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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다시 찾은 시카고
네오콘 2022

사무환경연구팀의 글로벌 디자인 박람회 탐방기

지난 6월 시카고 네오콘에 다녀왔다. 

코로나19가 겹쳐서 이래저래 4년 만에 다시 찾은 네오콘은 마지막 기억과 많이 달랐다. 

풀턴 마켓으로 이전한 쇼룸이 많아서 그런 걸까? 전반적으로 머천다이즈 마트의 텐션이 예전만 못했는데..



네오콘이 뭔데?


네오콘(NeoCon)은 1969년 처음 개최된 이래 매년 6월 시카고에서 진행하는 북미 최대 인테리어 디자인 & 가구 박람회다. 인테리어 & 가구 박람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오피스 가구 빅 3라고 불리는 허먼밀러(Herman Miller), 스틸케이스(Steelcase), 해이워스(Haworth)를 중심으로 북미 가구회사들이 업무공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오피스 신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네오콘은 시카고 강변의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 - 머천다이즈 마트(The Merchandise Mart)를 중심으로 열린다. 머천다이즈 마트는 인테리어 디자인 & 가구 브랜드 쇼룸이 밀집한 빌딩인데, 네오콘 기간이 되면 이곳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방문한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진다.


네오콘은 머천다이즈 마트를 중심으로 열린다. 올해는 풀턴 마켓까지 확장되었다. ©구글 이미지

네오콘에 가보지 못한 친구들은 이 부분에서 많이 헷갈려한다. 아무래도 네오콘의 행사 방식이 한국에서는 흔한 방식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 네오콘을 마치 코엑스나 킨텍스 같이 커다란 행사장에 부스를 차려 진행하는 한국식 박람회라고 생각한다. 


비엔날레 같은 방식이라고 설명하면 조금 이해가 되려나. 비엔날레가 열리면 도시 곳곳의 장소가 각각의 행사 계획을 세워 축제의 장소로 변신하는 것처럼 네오콘이 열리면 머천다이즈 마트 안에 입주해있는 각 브랜드의 쇼룸이 그 기간 동안 네오콘 행사 체제로 운영하는 식이다. 


네오콘 기간이 되면 전 세계에서 방문한 사람들로 머천다이즈 마트가 바글바글해진다. ©neocon_shows 인스타그램


네오콘은 예리한 사무환경 아이디어가 넘치고, 가장 날카로운 신제품을 최초로 세상에 선보이는 장소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마감재 샘플을 챙기고, 가구 디자이너들은 허리를 굽혀 책상 아래의 디테일을 살핀다. 북미 최대의 오피스 쇼이며, 실질적으로 세계 최대 오피스 쇼인 네오콘, 이 때문에 매년 6월이 되면 우리는 여권을 챙겨 시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네오콘에 기대가 컸다. 코로나 이후로는 처음 방문이라 오피스 트렌드를 리딩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코로나 이전과 다른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어떤 변화 방향을 제시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감과 달리 나를 맞이한 건 한산한 머천다이즈 마트였다. 네오콘은 3일 일정으로 진행돼서 보통은 첫 이틀 정도는 모든 쇼룸에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3일째 오후부터 한산해지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첫날만 조금 북적이고 둘째 날부터 한산했다.


코로나 이후 오피스 환경을 위한
혁신적인 오피스 솔루션이나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


행사장 분위기뿐만이 아니었다. 전시 내용도 아쉬움이 있었다. 높이 조절 데스크, 화상회의 시스템은 이미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고, 모바일 기기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품군 역시 수년 전부터 선보인 솔루션이다. 빅 3 중 하나인 스틸케이스는 매년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올해는 크게 눈에 띄는 제품이 없었다. 해이워스도 마찬가지. 


스틸케이스 입구에는 신제품 전시 존이 있는데 올해는 미국 건축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존슨빌딩의 데스크(1939년)를 보여주고 있었다. ©steelcase 인스타그램


이해가 되기도 한다. 가구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 기술(Technology)과는 다르다. 애초에 물리적 성질과 형태가 분명한 가구로 혁신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용도가 너무나 분명한 오피스에서 사용되는 가구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볼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브랜드가 전시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오피스 공간의 경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런 경향을 반영하여 브랜드만의 아이디어를 담아낸 신선한 제품들도 볼 수 있었다. 




협업공간은 더 자유롭게


코로나 이후 오피스의 역할은 흔히 협업을 위한 공간으로 표현된다. 집중 업무는 집에서 할 수 있으니 오피스에는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하러 온다는 뜻이다. 이런 개념을 반영한 듯 이번 전시에서도 오픈 플랜 곳곳의 협업 공간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많은 제품들이 협업 공간을 거의 파괴적인 형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퍼시스가 2014년에 겐슬러(Gensler)와 함께 한 미래 오피스 보고서에 해커블 오피스(Hackable Office)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이것이 현실에 구현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미팅 테이블, 보드, TV, 의자, 벽 등 협업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바퀴가 달려있었고, 움직일 수 있었으며, 모든 제품이 놀랄 만큼 가벼웠다


모든 제품에 바퀴가 달려있다. 직접 밀어봤더니 (TV가 달려있어도) 정말로 가볍게 잘 움직인다.


이런 제품들로 회의공간, 프로젝트 공간을 구성한다면, 오피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해질 것이다. 보통은 처음 공사할 때 회의실을 구획하고 한 번 세팅한 뒤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가구도, 의자도, 벽도 모두 움직인다면 사람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환경으로 공간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넓게 열린 라운지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유연한 제품을 여럿 배치한다면 쏠쏠한 솔루션이 될 수 있다. 벽을 옮겨 2인 프로젝트룸도, 4인 프로젝트룸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제품의 무게가 이 정도로 가볍다면 공간의 유연성은 더 이상 개념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제품, 특히 오피스에서 다수가 사용하는 제품은 견고함과 안전을 중요하게 여겨서 무겁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 제품들은 꼭 바퀴가 달려있지 않아도, 작은 협업 테이블 같은 품목조차 전체적으로 가벼워지고 있었다. 한국의 제품과 비교해서 가볍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4년 전 네오콘에서 봤던 제품과 비교해도 그렇다. 누구나 쉽게 이동할 수 있게 제품을 현재 진행형으로 개량하고 있는 것이다. 




집중 공간은 더 몰입할 수 있게


'집중과 소통의 조화'는 2010년대 오피스 계획에서 가장 큰 화두였고 네오콘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는 주제이다. 올해는 이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아늑해졌다. 이미 과거가 되었다고 생각한 파티션으로 둘러싼 개인 유닛도 다시 눈에 띄었다. 스틸케이스는 안쪽으로 살짝 굽어있는 높은 파티션으로 책상을 감싸고 그 안에 각종 모바일 기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아웃렛과 개인조명을 세팅해서 보여줬다. 여기는 내 자리이며, 나는 여기서 집중업무를 하겠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되었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높은 파티션이 돌아왔다. 오피스 내 협업/소셜 공간이 많아지면서 파티션의 높이로 인한 직원 간 단절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steelcase 인스타그램


직원 간 단절을 불러오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오피스에서 퇴출되다시피 한 높은 파티션이 다시 업무 현장으로 복귀한 까닭은 무엇일까? 재택 이후 오피스로 돌아온 직원들이 오피스의 개방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직원들은 집에서 혼자 일할 때 누리던
온전한 집중과 몰입의 순간을
그리워한다. 


오피스에 다양한 공간 프로그램이 등장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실제로 전시공간 면적의 대부분은 캐주얼 미팅, 협업, 개인 부스 등등, 업무 데스크 이외의 품목에 할애되고 있었다. 데스크가 놓인 공간은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이는 최근 오피스의 경향성과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오피스 내에 내 자리만 놓여있었지만, 이제는 내 자리 외에도 사람들과 섞일 수 있는 소셜 공간이 많아졌다. 협업과 소통, 공용공간 프로그램이 강조될수록 개인 업무 몰입의 문제가 따라온다.


집중과 소통의 조화는 달리 표현하면 집중과 소통 모두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집중과 소통이 타협하고 있는 과거의 공간에 만족하지 않고, 진짜 집중의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협업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내 자리에서의 업무 몰입도 극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라이징 스타 풀턴 마켓


빅 3 중 가장 몸집이 큰 북미 1등 브랜드 허먼밀러는 재작년에 머천다이즈 마트 쇼룸을 정리하고 풀턴 마켓(Fulton Market)에 새로운 쇼룸을 열었다. 풀턴 마켓은 머천다이즈 마트에서 약 2KM 떨어진 강 건너편에 위치한 거리인데 한국의 성수동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2015년 구글 시카고 오피스가 처음 자리 잡은 이래로 풀턴 마켓은 가장 트렌디한 기업이 몰려있고, 가장 젊은 감성이 모여드는 거리가 되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에 세련된 가게가 속속 들어섰고, 지금은 시카고의 가장 핫한(임대료도 핫한) 장소가 되었다.


허먼밀러를 비롯해 많은 브랜드가 머천다이즈 마트에서 풀턴 마켓으로 쇼룸을 옮겼다. ©Dave Burk | SOM


허먼밀러의 쇼룸은 붉은 벽돌의 5층짜리 단독 건물이었다. 1층에는 헤이(Hay)와 편집샵인 디자인 위딘 리치(Design Within Reach)가 있었고, 2층에 허먼밀러, 3층에 임즈 파빌리온(Eames Pavilion), 4층에는 중역 제품 라인을 취급하는 가이거(Geiger), 4층에는 마감재 브랜드 마하람(Maharam)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허먼밀러 산하 브랜드인 사무가구 브랜드 놀(Knoll)과 소파 브랜드 무토(Muuto)의 쇼룸도 두 블록 옆에 있었다. 




예쁜 게 최고야


오피스와 '예쁨'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허먼밀러 쇼룸에서 제안하는 공간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허먼밀러가 보여주는 예쁨은 스틸케이스가 보여주는 제품 혁신을 압도하는 것 같았다. 임스 체어 같은 클래식 라인부터 무토나 헤이 같은 최근 디자인 제품을 적절히 믹스하여 헤리티지와 힙 hip 함이 공존하는 다채로운 공간을 연출했는데 '오피스를 예쁘게 완성하고 싶다면 이대로 하면 됩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달까? 꼭 오피스뿐만 아니라 우리 집으로 데려오고 싶은 아이템들도 눈을 사로잡았다. 확실히 B2B와 B2C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모양이다.

허먼밀러가 선보인 믹스매치 소파 라운지 공간과 쨍한 컬러감의 초록 의자를 매치한 임원실의 모습이다.


오피스 퍼니쳐 Furniture 기업들이
어느새 오피스 퍼니싱 Furnishing 기업으로 
바뀌고 있었다. 


허먼밀러의 변화는 비단 새로운 쇼룸 장소만은 아니다. 오랜 시간 여러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B2C와 온라인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편집샵인 디자인 위딘 리치를 인수한 이후에는 수평적 확장의 가능성이 무한해졌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수직적으로도, 수평적으로도 확장된 포트폴리오 덕분에 다양한 제품과 소재를 조달할 수 있게 되었고 책상이나 의자부터 벽체와 카펫, 조명과 소품까지, 자신들이 제안하는 오피스 공간 아이디어를 본인들이 가진 제품으로 모두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허먼밀러뿐 아니라 여러 브랜드를 인수한 스틸케이스나 해이워스도 마찬가지로 본인들이 제안하는 오피스 공간 개념을 자사의 라인업으로 전부 구현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기능적인 혁신보다는 다양한 컬러와 마감재의 시도, 여러 아이템의 믹스매치, 아기자기한 공간 구성들을 선보이며 감성적인 어필이 두드러졌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보통 오피스에서 가장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품목이 태스크 체어(Task Chair)인데 이것마저도 적당한 기능에 예쁜 색상과 다양한 하부 base를 조합할 수 있다는 감성적 어필이 주를 이뤘다. 회사들이 더 이상 의자의 기능에 투자하고 있지 않았다. 국내에서 인기 있는 에어론(Aeron)을 만든 허먼밀러도 정작 기능보다 디자인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 


허먼밀러 산하의 다양한 브랜드. 최근 허먼밀러는 여러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B2C와 온라인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짧은 출장을 마치고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출장 내용을 요약하면서 다시 한번 올해 네오콘의 모습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기능적으로 새롭거나 혁신적인 솔루션은 없었다. 기능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대부분의 브랜드가 비슷비슷했다. 새로운 개념은 없었고, 과거에 제시된 개념을 현실에 녹여 재조립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피스 퍼니싱(Furnishing)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오피스 퍼니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네오콘만큼 빅 3와 그 외 업체의 격차가 크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여러 브랜드를 인수하여, 하나의 공간을 본인들이 가진 라인업으로 전부 제안할 수 있는 기업과 아닌 기업의 차이가 또렷했다. 


한국 오피스의 현실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북미 오피스는 한국 오피스와는 분명히 다르다. 한국의 기업 문화는 업무공간 주변에 캐주얼 미팅 공간을 배치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소통을 중요하게 이야기하지만 일하는 책상과 캐주얼한 소파는 떨어진 장소에 배치하고 싶어 한다. 오피스에 캐주얼한 공간을 배치한다면 업무공간과 거리가 있는 곳에 배치하고, 책상을 벗어난 다른 장소에서 일을 할 수는 있어도 그런 다른 장소를 굳이 내 자리 옆까지 끌고 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의 고민의 방향성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오피스 근무와 원격 근무가 양립하는 하이브리드 워크가 지속되는 한 유연한 소셜 공간과 확실한 개인 집중 공간의 강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 퍼시스 김정윤 팀장 

퍼시스 사무환경연구팀에서 오피스 리서치, 공간기획, 컨설팅을 총괄하며 다양한 기업의 오피스를 경험했다. 사무환경이 조직문화와 업무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믿는다. 지금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을 우리 모두가 일하기 좋은 환경 가운데 있기를 바라며 오피스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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