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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Dec 13. 2020

30대 중반 워커홀릭의 잔병치레  

(feat. 급 면역력 및 체력 저하의 증거) 

20대를 지나 30대 40대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20대에는 밤을 꼴딱 새서 놀거나 일을 하거나 무엇을 하든, 굳건한 정신력 하나면 지치지 않았더랬다. 30대 중반이 되고, 애도 하나쯤 낳고 보니 이제 이 몸뚱아리가 마음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더이상 하드웨어가 낡아빠져버렸는지, 소프트웨어로 말할 수 있는 최신 업데이트 된 고성능 정신력 만으로는 하드웨어가 버텨낼 재간이 없음이 느껴졌다. 10년 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같은 나 인데 왜이렇게 달라진거니?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왜이리 졸음이 쏟아지는지, 열심히 외우고 외워도 뒤돌아서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날이 찬 날 아이스크림을 먹기라도 하면 이가 시릴 때도 있고...  이전에는 중요한 presentation을 앞두고 script를 달달 외우기도 했었더랬는데... 이젠 제대로 외워지지도 않아 스크립트를 쓰는 의미가 무색해졌다. 


인간의 라이프사이클을 생각해보았을 때, 30대 중반이면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커리어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자기계발 등등 바쁜 시기이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진정 살인적인 스케쥴과 업무 강도에 잠잘 시간 조차 확보하기 힘들어지는 30대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매일 하는 덕분(?)에 출장도 많이 없어지고 퇴근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 만큼 솔직히 내근직들의 업무가 정말 많아졌다. 하루 종일 back to back meeting으로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육아를 도와주실 가족들이 없는 공백을 채워야 하면서, 강도 높은 육아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프리랜서인 남편이 많이 도맡아서 해주기도 하지만, 엄마가 해주고 싶은 내 욕심도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진심 한시도 허투로 보낸 적이 없건만,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데 나에게 너무 하루가 짧다. 


코로나 시대의 극한 직업 중 하나인 워커홀릭 워킹맘은 코로나보다 소소한 잔병들이 무섭기만 하다. 이미 30대 중반부터 바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찾아오곤 했더랬다. 체력저하와 면역력 저하와 함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런 저런 잔병들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을 경험하게 하곤 했다.


급성 방광염

전체 여성의 30% 이상이 평생 동안 한번씩은 겪어본다는 매우 흔한 질병이라고 한다지만, 태국 출장 중에 겪었던 급성방광염의 경험은 정말 최악 중 최악이었다. 화장실에 소변을 보고 싶어서 갔을 뿐인데.. 소변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정말 견딜 수 없었다. 분명 소변을 보고 왔는데, 여전히 소변을 아직 보고 싶은 느낌과 그 고통스러운 느낌... 급 인터넷 검색을 하고 이것이 방광염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태국 오피스의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급하게 항생제를 처방 받아 복용했다. 항생제 한알에 증상은 거의 완벽하게 사라지고, 갑자기 돌아온 나의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도 감사했더랬다. 


급성 방광염은 누구나 겪을 수 있고,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에는 갑자기 방광 내 세균이 비 정상적으로 증식할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잦은 출장과 잘해야 한다는 압박 및 스트레스로 인해 갑작스럽게 방광염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는, 재발가능성이 꾀 높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다음해 또 스트레스가 높아졌던 특정 시기에 다시 방광염이 찾아왔다. 두번째 경험(?)이라고 덜 당황할 줄 알았지만, 역시나 삶의 기본적인 배변 활동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통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비염

본래 지독한 비염을 가지고 있었다. 먼지 및 나방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환절기가 되면 아침 저녁의 온도차이에 급 반응하는 민감한 코를 가지고 있었다. 체력이 저하되면 가장 먼저 "코"로 온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맑은 콧물이 하루 종일 줄줄 흐르며 시도 때도 없는 발작성 재채기... 이럴 때를 대비해서 늘 복용하는 항히스타민제가 어떤 때는 잘 반응해주고, 어떤 때는 또 효과가 없기도 하다. 그나저나 경험상,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는 비염의 증상 예방에 큰 도움이 되는 듯하다.  

급성 부비동염

처음엔 나도 그냥 단순한 비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콧물도 잘 안나오고 이번엔 머리가 너무 아프다. 그리고 가끔가다가 뭔가 징 하게 정말 고통스러운 통증이 이마를 댕댕 거렸다. 참지 못하고 병원에 갔더니, 이번엔 코에 세균이 들어갔다고 한다. 살다살다 이런 고통은 또 처음이다. 코속에 어떻게 세균이 들어갔을까. 아마도 내 주변에 늘상 있었던 세균의 무언가가 내 코속으로 들어갔을텐데, 면역력이 떨어진 내 몸이 제대로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역시 하루 만에 고통은 잠잠해졌지만, 항생제는 정해진 대로 꾸준히 며칠을 먹어야 한다. 다음에 또 나를 찾아올꺼니? 무섭다. 


스트레스성 습진 

이전에도 가끔 원인모를 수포가 손바닥에 생기곤 했다. 설겆이를 그렇게 자주하지도 않는데 이상하다 하면서도, 주부습진이려니... 세제를 바꾸기도 하고 이를 핑계로 남편에게 설겆이를 미루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끔 한두개 생기고 금방 사라지곤 했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30대 중반 체력이 급저하되고 10점 만점에 8점 정도 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어떤 때가 있었다. 갑자기 손바닥 전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수포가 생기고 가렵고... 손가락 마디마디 수포가 생기고 터지면서 이제 손에 물만 닿아도 너무나도 아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을 뺴고는 다 아팠다. 한곳에 수포가 생겨서 없어질만하면 또 다른 곳에 또 생기고 계속해서 확장되고 재생산 되어 갔다. 그 당시 어린 아기가 있었기에 내 까칠한 손으로 아기를 만지기도 미안했고, 혹시 몰라서 독한 약도 손에 바를 수가 없어 그저 자연치유 되기를 그렇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외 근육통

경직된 어깨와 운동량 부족은 다양한 근육통 및 거북이목 증후군 등의 정형외과 적 통증을 유발하곤 했다.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을 직업병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한번은 아이를 재우다가 불편한 자세에서 잠들기도 했고, 그 당시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긴장된 상태에서 잠을 들었는지... 목을 가눌 수 조차 없는 근육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너무 심해서 달리는 버스/차 조차 탈 수 없었고, 통증을 없애는 어깨 근육 주사도 맞아보고 목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기브스도 해보았을 정도니..  

위의 크고 작은 잔병들은 그저 내 경험에 국한된 리스트이다. 이 정도면 스트레스가 없는 휴양지에서 살던지 그냥 산속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정도인 듯? 

이 모든 질병의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기초체력 회복과 기본적으로 그냥 행복한 마음이다. 마음의 병은 몸으로 나타나는 것은 확실하다. 마음을 지키고 감사하고, 열정과 야망(?), 꿈을 가질지라도 너무 스트레스는 받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말 처럼 쉽게 되는가. 

회사 일에도 이렇게 자신의 마음조차 못 지키고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데, 과연 내가 내 스스로의 비지니스를 할 수 있을까? 내 일, 내 투자금, 내 사업이 되면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곤, 역시 꼬박꼬박 월급 많이 주고 보너스 때 되면 챙겨주는 회사 열심히 다녀야지 하는 결론으로 회귀하곤 한다. 그저 허탈한 웃음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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