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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Sep 18. 2019

[서평 소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고

1984》 3부 6장 윈스턴과 줄리아가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왜 윈스턴은 줄리아를 배신한 것일까요? 윈스턴을 우연히 만나고도 반가워하지 않는 줄리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줄리아에게 있었던 일을 상상하면서 소설로 써보았습니다. 이 글은 3부 5장과 3부 6장 사이에 들어갈 내용으로 줄리아 관점의 소설입니다.



나는 만일 누군가를 사랑하면 끝까지 사랑하고, 그에게 줄 것이 없을 때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윈스턴이 너무 늦기 전에 그 아지트를 빠져나가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게 최선의 일이 아니겠냐고 물었다. 여러 번 생각해봤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 마음에 변화는 없다. 비록 그와 내가 고문을 당해도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신어에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킬 것이다. 나는 그를 믿는다. 그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어떻게 한들 아무런 차이도 없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자백은 배신이 아니오. 당신의 자백도 중요하지 않고 오직 감정만이 중요한 것이오. 그놈들 때문에 내가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배신이오."


이곳에 온 이후로 온통 윈스턴 생각뿐이다. 오브라이언 집에 갔을 때 우리는 서로 주장하지 않았던가. 둘이 헤어져 다시는 서로를 볼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고문을 시작할 때 오브라이언도 나처럼 잡혀 온 줄 알았다. 하마터면 반가워서 손을 흔들 뻔 했다. 나쁜 오브라이언, 도대체 언제부터 원스턴에게 접근한 것일까? 윈스턴이 신뢰했고 나 또한 지지했던 오브라이언이 당의 적이 아니라 사상경찰과 한패였다는데 배신감을 느낀다. 오브라이언은 누구보다도 우리 둘을 잘 알고 있다. 분명 그는 우리의 마음을 이용할 것이다. 원스턴이나 나나 언제 어떻게 힘들어하는지 그는 안다. 그래도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고통에 대해 바랄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고통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육체적 고통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이다. 고통 앞에서는 영웅이 없다. 하지만 윈스턴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도 참으면서 2분 증오를 했던 내가 아닌가. 그들이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내 생각까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참을 수 있다. 오브라이언이 나를 고문하려고 던지는 질문쯤이야 다 위장할 수 있다. 이중사고로 막아내면 된다. 불쌍한 윈스턴, 그도 잘 참고 있겠지?


원스턴이 101호실로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101호실에 끌려간 사람은 다시 나오지 못한다던데, 이제 더이상 그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니 다시 못 봐도 상관없다. 내가 다시 그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좋다. 그가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 제발 살아남기를. 우리가 다시 사랑하는 사이로 만나지 못하더라도, 우연히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가기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 아니,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이 숨 쉴 수만 있다면. 제발. 내가 오브라이언에게 자백해야 할까? 그동안 내가 말했던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이중사고의 결과물이라고.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오브라이언이 아침부터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줄리아! 드디어 윈스턴이 자백을 했소. 들어보겠소? '이것을 줄리아에게 하시오! 줄리아에게 말이오! 내게 하지 말고 줄리아에게! 당신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들 난 괜찮소. 그녀의 얼굴을 찢고, 뼈가 드러나도록 살갗을 벗겨도 괜찮소. 난 안 돼요! 줄리아에게! 난 안 된단 말요!'"


이 목소리는 윈스턴의 것이 아니다. 텔레스크린이며 온갖 곳에서도 녹음을 다 하는 이들은 분명 음성 변조를 한 것이다. 내가 아는 윈스턴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죽는 한이 있어도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다. 그 자신보다 나를 더 아끼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주려 했던 고문을 내게 행했다. 윈스턴의 저주대로 나는 무너졌다. 그는 내 이마와 관자놀이 사이를 찢었다. 몸을 다쳐도 나는 상관없다. 그 어떤 고문도 두렵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문,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은 참을 수 없다. 결국 사랑이란 게 그런 것이었구나. 모래바람처럼 사라지는, 힘없는 존재였구나. 나는 왜 그 덧없는 감정에 목을 맨 것인가? 인간은 오직 자신만 신경 쓰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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