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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Jul 30. 2019

알을 깨뜨리고 나와 아프락사스로 가는 길

소설 《데미안》서평

고등학교 때 처음 데미안을 접했다. 데미안은 문학소녀의 필독서였다. 당시 '새가 알을 깨뜨리고 나와야 하고, 신의 이름이 아프락사스'라는 문장만 기억에 남았다. 어떤 내용이었고,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스토리가 있었다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알 속에 머무른 나약한 새였는데 알을 깨뜨려야 한다는 말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평범하게 살던 나에게 그 문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협박을 당하지 않았다면, 자의식이 분명하고 단호한 말투를 가진 막스 데미안을 만나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그는 고등학교 때 나처럼 알속에 편안하게 지냈을 것이다. 데미안을 만난 이후 그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던 "깨달음, 의심, 비판"의 세계로 초대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과 아벨 이야기로 시작해서 선생님이 말씀하는 것까지 다르게 보라고 제안한다.


아직 나에겐 "의심"과 "비판"이 부족하다. 학창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선생님 말씀이나, 책의 내용이나, 다른 사람의 주장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때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다. 다만 "깨달음"은 일상에서 자주 얻는다. 내 삶에서 데미안을 만났다면 더 성장할 기회가 있었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게 스쳐 간 사람 중에 데미안이 있지 않았을까? 데미안은 내안의 또 다른 나일까?


김나지움에서 방황하던 싱클레어는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베아트리체를 숭배하며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숭배하는 그림을 그렸으나 그림 속의 인물은 데미안으로 완성되었다. 어쩌면 싱클레어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자신을 구해준 것 처럼 크나우어를 도와주고, 스승과도 같은 피스토리우스를 초월하기까지 한다. 대학생이 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에바 부인을 만나서 성숙한 모습으로 자신을 완성한다. 이 과정이 싱클레어가 알을 깨뜨리고 나와 신이기도 하면서 악마이기도 한 아프락사스로 가는 길이다.


나는 얼마나 방황했을까? 싱클레어처럼 어린 시절에 방황했어야 하는데 이십 대가 되어서 방황을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한지, 어떤 강점이 있는지, 내 꿈은 무엇인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부끄럽게도 학창 시절에 고민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이 진리였으므로 아무런 비판 없이 세상을 수용했고, 부모님이 바라는 삶을 꾸리는 노력만 했다. 그래서 후폭풍이 일었다. 삼십 대 후반에야 알을 깨뜨렸다. 싱클레어가 크나우어에게 한 말처럼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내야 한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우리의 삶에서 잠시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찾아가는 시간. 그때가 언제가 되더라도 절대 늦지 않다. 주변에 보면 오십 대가 되어도 자신이 누구인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다. 지금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축복이다. 지난 시간의 방황과 고민 덕분에 나 자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자신 있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싱클레어 역시 이런 마음이 아닐까? 


글쓰기 수업을 준비하며 가장 자신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어 보라는 주문을 받아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로 구성했다.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된다. 나는 기록의 힘으로 찾았다. 내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싱클레어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여러분은 어떻게 자신을 찾아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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