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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Jun 16. 2020

다시 만나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

"〈다시 만나요〉.... "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보통 소설의 첫 문장을 많이 인용하는데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소설 전체를 꿰뚫는 표현이랄까? 30년 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으며  "〈눈뜨는 순간〉, 속눈썹이 치들리며 눈꺼풀이 벌어지는 순간"을 맞았다관찰력, 상상력에 놀랐고, 개미의 삶이 마치 인간의 삶이 아닌가 하는 우주론적 세계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긴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읽은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기억》을 읽으며 베르나르 베르베르답다고 생각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순환적 세계관과 타자적 관점"으로 《개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2018년에 《La Boîte de Pandore, 판도라의 상자》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왜 제목을 《판도라의 상자》로 하지 않고 《기억》으로 했을까? 운명적인 만남의 장소인 공연장 이름도 '판도라의 상자'이고 '판도라의 상자' 신화도 여러 번 언급해서 제목과 잘 연결되는데 말이다. 주인공 르네가 2020년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다고 번역한 것은 한국인 독자를 배려한 것 같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고 한국인이 최애하는 외국작가라니 충분히 가능하겠지.



┃전생은 과연 있을까?


부끄럽게도 윤회 사상은 불교에서만 있는 줄 알았고 아틀란티스가 뭔지도 몰랐다. 피타고라스는 영혼이 불멸하고 반복하여 다른 신체로 들어가 윤회한다고 가르치고 채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언급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고, 플라톤 역시 언급했지만 당대 철학자들의 조롱과 놀림을 받았다는 아틀란티스 문명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한 점 역시 신비롭다. 동양의 주류 사상을 서양의 소설책에서 만나는 기쁨과 익숙하지 않은 서양의 전설 같은 소재를 알게 되었다.


르네 톨레다노가 111명의 영혼의 환생들을 모두 모아 총회를 여는 모습은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다. 어떻게 이런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전생을 막연하게 생각했지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이 없다. 내 앞에는 몇 개의 문이 있을까 헤아려 본다. 모두 소환해서 총회를 할 수 있을까? 꿈에서라도 가능할까?



┃운명인가? 자유의지인가?


이 질문은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개미》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삶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나간다지만 이미 그 누군가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미에게는 인간이 그렇고, 인간에게는 신이 그렇다.  〈우리의 행동과 무관하게〉 행동을 결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는 다시 태어나기 전에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우리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지만, 어느 정도 전생이 원한 삶의 경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죠."


나 역시 운명만 있거나 자유의지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운명이라는 어느 정도의 방향성이 있겠지만 그 안에서 자유의지로 조정이 가능하다고 본다. 자유의지로 원하는 바를 모두 얻을 순 없기에 그런 경우 운명으로 위안하기도 하겠지? 모든 게 운명이라면 인간이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이런 믿음조차도 자유의지가 아닐까?


2020년 한국에서는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화제의 홀로그램 표지(왼쪽) 2018년 프랑스에서는 《판도라의 상자》로 출간(오른쪽)



┃나는 누구인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모두는 전생을 살았던 전임자로부터 일종의 유산을 물려받았어요. 어떤 재능을 갖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에 대한 그들의 소망이 바로 그거죠. 그래서 삶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 돕는 하나의 가족이 돼요. 영혼의 가족인 거죠. 이 영혼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서로의 재능을 발견하게 도와주고, 응원해 줘요. 그리고 각자의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질문에 맞닥뜨리게 돼요.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


르네 톨레다노는 역사적 사실의 진정한 의미를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역사 교사가 되었다. 우연히 접한 심층 기억으로 전생을 만났고 아틀란티스인을 구하는 것이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은 전생의 노력과 시도의 종착점으로 자신은 우연히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렇다. 전생, 운명, 자유의지, 내 삶의 의미, 목적, 재능 이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 내가 나약하고, 부족한 것 같지만 전생을 살았던 전임자에게 받은 유산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하지 않을까? 당장 눈에 보이는 현금은 없지만 은행 통장에 돈이 있다는 상상만으로 부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삶의 마지막에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부끄럽지 않게 지금 이 순간을 지혜롭게 살아야겠지? 


* 본 서평은 열린책들에서 책을 지원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




《기억》 원데이 독서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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