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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Dec 01. 2019

엄마라면 벌레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곳 동남아는 일년 내내 덥고 때로 지독히도 습한 날씨 탓에, 각종 벌레 및 파충류가 눈에 많이 띤다. 우리집 바로 옆 담벼락에는 아기 도마뱀 두마리가 사는데, 가끔 우리 집에도 실수로 들어와 며칠 씩 살다 가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내 소독하는 날이면, 숨어있던 바퀴벌레들 몇몇이 약에 취했는지 약을 피해서인지 눈에 띄는 장소로 나와 벌러덩 뒤집어져 있곤 한다. 진심 너무 싫은 날 중 하나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 즈음,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제대로 커다란 바퀴벌레 한 놈이 벌러덩 뒤집어 누워있다. 놀란 마음에 비명을 지르지만 주변을 둘러본들 오직 나 뿐이다.

"하필 나는 이걸 왜 본 걸까. 누군가 다른 지나가는 사람이 치우겠지......"

그렇게 나 몰라라 하고 싶었는데,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이제 아이가 올 시간이자나. 혹시라도 못보고 애가 밟기라도 하면 어째. 호기심에 가까이 들여다보거나 만져보거나 하면 어째"

결국 용기를 내서 발로 멀리 쳐내버리기로 결심했다. 원래 내가 아니다. 아이를 낳고 나를 잃은지는 오래지만, 이렇게까지일 줄이야. 지독한 사랑이자 집착.

신발의 요 부분으로 조심히 차서 깔끔하게 저 쪽 구석으로 보내면 되는거지, 눈으로 어디로 어떻게 포물선을 만들 것인지 시뮬레이션까지 마치고 심호흡을 한 후 실행에 옮겼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플랜 B에도 없던 반전. 이놈이 죽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뒤집어있던 놈을 내가 제대로 돌려놓은 격. 약 먹고 취했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두리번 거리기만 한다. 더 돌아버릴 지경이다.  

이 빌어먹을 사랑, 이젠 정말 그대로 두어선 안된다. 아이를 위해 다시 용기를 내어 멀리 차려고 마음을 먹었다. 순간, 구세주 우체부 아저씨의 등장.

Can you please help me!!

아저씨가 씽긋 웃으며 가볍게 처리해주고 떠나주셨다. 고마워요 아저씨.




엄마가 되고 마음은 용감해졌지만,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우리 엄마는 내가 무서워하는 벌레도  잡아주고 그랬는데....   나이를 먹고 노련해지면 나도 우리 엄마처럼   있을까. 소녀같던 우리 엄마도 나를 위해 그렇게 변한 거였겠구나 새삼 친정 엄마에게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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