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을수록 마음이 맑아지는 곳, 교토
일본을 잘 모르던 시절, 누군가 “교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저는 그걸 “도쿄”의 발음 실수쯤으로 들었습니다. 도쿄를 꺼꾸로 읽으면 쿄도가 되니까 잘못 알고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런 도시가 있었고, 일본 전통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그 여행이 이번 추석 연휴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교토만 가도 충분했지만, 시간이 넉넉해 고베와 오사카를 곁들이듯 다녀왔습니다. 교토에선 4박 5일 머물며 세 도시 중 가장 좋은 숙소를 잡았고, 여행과 휴식을 겸한 ‘호캉스’ 일정으로 여유를 즐겼습니다.
4박 5일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일차: 니조성, 교토아트센터, 교토역 빌딩 대강당
2일차: 버스투어(아라시야마, 금각사, 여우신사, 청수사), 산넨자카, 니넨자카
3일차: 난젠지, 에이칸도 젤린지, 철학의 길, 은각사, 니시키 시장
4일차: 교토 교엔(교토센토고쇼·교토고쇼), 교토국립박물관
5일차: 헤이안신궁, 교토 부립도서관, 교세라미술관
역시 매일 2만 보 이상 걸었습니다. 교토에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았습니다. 교토는 정말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였습니다. 저녁이면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가 많아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반면 관광지에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마침 중국의 중추절 연휴 기간이라 관광객이 더 많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수많은 절과 공원이 어우러진 도시의 분위기는 여전히 특별했습니다.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교토 교엔, 에이칸도 젤린지, 그리고 니조성이었습니다. 이름이 어려운 유명 사찰들은 사람들로 붐벼 천천히 보기 어려웠지만, 이 세 곳은 유독 마음에 남았습니다. 관광지 안에서도 걷는 양이 많아 버스투어를 해도 힘들었지만, “일본은 가까우니 언젠가 나이 들면 가면 되겠지” 하던 제 편견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딜 가든, 건강할 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녀야 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하루 2만 보를 견디려면 체력이 먼저니까요.
숙소와 가까웠던 교토 교엔과 니조성은 그래서 더 정이 갔습니다. 교토 교엔은 넓어 하루로는 다 둘러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안의 센토고쇼(仙洞御所)와 교토 고쇼만 둘러봐도 만 보를 훌쩍 넘겼습니다.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센토고쇼는 황위에서 물러난 천황이 머물던 곳으로, 사전 예약 후 일본인 가이드와 함께 그룹으로 이동합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 설명을 들으며 함께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황위에서 물러난 천황이 살던 공간이라 그런지 정원 하나, 연못 하나에도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자연이 어우러진 연못과 정원의 조화는 그 자체로 예술이었고, 눈길 닿는 모든 곳이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교토 고쇼는 예약 없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자유롭게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천황의 거처와 정원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1869년까지 역대 천황이 머물던 궁궐을 직접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센토고쇼와 교토 고쇼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 보를 걸었지만, 그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에이칸도 젤린지는 원래 일정에 없던 곳입니다. 대부분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쉬는 월요일, 시간이 남아 들렀는데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난젠지로 향하던 길목에 있었고, 단풍철로 유명한 곳이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입구의 휴식 공간부터 마음에 들었고, 신발을 벗고 마루를 따라 걷는 길이 정겨웠습니다. 니조성에서도 신발을 벗고 관람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여유가 없었는데, 젤린지는 한적해 사찰의 고요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석탑에 올라 교토 시내를 내려다보고, 연못가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은 그날 하루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니조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되었음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성으로, 규모만큼이나 방문객도 많았습니다. 아침 일찍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 관람했는데, 반납할 때는 모든 기기가 대여 완료되어 있더군요. 아침에 가길 잘했습니다. 워낙 넓은 곳이라 어디부터 봐야 할지 막막했지만,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받은 한글 안내서의 숫자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비가 내려 조금 불편했지만, 성과 정원을 둘러보며 오랜 시간 일본 역사 속을 걸었습니다.
4박 5일 동안 교토를 꽉 채워 걸으며 마음껏 보고, 충분히 누렸습니다. 이제 더 볼 게 없을 만큼 다녀온 듯하지만, 시골과 도시가 절묘하게 섞인 교토의 평화로움은 오래도록 다시 머물고 싶은 감정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꿈꾸던 교토를 마음껏 즐기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사카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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