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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Oct 28. 2022

[insight] MECE에 대한 강박과 환상

Queen – Bohemian Rhapsody (Official Video Remastered)


대부분의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들을 훈련할 때 그 도입부에서 강조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MECE’.  아마도 모두 한번쯤은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것은 ‘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의 머릿글자를 딴 말로, 어떤 이슈를 다룰 때 각각이 반복되거나 겹쳐서는 안되고 동시에 이들을 모아 놓았을 때 빠짐 없이 전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MECE에 따르면 겹치지 않는 여러 범주로 분할되지만, 합치면 전체가 됩니다.


예컨대 고객은 무료 고객, 유료 고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고객은 모두 이 범주 중 하나에 포함되고 어떤 고객도 한 범주 외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MECE는 사물을 분석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가시화하는 데는 매우 유용한, 유클리드 적인 프레임워크입니다. 하지만 이 MECE가 우리 인간이 영위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와 그 세계내의 이슈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조직을 생각해봅시다. 고전적인 조직도는 매우 논리적인 MECE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일을 하는 업무흐름과 그 일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 MECE 구조가 ‘보여지는 것’ 이외에 어떤 실질적인 작동을 하고 있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점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MECE 스포츠 팀도 생각해봅시다. 육상이라 생각해봅시다. 선수들은 서로 보지 않고 경기의 변화무쌍한 흐름과 기류는 무시한 채 단지 지시와 명령 정확한 분석과 통제에 따라 각자 팔을 어떤 각도로 올리고 내릴지, 다리의 보폭은 얼마로 해서 정확히 어떤 걸음으로 들어올지 바통을 받을 사전에 약속된 위치가 어딘지 등을 아주 세밀하면서도 기계적으로 기다립니다. 경기의 열기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즉흥성과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독발 상황에서 이뤄지는 전형적인 ‘반복’과 ‘중복’, ‘교차’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결과는 과연 어떨까요?


실제 조직, 인간 활동의 세계는 단언컨데 매끈한 MECE가 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팀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스포츠 팀의 승리는 경기의 흐름과 맥락을 누가 얼마나 더 유연하게 적응해 사전에 약속하고 습관화한 훈련과 더불어 즉흥적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달렸습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은 관계가 모든 곳에서 다양하게 교차하며 수많은 중복과 반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팀 구성원들은 그들 자신의 전문화된 구역 뿐 아니라 종종 게임 혹은 경기장 전체를 추적하고 이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도의 적응성, 효과성을 가진 조직은 역할 책임이 완벽히 분절된 MECE조직이 아니라 중복과 여운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적응, 조율해 가는 비 MECE 팀인 경우가 많습니다.


MECE                                                                                Non-MECE

 

 그런 측면에서 MECE의 지나친 강조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왜곡되어 정리되거나, 현실에서는 결코 작동하지 않을 기계적인 논리가 마치 그럴듯한 솔루션으로 포장되어 조직에 제안, 적용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를 넘어 ‘폭력적인’ 결과를 조직에 낳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MECE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MECE는 어떤 사안을 정리해 간명하게 보기 위한 수많은 분석 프레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명확히 의식해야 합니다. MECE가 모든 정리와 적용, 구성 나아가 우리의 행동에 지배적 원리가 되는 순간, 현실의 진실은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중첩과 반복은 학습과 인지의 과학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학습에서 우리는 한 주제와 내용을 다각적으로 중첩해 보고 반복해서 접근함으로써 이를 장기기억화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인지적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이슈를 다차원적으로 여러 경로도 접근해 보고, 이를 반복적으로 다룸으로써 그 사안을 풍부하게 이해하고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중첩과 반복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기술, 디지털 세계를 맞이하지도 못했습니다. 세계적인 UX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존 마에다(John Maeda) 는 디지털의 제 1법칙으로 ‘끊임없는 반복’을 말합니다.


우리는 컴퓨터에 끊임없는 반복을 주문하고 컴퓨터는 이를 해냄으로써 인간을 돕는 수많은 계산과 논리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존 마에다는 기계의 세계라고도 볼 수 있는 컴퓨터조차 그 무수한 반복과 네트워크 속에서 ‘복잡계’성격을 띈다고 강변합니다. 그는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말을 빌려 ‘사이버 공간(cyberspace)’을 설명합니다.


 ‘합법적 운영자부터 수학 개념을 배우는 어린 아이들까지, 모든 국가에서 매일 수십억 명이 자발적으로 사이버 공간이라는 환각에 빠졌다… 상상할 수도 없는 복잡성, 마음이라는 비공간, 데이터 무리와 성단에 포진된 빛의 줄기들, 도시의 불빛이 멀어지는 것처럼..’


 존 마에다에 따르면 디지털의 세계에서 반복은 ‘재귀’recursion를 통해 복잡계의 ‘프랙탈’을 가시화하고 떠올려 볼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복잡계 현실 세계와 만납니다. 재귀는 자기 자신을 정의할 때 자기 자신을 재참조하는 순환논법을 의미합니다. 마에다는 이를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합니다. 종이 띠의 한쪽에는 ‘옛날 옛적에’, 반대쪽에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이라고 적고 끝과 끝을 한 번 꼬아 붙입니다. 그리고 이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서 이야기를 읽어봅시다. 이 이야기는 절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컴퓨터 세계에서 재귀는 간단한 반복문처럼 보이지만 한 번 꼬여 있으며 그 꼬임을 통해 다른 세계로 입장하는 문의 역할을 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재귀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프랙탈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자기유사성을 가진 나뭇가지가 나뭇가지로 구성되어 나무가 되듯 재귀의 부분은 부분에 의해 정의됩니다. 존 마에다는 이를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에 비유합니다. 마스료시카 인형은 다른 마트료시카 인형으로 채워져 있고 그 인형은 또다른 인형으로 채워지고, 이것이 게속 반복됩니다. 다만 현실의 마트료시카와 컴퓨터속 재귀 마트료시카의 차이는 그 깊이에 한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인형 안의 더 작은 인형 안의 더 작은 인형이 쌀알만 해도, 여전히 그 안의 인형 안의 인형 안의 인형을 꺼낼 수 있습니다.


 논리적이고 간결하게, 그래서 부분이 독립적이면서도 합이 완전한 것은 물론 어떤 측면에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서는 그 한계와 쓰임을 분명하게 분별할 때 비로소 ‘아름답게’ 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편 반복의 마트료시카 역시 아름답다는 사실을 압니다. 현실에서 중첩과 반복, 때로는 그로 인해 느껴지는 비효율을 MECE하지 않다는 이유로 습관적으로 배격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반복과 중첩과 자기 유사성의 패턴을 현실에서 어떻게 발견하고 발전시킬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MECE와 非MECE는 적이 아닙니다. 어느 하나가 승리해야만 하는 ‘승부’도 아닙니다. 단지, ‘TPO’(Time Place Occasion)를 맞추는 것, 분별과 균형이 중요할 뿐입니다.


Book: 상효이재, 초개인주의 Over-Individualism, 한스미디어, 2022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 미래의 창,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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