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나와 부딪치라
내가 읽은 세 번째 그래픽 노블은 정유미 작가의 <나의 작은 인형 상자>다. 책다방 독서모임에서 좀 색다른 방식으로 읽었다. 그림 먼저 읽고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지 상상했다. 다음엔 글을 읽으며 내용을 이해하였다. 그리고 나서야 책(페이퍼백, 양장본)을 읽고 마무리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한 권의 책을 5번 읽은 셈이다. 그래픽 노블을 한 번에 읽지 않고 그림만 먼저 본 것은 처음이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히 좋은 방법이다.
정유미 작가의 졸업작품인 <나의 작은 인형 상자>(My Small Doll House)는 2006년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 중 하나인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2015년에 그림책으로 출간된 이 책은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2015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우수상(Bologna Ragazzi Award: the special mention from the Jury of the Fiction category)을 수상했다.
- Yes24 책 소개 내용 발췌
이 책은 애니메이션이 먼저 나왔다. 그러고 나서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양장본과 페이퍼백이 서로 다르다. 표지부터 책 크기, 종이 질감, 그림 컬러가 서로 다르다. 개인적으로 큰 책, 두꺼운 종이, 연필화 느낌이 더 나는 회색톤 그림이 있는 양장본이 좋았다.
이 책에서는 정형화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등장인물이 누구인지도 어떤 설명도 명확하지 않다. 친구 3명을 제외하고 나오는 등장인물이 모두 주인공 유진인지, 가족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모두가 유진의 분인이라 생각한다.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만, 유진 안에 있는 분인이 그것을 막는다.
편안한 이불속에 있고 싶은 분인
예쁘게 꾸며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분인
더 쌓고 풍족해야 한다는 분인
두려움으로 가득한 분인
이런 분인들은 자유에 대한 갈망, 있는 모습 그대로의 인정, 따뜻하게 감싸는 손, 머릿속 두려움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세상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편안함보다 자유를 누려보라는,
완벽하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부족함을 느껴 스펙만 쌓는 청춘에게 세상 밖으로 나와 부딪치라는,
관계가 두려워 자기 자신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오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나는 한때 관계 맺기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너무 나를 많이 드러내어 상처 받기도 했고 이용당하기도 했다. 그때는 참 여렸다. 순수한 나를 사람들이 가시로 찌르는 것 같아 아팠던 적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는 관계 맺기에 대한 갈등은 없다.
난 여전히 편하게 나를 드러낸다. 거의 99% 열고 산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내가 좋다. 내 스타일대로 나를 드러내는 게 좋다. 나를 평가하는 것은 상대의 몫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상대가 결정하는 것이다. 상대의 판단에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일뿐이다. 상대가 평가한다고 내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인간관계로 힘들지 않았다. 이런 현 상황에 감사하다.
내가 세상에 더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작은 인형 상자는 무엇일까? 내 편견이거나 알 수 없는 두려움일 거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 같이 가지 않을래?
<나의 작은 인형 상자> 북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