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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Nov 26. 2022

빨래걸이가 된 러닝머신,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일과 삶에서 일, 운동, 삶으로

20년 전쯤 러닝머신이 대중화되던 때 50만 원이라는 거금을 무리하게 투자해서 집에 들였습니다. 남편은 쓰지도 않을 걸 왜 사냐고 극구 반대했지만 헬스장에 오가고 샤워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우겼습니다. 무엇보다 주변에 헬스장도 없었기에 건강을 위해 큰마음을 먹었더랬죠. 


한번 마음을 먹으면 끝을 보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에 매일 30분은 운동할 거라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아이들도 장난감처럼 낮은 속도로 인형을 운동시키며 함께 놀았죠. 탁월한 선택이라며 저에게 엄지척을 보냈습니다.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러닝머신이 빨래걸이로 변신한 모습에 경악했습니다. 30분 동안 멍때리며 걷거나 달리는 게 지루하게 여겨져서 차일피일 미루다 운동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죠. 차라리 밖에서 산책하는 게 더 즐겁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러닝머신에 얽힌 흑역사로 헬스장 역시 제 삶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중요하다는 말을 친구나 뉴스로 귀가 따갑게 듣지만, 산책과 요가만 집착했어요. 하루 1시간 30분은 제 삶에 엄청난 시간 투자라며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착각에 빠졌더랬죠. 회사 덕분에 집 근처 헬스장을 무료로 사용할 기회가 생겼지만 런닝머신은 재미없다는 선입관에 무시했습니다.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않는다고 동료와 친구가 매일 저를 구박했어요. 


도전의 아이콘인 제가 주저한 이유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실패해도 괜찮다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편인데 헬스장 가는 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공간을, 동료를 만날 수도 있고, 남들은 자연스럽게 활동하는데 혼자 어버버할 생각을 하니 돈을 준다해도 못 가겠더라고요. 그렇게 수개월을 보낸 후, 어느 날 마음이 동했습니다. 


'일단 가면 안내를 해준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기구 사용법도 알려준다고 하니까, 시설 구경이나 해볼까?'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아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헬스장 초보', '헬린이'를 검색했습니다. 헬스장에 가서 어떤 순서로 운동을 하면 되는지 친절히 알려 주더군요. 특히 "내가 무엇을 하든 다들 자기 운동하느라 정신없어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준비와 검색, 사전 조사에 또 한 달을 보내고서야 헬스장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참 답답하죠.


실내 운동화를 가지고 와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에 첫날은 입장도 못 했습니다. '그래 역시 난 안돼'라며 또 며칠을 보내고... 드디어 실내 운동화를 준비해서 시설 구경을 하고 선생님께 기구 사용법도 문의했습니다. 분명 설명을 들을 땐 알겠는데 선생님이 가버리면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자꾸 물어보기엔 미안했어요. 그래서 맘 편하게 PT (Personal Training, 1:1 맞춤형 훈련)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친구에게 PT 가격대와 주의사항을 문의했어요. 대략 회당 5만 원에서 10만 원 선이고, 본인이 원하는 걸 선생님께 분명히 이야기해야 한다는 팁을 알려주더군요. 너무 강하게 PT를 하면 온몸이 쑤셔서 재미가 덜하고, 너무 편하게 하면 효과가 없어서 실망한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PT 10회권을 끊었습니다. 이 또한 한 달을 대기해서 이제 2회 받았습니다. 아직 헬린이입니다.


선생님은 PT는 주 1회 받더라도 최소 일주일에 2~3회는 나와 혼자 운동해야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PT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갔습니다. 여전히 부끄럽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으니까요. 한두 번 가보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진짜 사람들이 저를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땀내고 샤워해야 하니 간 김에 뻔뻔스럽게 매트에서 요가도 합니다. 


이라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얼마만이 흘러보는 것인지... 마스크 속으로 땀이 흘러내릴 땐 힘들지만 뭔가 뿌듯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어요. 땀을 빼고 난 후 샤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샤워장에서 어떤 분은 콧노래도 부르던데요. 얼마나 상쾌하면 그럴까 공감은 되었지만 저는 참았습니다.


요즘은 PT와 더불어 저녁 약속이 없으면 헬스장에 가는데요. 이번 주는 4일이나 갔네요. 제가 얼마나 진심으로 운동하는지, 또 얼마나 노력하는지 궁금해서 기록을 남기고 싶어지더라고요. 제 루틴에 운동일지를 추가했습니다. 요런 건 또 노션이 편리합니다. 

헬스장에 가는 게 저처럼 두려운 분이 많을 거예요. 막상 가보면 별거 아닌 데 왜그리 어려웠는지 웃음이 나옵니다. 물론 지금도 아는 사람 만날까 봐 고개 숙이고 핸드폰을 바라봅니다. 헬스장 안에서 이동하며 핸드폰 바라보는 분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이게 삶의 활력소가 되더라고요. 건강한 삶, 자신을 위한 투자인 거죠. 매일 저녁 요가 하는 시간 30분을 헬스장에서 함께 사용하니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뺏기지도 않고요.


저 같은 헬린이 여러분! 힘을 내어 보자고요. 이번에는 6개월로 끝나지 않고 정말 꾸준히 해보고 싶어요. 일과 삶이 일, 운동, 삶이 되는 그날까지.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으뜸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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