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서평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노인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운이라는 게 뭘까? 운이 오지 않더라도 아침을 맞는 우리는 늘 희망을 생각한다. 노인의 자세는 사뭇 진지하다. 운이 오든 안오든 빈틈없이 고기를 낚을 준비한다. 충분히 준비하면 운이 찾아왔을 때 낚아챌 수 있다. 어쩌면 운은 동전을 닮지 않았을까? 앞면은 행운을 가지지만 뒷면은 불운을 가진다. 행운인 줄 알고 덥석 받았지만 때로는 불행이 되기도 한다. 불운인 줄 알고 슬퍼했지만 시간이 지나 행운이 되기도 한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지 않는 법이거든,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상어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큰 고기를 힐끗 바라보았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그는 생각했다.
5.5미터 어선보다 60센티 더 긴 청새치를 잡아서 기세등등하게 돌아가던 중이었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지 않을까? 사투를 벌인 사흘, 고기를 잡고야 말겠다는 결연의 의지로 기다리던 순간이 행복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애타게 바라던 목표를 이루면, 허탈하다. 물론 내가 힘들게 얻은 목표를 성취감도 맛보기 전에 앗아가는 상어같은 장애물을 만난다면 그 상황을 극복하긴 힘들게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아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후회하거나 원망한다. 혹은 자조의 웃음을 지으며 '내가 하는게 다 그렇지.', '나에게 좋은 일이란 없어.'라고 포기하기도 한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내가 어렵게 이룬 성취까지 부인할 필요가 있을까? 상어를 맞서고 싶지 않지만, 돌아갈 수 없지 않는가? 설사 상어가 모든 것을 다 앗아가서 고기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한들 내가 고기를 잡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언정 거대한 등뼈는 용기와 의지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고기를 죽여서 정말 안됐지 뭐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노인과 바다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래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민음사 번역이 와닿지 않아 영문을 찾아봤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나지 않았어.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아."
패배와 파괴, 그 차이는 무엇인가? 내가 졌다고 인정하는 순간 패배하는 것이 아닐까? 패배든 파괴든 회복할 수 없는 운명의 상황이다. 인간을 파괴의 상황으로 몰아붙일 순 있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꺾지 못할 것이다. 노인은 청새치를 노리는 상어와 맞서서 싸웠다. 물론 고기를 상어에게 뺏겨 파괴되었지만, 패배하지 않았다.
우리 인생이 바다가 아닐까? 때로는 청새치를 잡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 낚은 청새치를 뺏으려는 상어가 몰려오기도 위험이 가득한 곳이다. 포기도 생각하고, 부인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아예 시작하지 말걸 같은 후회도 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처럼 내 꿈을 지키기 위해 상어와 맞서 싸우리라. 비록 내 모든 것을 뺏기는 불운이 오더라도 패배하지 않으리라. 나는 내일 또 바다로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