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과삶 Sep 28. 2019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우리의 삶

《경애의 마음》서평

학창 시절 경애가 유일하게 친구를 사귄 곳, '모두의 영동' 하이텔 영화동호회, 그곳에 E가 있었다.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1호선 끝자락에 있는 동인천역까지 가서 E를 만났다. 동인천역에서 보면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한 그 먼 곳에. E는 잠깐 사이 56명의 아이들과 사라졌다. 술값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한 사장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말이다. 호프집에 간 아이들이 잘못한 것일까? 문을 잠근 사장이 잘못한 것일까? 경찰과 공무원이 얽힌 비리의 결과일까? 이 모든 것을 암묵적으로 알면서 가만히 두는 사회의 문제인가?


감사하게도, 살면서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은 아직까지 나에게 없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고 사랑이 싹트려고 하는 시점에 이성 친구가 이 세상에 없다면 어떨까? 경애의 상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동안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지냈다. 다행스럽게도 산주 선배와 새로운 사랑이 싹텄지만, 그마저 경애를 배신했다. 산주 선배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3년이나 지났을 때까지 경애는 "로맨스가 종료됐다는 것은 느껴도 마음이 멈춰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나타난 산주 선배에게 마음을 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기분, 그 상처가 어떨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한때 누군가를 가볍게 좋아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다. 내가 절실히 사랑했는데 헤어져 본 경험은 없다. 친구들은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서 밤새도록 술 마시고 울었다고들 했지만 와닿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린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되지 않을 거다. 내 삶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 E처럼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산주 선배처럼 다른 여자에게 간다면 어떨까? 그 허전한 공백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내 삶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별의 아픔을 글로 써 내려간 블로거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 힘내라고 댓글을 단 적이 있다. 그는 이런 답글을 주었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순간의 슬픔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때의 감정은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진 않겠죠. 이미 떠나버렸고, 곁에 더 이상 남아 있지를 않으니. 살면서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고, 나아질 수 없는 상황을 몇 번 겪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닌 답답함에 제가 울고 있더군요."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그 순간 슬픈 감정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가슴이 답답했다. 섣부른 나의 위로가 갈 곳을 잃었다.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 아닌가? 그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우리는 언제나 행복이라는 요행만 바라보고 살 순 없다. 경애의 마음이 그러지 않았을까? 


경애와 상수는 E와 연결된 친구다. 어쩌면 고등학교 때 만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셋이 함께 만났다면 삼각관계가 되었을지도. E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경애가 추억할 공간은 남았다. 단 한 번이지만 E의 집에서 짜디 짠 수제비를 먹어서 조금이라도 애도하고 그리워할 자격이 생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많은 면을 가급적 알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나는 어떤 추억을 만들 것인가?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사랑에,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짧은 순간에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 또한 훗날에 그리워할 자격으로 남을 수도 있을 거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회사에서도 내몰린 경애에게 상수는 따뜻한 손을 내민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이란 어떤 형상에 숨을 불어넣어 그의 일부를 갖는 것"이라 생각하는 상수의 마음속에 "걷고 말하고 먹고 마시는 경애라는 형상이 있었다." 이런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다.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마음. 나에게도 상징적으로만 존재하던 "그"라는 형상에 사람의 숨이 들어와 사랑이 시작되었다. 막연하게 존재하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에게 입혀져서 현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경애와 상수는 아직 애틋한 로맨스를 시작하지 않았다. 다만 둘 다 이전과 다른 당당한 사람이 되었다. 상수는 "언죄다" 운영진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한다. 더 이상 비겁한 과거의 상수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계속 속이는 것이니까요. 이제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경애는 과거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총무부로 발령을 받았다. 그런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버티었다. 이제는 더 이상의 과거의 경애가 아니다. 베트남에서 다른 동료의 비리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가본 적도 없는 시흥의 물류센터로 발령 난 것에 참지 않고 일인 시위를 시작한다. 


두 주인공 모두 사랑으로 성장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이고,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게 타인을 사랑하는 시작점이다. 이제 그렇게 성장한 두 사람의 사랑이 펼쳐질 차례다. 나는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내 인생을 당당하게 내세울 만큼 성장했는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가?


아버지보다 못한 딸이라는 한탄을 하는 친구 일영에게 경애가 건네는 한 마디가 여전히 기억 속에 남는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듯 살아가는 시소가 아니라, 각자의 속도와 무게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그네와 같다. 이 대답이 나에게는 일과 삶이 시소처럼 올라가고 내려가는 균형이 아니라, 일이 앞서면 삶이 조금 처지고, 삶이 앞서면 일이 조금 뒤처지는 그네처럼 조화를 이루어 간다는 것으로 들렸다. 경애에게 회사와 사랑이 도전과 어려움으로 다가왔지만, 상수와 함께 극복해 나갔다. 상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다. 나와 "그"도 각자의 그네를 열심히 굴리며 옆에서 쳐다볼 것이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4기 모집중입니다. (~10/11)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소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