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 세상이 요구하는 삶과 경영의 태도
James Blake - Say What You Will
인간사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학문인 정치학에서 갈등은 체제, 이데올로기의 생존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아젠다입니다. 정치학적 관점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대 세계에서 가장 생명력 강하게 생존하는 것은 ‘갈등, 균열’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배움을 찾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체계라 평가되는 국가는 수많은 크고 작은 갈등과 실패, 부침을 겪지만 용케도 살아남아 진보합니다. 반대로 현실세계 속 공산주의가 막을 내린 이유는 현실에 존재하는 당연한 갈등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의 세계에서 계급 간의 갈등 외 다른 갈등은 존재해선 안 됩니다. 남녀의 갈등, 종교의 갈등, 인종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등 수많은 피할 수 없는 갈등들이 이데올로기 신념에 따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 억압되었습니다. 결국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갈등 때문에 체제는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현대 기업경영의 토대는 재미있게도, 대부분의 기업이 민주주의 체계 내에 있음에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갈등을 대하는 구조와 유사합니다. 테일러리즘 속 인간은 합리적이고 완전한 존재여야 하고, 그래서 시스템은 ‘기계’와도 같은 인간을 상정해 설계되었습니다. 테일러리즘의 이상향에서는 갈등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패도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현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테일러리즘 경영에서 갈등, 실패는 언제나 눈엣가시다. 그래서 이 곳의 체계는 이를 억압하거나 통제하거나 최대한 예방하는 방향으로 구축, 운영됩니다.
기업 구성원 개인이라는 미시적 차원에서도 바라보면, 이 같은 구조는 구성원의 실수를 대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전이됩니다. 테일러리즘 경영의 시각에서 구성원의 실수는 죄악시 됩니다. 실수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는 하나의 태도가 있습니다. 바로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입니다.
톰 드마르코(Tom DeMarco)와 티모시 리스터(Timothy Lister)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 사람들은 바로 방어적으로 변해 결과가 나쁠지도 모르는 일은 아예 시도하지 않는다고 실수 부정 문화를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나아가 이를 ‘예방’하기 위해 통제하고 억제하는 테일러리즘식 접근을 냉소합니다.
“팀원들이 중요한 전략적 결정을 잘못 내릴까봐 아예 결정권을 주지 않으려 체계적인 프로세스와 엄격한 방법론을 따르도록 강요할 때 방어적인 태도는 더욱 심해진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로 인해 전반적인 기술 수준은 다소 나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신에 팀 사회학은 큰 타격을 받는다.”[i]
조직이 복잡계 세계임을 이해하고 있는 기업들은 실수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조직에서 실수는 막아야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실수를 자연스럽게 오픈하고 협력해서 관리하는 방향으로 관리 초점을 바꿔야 합니다. 조직 내 갈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성 기업가 마가렛 헤퍼넌(Margaret Heffernan)은 오늘날 기업의 생산성을 혁신하는 핵심 요인은 조직 내 쌓이는 사회적 자본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갈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가 위태로워질까 걱정하며 갈등을 피하려고 하지만, 역설적인 사실은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안 발생한 진솔한 갈등은 오히려 사회적 유대감을 키운다는 점입니다. 논쟁을 피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양측이 활발히 논쟁에 참여할 경우에만 서로의 관점을 헤아리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ii]
그녀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자본은 구성원 간 신뢰를 형성해 보다 안정적이고 솔직한 갈등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순환이 발생합니다. 갈등은 잘만 다루면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내고, 사회적 자본은 다시 안정적이고 건설적인 갈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평화, 안보를 연구하는 옥스포드 리서치그룹 설립자 실라 웰워디(Scilla Elworthy)는 ‘용의 발아래에는 언제나 보석이 묻혀 있다’[iii]며 언제나 갈등으로부터 배우는게 있다는 태도를 갖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우리가 갈등 ‘해결’을 추구하기 이전에 갈등을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갈등 변환’ 문화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우리가 이것에 실망하거나 분노하기 보다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것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믿음아래 갈등을 개방적으로 관리하는 프로세스,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변화무쌍한 경제, 경영환경은 비즈니스에 전혀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변화는 기회인 동시에 위험(Risk)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산업시대에 비해 오늘날은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 거의 필연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기업의 이러한 경향은 조직, 인간이 의식적으로 경계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인지적 오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정상화 오류(Nomalcy Bias)’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어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잠재적인 영향을 축소하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정상화 편향의 위험이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클 수 있음을 경고하고 기업, 사회가 높은 수준의 ‘리스크 관리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일련의 교훈을 수용한 조직이 이행하는 리스크 관리는 오히려 ‘실패를 계획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총체적인 성공에 도달할 때까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분명하게 대비하는 것입니다.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것은 비용의 초과, 일정 지연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태도를 갖춘 기업은 발생가능한 리스크를 수용하기 위한 시간, 비용의 여유, 나아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추구합니다.
일련의 실패에서 해결책이 부상하는 방식을 생물학자들은 진화라 이름 붙입니다. 진화는 상대적으로 부적합한 개체의 도태에 의해 주도되는 프로세스입니다. 실패, 시행착오가 그토록 효과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변이와 선택의 반복이라는 진화 알고리즘은 문제가 계속 변화하는 세상에서 온갖 이형을 시도해보고, 효과가 있는 이형을 좀 더 시도해보는 과정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이것이 효과적인 이유는 많은 에너지와 오랜 시간을 들여 탐색을 펼친 끝에 가장 최적의 이상적인 ‘정답’을 찾는 대신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복수의 대안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스트 팀 하포드(Tim Harford)는 소비에트 연방(구 소련)의 실패 원인은 병리적 실험 불능성(pathological inability to experiment)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v]
이는 정치학 수업의 교훈처럼 갈등을 인정하지 않는 패턴과 유사한 해석입니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사실은) 독재자의 신성 앞에서 실험, 그에 의한 실패, 시행착오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역설적으로 왜 ‘실패’를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진화하는 시스템이 중요한지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 과학사학자 로렌 그레이엄(Loren Graham)에 따르면 소비에트 내에는 국제적인 경험과 현지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력을 갖춘 인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훌륭한 문제 대처법이 오히려 소비에트 체제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그가 제거되는 것으로 소비에트 재건의 희망이 사라졌습니다.[vi] 한 때 희망이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은 스탈린의 1차 5개년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공사의 자문을 맡은 표트르 팔친스키(Peter Palchinsky)라는 인물로, 그가 천명한 문제해결 접근 방식은 진화, 나아가 애자일 접근 방식과 유사합니다. 1)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것, 2) 새로운 걸 시도할 때는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규모로 시도할 것. 3) 피드백을 구하면서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 이 같은 접근은 조직이 ‘인간적 엔지니어링’일을 추구할 때 가능하다고 팔친스키는 주장했다. 그는 당대 영미에서 강력히 유행하던 테일러리즘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인간적 엔지니어링(Humanitarian Engineering)의 핵심은 비숙련 노동자를 상정한 테일러주의의 초보적 방식이 불필요할 정도로 노동자의 지식 수준을 높이는 데 있다.”
로렌 그레이엄(Loren Graham)이 발굴해 공개한 팔친스키(Palchinsky)에 대한 문서에는 그의 죄명이 있었습니다. ‘세부적인 통계 수치를 공개’하고 ‘최소의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소비에트 산업 발전을 방해했다는 혐의였습니다. 팔친스키는 결국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발견한 문제를 은폐하지 않은 죄로 살해된 것입니다.
갈등, 실수, 실패를 인정하고 그곳에 적응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행동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 (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위험에 대한 심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손실과 화해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때 같았으면 용납하지 않았을 도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실패, 실패로 인한 손실을 확정짓거나 후회스러운 결정을 이미 끝난 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끈질긴 고집,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갈등, 실패, 실수, 위험에 대해 더욱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인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복잡계 물리학, 행동 경제학자들은 진정한 변화는 문제를, 그리고 문제를 대하는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했을 때(메타인지)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래전 팔친스키(Palchinsky)가 가졌던 진화의 메타포를 인식해야 합니다.
표트르 팔친스키Peter Palchinsky의 교훈[vii]
1)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되, (일부) 실패를 예상하라.
2) 생존 가능한 범위 내애서 실패하라. (실패는 보편적인 일이다.)
3) 실패했을 때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단 교훈을 찾아라.
Reference
[i] Tom DeMarco, Timothy Lister, 박재호, 이해영 옮김, People Ware, 3판, 10p
[ii] Margaret Heffernan, 박수성 옮김, 사소한 결정이 회사를 바꾼다Beyond Measure: The Big Impact of Small Changes, 문학동네, 2017, 58-59p
[iii] Margaret Heffernan, 박수성 옮김, 사소한 결정이 회사를 바꾼다Beyond Measure: The Big Impact of Small Changes, 문학동네, 2017, 26p 재인용
[iv] Tom DeMarco, 슬랙, 인사이트, 류한석/이병철/황재선, 264p
[v] Tim Harford, 강유리, 어댑트Adapt, 웅진 지식하우스, 2011, 43p
[vi] Loren Graham, 최형섭,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The Ghost of the Executed Engineer, 역사인
[vii] Tim Harford, 강유리, 어댑트Adapt, 웅진 지식하우스, 2011, 5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