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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Aug 22. 2018

할리우드에서 여자로 살아남기

여성 영화의 현재의 모습과 극복을 위한 네 가지 계획


할리우드 시스템 상에서 여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영화의 설자리는 부족하고 변화의 여지가 없으므로, 네 가지 계획으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나오미 맥두걸 존스 (Naomi McDougall Jones)는 주장한다. 할리우드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What it's like to be a woman in Hollywood) TED 영상에서 그녀는 우리의 취미, 진로 선택, 감성, 심지어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주는 영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제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나오미는 배우 출신이어서 그런지 바디랭귀지가 풍부하고, 17분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갈 정도로 열정적이고 흥미롭게 발표한다. 그녀의 혁명을 위한 네 가지 계획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나오미 맥두걸 존스 (TED 화면 캡처)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제한받지 않고, 페미니스트 집안에서 태어난 나오미는 배우가 꿈이었다. 미국 드라마 예술학교를 졸업하여 오디션을 보고 서서히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여성이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이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영리하고, 의지가 강하고, 복잡하고, 재미있고, 다면적이며, 당당한 여자를 연기하길 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 역할은 전체 혹은 부분 노출과 남성에게 종속적인 의미 없는 배역들로 가득했다. 배우 친구와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 그런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가 직접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매진 아임 뷰티풀 영화 포스터 (TED 화면 캡처)

다면적인 두 여자 캐릭터에 대한 대본을 써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작가, 감독, 프로듀서 모두 여자인 프로덕션 팀을 고용하게 되었다. 다들 '어느 시점에는 남자 프로듀서를 고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거나,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다른 영화 제작을 제안하였다. 어쨌든 영화를 만들어 수많은 영화제에 진출하여 상도 많이 탔다. 그녀가 겪었던 불편한 경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으나, '영화계에서 여성을 내세우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고 원래 그렇다'는 대답만 받았다. 성차별은 그렇게 일상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기존의 시스템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보는 영화는 단순히 취미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진로 선택, 감성, 정체성, 관계, 정신적 건강, 결혼상태에까지 영향을 준다. 미국 영화의 경우, 영화의 95%가 남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고 영화의 주인공들은 80-90%가 모두 남성이다. 지난 5년 동안 영화에 등장한 55%의 여성이 누드이거나 제대로 된 옷을 입지 않고 있다. 사실 수년 동안 많은 영화계 사람들이 이러한 차별에 대해 연설하고, 패널로 참석하고, 기사를 쓰고, 학술 연구를 하면서,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해 할리우드를 향해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파라마운트와 폭스사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제작할 영화 47개 중 단 하나도 여자가 감독하지 않을 것으로 영화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영화의 현황 (TED 화면 캡처)


나오미는 기득권을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변화를 위해서는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을 위한 네 가지 계획을 소개하기 전에 좋은 소식 두 가지를 먼저 전한다. 



첫째, 세상에는 여성 영화제작자들이 있다


영화 학교를 졸업하는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수인 50%에 달한다. 저예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 아주 적은 비용의 단편 영화라 해도 오직 18%만 여성이 감독을 한다. 조금 더 규모가 큰 1백만~5백만 달러 예산의 독립 영화는 12%로 그 비율은 더 떨어지고,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영화의 경우 오직 5%만 여성 감독에 의해 제작된다. 분명 실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 영화제작자 현황: 졸업자, 저예산, 독립, 일반 영화 순 (TED 화면 캡처)  


둘째, 여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영화가 더 많은 수익을 낸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지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성을 다루는 영화는 그렇지 않은 영화보다 1달러 당 23센트의 수익을 더 낸다고 한다. 지난 5년 동안 만들어진 1,700개 영화의 평균 투자 대비 수익률(ROI)을 살펴본 결과 감독, 프로듀서, 작가, 주연배우 각각의 모든 카테고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ROI가 더 높았다.


여성을 다루지 않은 영화와 여성을 다룬 영화 수익률 비교 / 감독, 프로듀서, 작가, 주연배우 별 남여 ROI 비교 (TED 화면 캡처)


나오미의 혁명을 위한 네 가지 계획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를 보라. 


한 달에 한번 여성 영화제작자가 만든 영화를 보겠다고 약속하라. moviesbyher.com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여성에 의한 영화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영화를 볼 때 여자 캐릭터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라. 여자 캐릭터가 몇 명인지, 그들이 무엇을 입고 있는지 혹은 안 입고 있는지, 그들이 멋진 일을 하는지, 아니면 그저 감성적으로 남성을 도와주는 건 아닌지? 이런 것을 한번 주목하면 영화를 보는 관점이 크게 바뀔 것이다.



둘째, 세상의 모든 여성 영화제작자들은 영화를 만들어라. 


용감해져야 한다. 영화 산업 전체가 지속적으로 여성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러분에게 말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허락받기를 기다리지 마라. 누군가에게 선택받기를 기다리지도 마라.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 보라.



셋째, 서로 투자하라. 


여성 영화제작자는 우리를 원하지 않는 시스템에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우리의 관객을 찾고, 그런 관객들을 늘리는 데 투자할 필요가 있다. 관객도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이야기의 다른 절반을 보는데 투자하라.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하라.



넷째, 지금 모든 사업가와 기업가들은 비즈니스를 통해 파괴적 혁신을 하라.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종종 황금기가 있다. 사회 변화를 이루는 동시에 수익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나오미는 벤처 캐피털 펀드로 "51 펀드"라는 것을 론칭하고 있다. 여성에 의해 쓰이고 제작된 영화를 1백만~5백만 달러의 범위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펀드이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변화가 일어난다. 모두 일어나서 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나오미는 완벽하지 않는 여성의 몸을 영화에서 보고 싶고, 어린 소년들이 여성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그들이 좀 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고, 그리고 아직 진정한 삶의 롤모델을 찾지 못한 어린 소녀에게 여성이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다. 이는 단지 하나의 산업을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끝났다. 혁명의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우리나라 영화 '브이아이피 (VIP)'가 나왔을 때 여성 혐오 논란이 있었다.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고 제대로 된 배역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기사를 보고도 부끄럽게도 나는 그 영화를 보았고, 보고 나서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이 TED 영상을 보고서야 왜 여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영화가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주장이 우리나라의 여성신문 기사(2017/12/04)가 있다. 이 가사에 의하면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변호인, 명량, 베테랑 등의 천만 영화에서 여성은 조력자나 목격자, 혹은 희생자로 묘사된다. 그 이유는 상업영화를 제작, 투자, 배급할 수 있는 요직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한다. 위의 나오미가 말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이 한국에서도 작동하는 것이다. 다양성이 늘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다양성이 결핍된 곳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하고 있다.


나오미의 "누군가에게 허락받기를 기다리지 마라. 누군가에게 선택받기를 기다리지도 마라."라는 주장은 매우 인상적이다. 문화적으로나, 성장 과정 상에 여성은 허락받기를 강요당하고, 선택받기를 강요당한다. 물론 요즘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단지 영화산업에서만 이런 남녀차별이 있지만은 않다. 


직장 내에서도 C레벨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을 C레벨로 받아들이길 꺼려한다. 남성 세일즈가 대부분인 산업군의 경우, 여성 세일즈를 반기지 않는다. 그렇다. 기득권은 바뀌지 않는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없으면 만들고, 안 바뀌면 바뀌게 해야 할 것이다. 나오미의 용기와 혁명을 위한 네 가지 계획에 박수를 보낸다. 작게나마 이제부터는 영화를 보면서 여성 캐릭터에 주목해서 봐야겠다. 또한 누군가가 어떤 현상에 대해 "원래 그런 거지."라고 말한다면 과연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다양성이 배제된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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