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효이재 Oct 28. 2022

1.6.3 정밀한 예측과 인식에 대한 오만을 경계한다

복잡계 세상이 요구하는 삶과 경영의 태도: 움베르토 에코의 서재

전람회, 10년의 약속


움베르토 에코는 5만여권 이상의 방대한 서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시골 서재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부류로 나눈다고 합니다. 첫번째 부류는 읽은 책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에게 이 방대한 서재의 책들을 모두 읽었는지, 몇 권이나 읽었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두번째 부류는 매우 적은데, 이들은 오히려 서재가 읽은 책이 아닌 읽지 않은(읽을) 책들로 채워지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개인 서재는 혼자 만족하거나 또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물이 아니라 실질적인 연구를 위한 도구임을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미 읽은 책은 읽지 않은 책보다 가치가 떨어집니다.『블랙스완』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에코의 서재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며 ‘서재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과 관련된 책을 채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 알면 알수록 읽지 않은 책이 줄줄이 늘어나는 법이며 읽지 않는 책이 늘어선 대열, 이것을 ‘반서재’로 명명합니다.[a]


 우리는 자신이 이미 이해하고 가진 지식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지식관은 이미 알려진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서재에 대한 에코의 관점과는 상반됩니다. 이론 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 Geoffrey West는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000여년 동안 그 어떤 가장 위대한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도 ‘주름, 연속성, 거칢, 자기 유사성’이 사실상 우리가 사는 복잡한 세계의 보편적인 특징이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놀랍게 여겨진다.. 아마 무거운 것일수록 ‘명백하게’ 더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잘못된 가정처럼, 고전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에 구현된 매끄러움이라는 플라톤적 이상이 우리 정신에 너무 확고히 자리를 잡는 바람에 누군가가 실제로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이 타당한지를 검사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는지도 모르겠다.”[b]

    

 우리는 주변의 현상을 잘게 쪼개고 나누는 한편 이를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다양한 가정과 결합해 미래를 정밀하게 예측하고 정확한 계획을 세우려 애썼습니다.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늘 ‘닻을 내리고’* ‘예측’을 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 우리는 불확실성 앞에서 ‘닻을 내림으로써’, 즉 어떤 기준점을 어떤식으로든 만들어 냄으로써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덜려고 한다. 예컨대 우리는 어떤 물건을 사거나 흥정할 때 어떤 숫자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 후 다음의 정신적 작용을 벌이게 된다. 어떤 것을 그 자체로 판단하기 보다 그것이 설령 편견에 기인한 것이더라도 비교 수치를 놓고 생각하려 하는 경향을 닻 내리기 효과라고 한다.


 조직,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미리 대비해 행동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 소위 ‘전략’이라는 것을 수립합니다. 전략은 기본적으로 미래에 초점을 둔 개념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전략을 바탕으로 오늘 무언가를 행한다면 그것은 실상 위험이라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의 의사결정과 행동은 당장 그 결과와 영향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금방 위험을 망각합니다. 더욱이 테일러리즘이 추구하는 ‘과학적 관리기법’이 가진 정교한 느낌은 우리가 마치 모든 것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부여합니다.


 이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일반 경영에서 전략은 역사적으로 실패한 구 소련 스탈린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도 같은 모습을 취합니다. 최근까지도 기업, 경영자는 우리가 미래를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는 그릇된 가정 아래 1년, 길게는 10년까지도 내다보고 기업의 내로라하는 핵심인재를 투입해 전략을 기획하고 계획했습니다. 전통적 조직 관점에서 전략이란 예측과 통제식 접근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전략 수립 과정에서 다양한 어림짐작의 가정을 통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그렇다고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확한’ 목표를 도출하고(그렇다고 생각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복잡계가 주는 시사점은 미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많다는 점입니다. 복잡계, 프랙탈 세계에서 정밀한 측정과 계산에 근거한 예측은 무의미합니다.


 여기 돼지 한 마리가 있습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줍니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인생의 보편적인 규칙이라는 돼지의 믿음은 확고 해집니다. 그런데 주말 장날을 앞둔 어느 금요일 오전, 예기치 않은 일이 돼지에게 닥칩니다.[i]



 [그림] 장날을 전후해 돼지가 겪는 역사. 1000일동안 일어난 일은 바로 다음 하루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과거로부터 맹목적으로 미래를 투시하려는 태도의 위험성을 이야기해줍니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시간에 따른 박테리아의 개체 수를 표시한 그래프입니다[ii]  이 그래프만 봤을 때 우리는 흔히 앞으로의 박테리아 개체수가 선형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예측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좀 더 늘려보면 사실 이 그래프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선형 모델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그래프의 어떤 구간은 얼핏 직선으로 보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그 시점에서 직선의 연장선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추론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박테리아 개체 수 그래프]


 월가 출신 경제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저서 『블랙스완_Black Swa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이라는 종은 시야가 협소하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돌발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계획 속에 있는 문제에만 골몰하기 때문에 계획 바깥의 불확실성, 즉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 다시 말해 ‘아직 읽지 않는 책 속의 내용(반서재)’은 염두에 두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꼭 나쁜 소식은 아니다. 이런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계획을 세우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다만 그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v]


 홀라크라시 창시자이자 기업가 브라이언 J. 로버트슨(Brain J. Robertson)은 자전거 선수가 경기전략 수립을 전통 기업이 전략을 짜는 방식으로 수립한다면 어떤 상황일지를 제시하며 단순계의 관념 안에서의 기업 전략을 비판합니다.


 “당신은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단, 현대 기업들이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야 한다. 먼저 핸들을 잡는 각도를 결정하기 위해 대규모 회의를 개최한다. 또한 알려진 모든 장애물을 점검하고, 그것들을 피하기 위해 코스를 조정해야 하는 정확한 정도나 시간대를 고려해 여정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지도에 표시한다. 그런 다음 자전거에 올라타고, 계산된 각도대로 핸들을 꽉 쥔 채 눈을 감고 계획에 따라 조종한다. 아마 당신은 내내 자전거를 간신히 쓰러뜨리지 않고 움직일 수는 있지만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다 자전거가 쓰러지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처음에 제대로 계획하지 못했지?’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망친 거야?’” [vi]


 우리는 인식에 있어 늘 성급하고 오만합니다. 우리 앞에 일어난 현상들 대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늘 어떤 원인과 필연을 이야기 짓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언하고 통제하려 합니다. 문제의 해결은 우리가 인식적으로 체계적 오류를 범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 즉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영역 넘어 모르는 영역이 있음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정밀하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업의 미래, 혁신의 기회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 지 정밀하게 예측하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는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우리가 가진 고유의 프랙탈을 바탕으로 상황의 방향/통로(특성 방향_Characteristic direction)와 가능성/통로의 폭(특성 확률성_Characteristic stochasticity, 발생에 존재하는 확률적 가능성)을 탐색해 상황을 관리하고 변화에 좀 더 유연하게 적응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예측 불가능한 것을 ‘희망사항’을 담아 예측하고 이를 정답이라 외치기 보다는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것과, 확실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분류해 짧게 나열만 해 두고 이를 지속 업데이트 하며 ‘방향성’과 ‘발생 가능성’을 탐색하며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차라리 더 지혜로운 ‘전략’일 수 있습니다.


 전략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개념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전략(Strategy)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Strategos에서 나온 것으로 군대를 의미하는 Stratos와 이끈다(lead)는 의미를 가진 -ag가 합쳐진 용어입니다. 전략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가 『전쟁론_On War』이후로, 전략은 전장에서 승리를 위한 계략을 뜻하는 보편적인 용어로, 비단 군사 영역을 넘어 기업 및 사회의 보편화된 용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기업들이 그가 제시한 개념을 수용한 것이라면,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가 과연 전략을 어떻게 규정했을지를 살펴보고 현재 쓰임과 비교하는 것은 전략의 본질을 탐구하는 좋은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전략에 대한 그의 규정은 전통 기업이 전략을 수립하는 행태를 철저히 경계합니다. 그가 처음 고안한 개념은 오히려 프랙탈 적입니다.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가『전쟁론_On War』에서 제시한 전략은 ‘우연성 넘치는 전장에서 생존과 승리를 위한, 유연성과 탄력성을 생명력으로 하는 이성적 사고’’[vii]를 뜻합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극심한 불확실성과 우연의 산물이며, 전략은 이 모호함 속에서 방향성을 알려주는 희미한 불빛의 역할을 할 뿐, 이것이 진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에 따르면 전략은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참고수단의 지위를 넘어선 안 되고, 이마저 끊임없이 변화는 전장상황에 맞춰 갱신되어야 합니다.


 “전략은 전쟁을 위한 전반의 의사결정, 행동에 조용히 스며들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전쟁은 대부분은 어김없이 모호한 상황, 추상적인 가정, 미리 결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정보 속에서 이뤄진다. 때문에 당연히 전략은 전투 현장 속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현장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그 또한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곧 전략이다. 전략이.. 교리화 될수록 오히려 더 보편성과 절대성을 잃게 된다. ”[viii]


 ‘전략’이라는 개념은 애초 정밀한 예측이 아니라 오히려 복잡계에 대한 통찰 - 방향성과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과 적응 – 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전략은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수행하는 가설과 실험의 반복, 행동 전반을 관통하는 적응적 사고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늘 상관성, 방향성을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인식 밖의 세계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반()서재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업 리더가 미래를 예측하고 원대한 전략을   세우며 휘하 부대를 영광스러운 전투로 이끄는 용감한 장군이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수많은 장군들이   처음 나선 소규모 전투에서 패한 뒤 파면되고 만다. 용기 있는 임원은 미래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인정하며, 예측과 계획보다는 학습과 적응을 강조한다.”


에릭 바인하커(Eric Beinhocker), 부의 기원(Origin of Weath) 中

          


References

[a]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Nassim Nicholas Taleb 저/차익종, 김현구역, 블랙스완, 동녘사이언스, 42p

[b] 제프리웨스트Geoffrey West저/이한음역, 스케일, 김영사, 2017, 190p

[i] 나심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olas Taleb, 블랙스완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동녁사이언스, 2007), 4장 천 하루째 날에 살아있기에 제시된 예시 응용

[ii] 나심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olas Taleb), 블랙스완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동녁사이언스, 2007), 11장 새 ‘똥꼬’ 찾는법에 제시된 예시 인용

[iii], [iv] ibd.

[v] 나심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olas Taleb), 블랙스완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동녁사이언스, 2007), 10장 예견의 스캔들

[vi] Brain J. Robertson, 홀라크라시 Holacracy, 흐름출판, 2015, 198p

[vii] Tiha von Ghyczy, Christopher Bassford, Bolko von Oetinger, Clausewitz on Strategy : Inspiration and Insight from a Master Strategist, A Publication of The Strategy Institute of The Boston Consulting Group, 2001

[viii] Tiha von Ghyczy, Christopher Bassford, Bolko von Oetinger, Clausewitz on Strategy : Inspiration and Insight from a Master Strategist, A Publication of The Strategy Institute of The Boston Consulting Group, 2001 (전쟁론 부분 재인용)


Book: 상효이재, 초개인주의 Over-Individualism, 한스미디어, 2022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 미래의 창, 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