉽 스타일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해 계속 나를 feeding 할 디테일과 정보를 계속 만들어오라고 팀원들의 시간을 뺏지는 않았는지. 나 한사람으로 인해 팀원과 그 가족의 QoL에 대해서 고려해본적이 있었는지. 크건 작건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결국 조직이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자신만의 리더쉽 스타일을 찾아야 할테지만, 리더로서 본인이 개개인의 삶과 조직의 효율적인 시간 사용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이해를 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