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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Oct 29. 2022

1.6.5 통제를 버리고 창발을 구해야 한다

복잡계 세상이 요구하는 삶과 경영의 태도

Whiplash_Caravan


 잠시 기업, 조직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기업의 조직구조는 사업의 지원, 유지, 성장에 쓰일 정보, 자원, 자본을 전달하는 기업 내의 망체계입니다. 조직은 경쟁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적응성을 지녀야 합니다. 도시에서처럼 여기서도 혁신과 창의성을 추진하려면 에너지, 자원, 자본, 기업의 대사를 정보의 교환과 통합해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업과 조직은 고전적인 복잡 적응계에 속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직에도 프랙탈의 교훈을 적용해 현실에서 벌어지는 우리 문제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구름은 구가 아니고, 산은 원뿔이 아니며 해안선은 원이 아니다. 자연에서 직선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조직은 측량, 예측한 그대로 움직이는 로봇, 기계 시스템이 아닙니다.


 복잡계 자연에서 유클리드식 가정이 통할 수 없듯이 복잡계 조직에서 (유클리드식) 테일러리즘이 온전히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한계를 지속 노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해안선은 원이 아니라 들쭐날쭉 삐뚤빼뚤한 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듯 우리는 인간을 들쭉날쭉한 개인성을 가진 (기계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합니다. 단순계 세계의 사람들은 이 같은 가정이 자칫 엄청난 비효율을 낳을 것이라 공포에 떨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조금 달리한다면, 오히려 우리 속한 조직, 기업을 좀 더 현실적으로 가치 있고 건강하게 운영, 영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차를 타고 산비탈길을 오르던 도중 산바위가 굴러 떨어져 도로 앞을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차를 잠시 세우고 ‘저 돌은 없는 거야, 허상이야.’라 되뇌고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를 힘껏 밟는 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영과 조직을 다룸에 있어 오랫동안 이 같은 관점을 견지해 왔습니다. 경영활동이 조직간 조직 내 인간의 상호 교류, 교감속에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감정’, ‘개인성’을 배제한 제도를 구축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온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리더의 의사결정은 대부분 ‘감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감정’이 굴러떨어진 ‘바위’처럼 물리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오류는 좀 더 쉽게 해소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업들이 왜 정밀한 예측과 통제를 포기하고 조직 구성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며 느슨하고도 모호한 조직관리로 변모하려 하는가? 프랙탈의 교훈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유의미한 지혜에 가깝습니다. 인간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인간의 들쭉날쭉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조직이 추구하고자 하는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인 가치, 철학, 원칙에 기반한 자유와 책임의 느슨한(것 처럼 보이는) 조직 운영은 복잡계에 적응하고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문화, 일종의 ‘프랙탈’을 창조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은유적인 ‘프랙탈’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유연하면서도 자기유사성을 갖춘 형태로 자기 조직화해 생존, 성장, 혁신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창발의 메커니즘


 열대지방에 사는 군대개미 군락은 휴식을 취할 때 개체들이 몸으로 거대한 움막을 만듭니다. 군락은 이렇게 살아있는 움막을 만들 곳을 먼저 찾은 뒤에 적절한 위치와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동시에 여왕을 보호하고 외적으로부터 알과 애벌레를 지킵니다. 먹이를 구하러 갈 때는 수십만 마리의 일꾼이 빽빽하게 늘어서 대열을 만들거나, 부채꼴 모양 떼를 이루어 땅 위를 마치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처럼 퍼져 나갑니다. 이런 사냥 무리는 많은 양의 먹이를 포획한 뒤 다시 뒤로 물러서서 원래 움막에 모여 있는 군락의 나머지 부분과 재결합합니다. 이 개미 한 마리는 이를 테면 초유기체의 일부분입니다. 초유기체란 수많은 일벌들이 많은 일을 각자 나누어 맡아 치러 내는 군락 전체를 일컫는 용어로서 생물학적 분류체계에서 볼 때 ‘개체’보다 한 단계 위의 대상을 이르는 말입니다. 초유기체의 기본 구성단위는 세포나 조직이 아니라 밀접하게 협동을 하고 있는 개체 한 마리 한 마리입니다. 개미, 벌 등과 같이 이런 특성을 지닌 곤충을 사회성 곤충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종 수로는 현재 약 90만 종으로 알려진 곤충 전체에서 고작 2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곤충 생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공적 변수로 오염되지 않은 브라질 아마존 우림 안에 있는 한 연구 구역에서는 사회성 곤충이 총 생물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i]


 이 조사에 따르면 그 중에서도 개미와 흰개미들이 조사 구역 내 전체 동물량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개미류만의 생물량은 조사구역 안 척추동물 –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 생물량을 합한 것보다 네 배나 더 많았습니다. 일련의 사실은 간단히 말해 사회성 곤충이 역사상 가장 생태적으로 (생존에) 성공적인 동물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다른 한 종은 우리 인간,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인간은 척추동물 역사상 가장 사회적이면서 생태적으로 성공적인 동물일 것입니다.)


 군대개미 군락은 자기 유사성을 가진 개체간 상호작용에 따른 ‘자기 조직화’와 그에 따른 (프랙탈적) ‘창발’ 현상을 직관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창발은 작은 개체가 다수가 되면서 개별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속성을 드러낼 때 나타나는 혁신, 현상을 의미합니다. 군대개미 군락의 창발적 행위는 누군가의 명령과 통제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문제해결에 필수적인 정보가 군락 구성원들 사이에 전파되는데 그 시작점이 어딘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각각의 개미는 개체의 개별 지능보다 뛰어난 분산된 형태의 군락 지능을 만들고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 지능을 유지시킵니다.


 우리의 뇌도 창발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입니다. 인간 게놈을 구성하는 약 2만 개의 유전자 중 3분의 1가량이 뇌에서 발현되어 수백억 개의 뉴런을 발달시킵니다. 뉴런 하나하나는 상대적으로 보면 복잡한 편이지만 의식이 있거나 아주 똑똑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뉴런들이 서로 연결되면 놀라운 네트워크가 만들어집니다. 이 네트워크는 부분들의 합보다 클 뿐만 아니라 ‘의식’을 갖게 되어 우리는 생각에 관해 생각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뇌는 분절적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비로소 의식, 사고, 정신을 창조합니다.


창발의 적: 관료제


 일련의 결(fabric)과는 달리 우리 사회조직은 매우 오랫동안 중앙, 위로부터의 수직적인 권위를 매우 중요시하고 당연시했습니다. 특히 권력의 주체가 명확한 기업은 더욱 더 이런 경향을 보이고 또 한 켠으론 정당화해왔습니다. 조직 이론가 엘리엇 자크(Elliott Jacques)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이론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까지 전통적 권위주의 체계보다 더 나은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했으며 관료제야 말로 기업 조직 운영의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ii]


   엘리엇 자크(Elliott Jacques)는 위계(Hierarchy), 관료주의(Bureaucrats)와 같은 말들이 현대에 들어설수록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사실상 현재까지 시도된 조직화 중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구조이며 특히 거대 조직을 위해 고안된 가장 자연스러운 구조임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iii]


 그에 따르면 적절하게 구조화된 계층은 에너지와 창의성을 방출합니다. 생산성을 합리적으로 높이고 조직의 사기, 의욕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인정하는 부분은 이런 위계조직의 장점이 역사상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경영전략 분야의  대가로 불리는 학자 게리 해멀은 위계조직이 열정을 누그러뜨리고 리스크 감수를 방해하며 창의성을 방해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중앙 통제 중심의 조직 구조는 일련의 단점을 갖습니다.[iv]


 첫째, 중앙집권적인 관료조직은 비용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조직이 성장할수록 경영진에 대한 비용은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모두 증가합니다. 작은 기업이라면 관리자 1명당 직원이 10명 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10만명 기업에 직원대 관리자 비율을 적용하면 관리자는 1만 1111명이 됩니다. 추가적으로 생긴 1111명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관리자가 1만명이 되면 이들을 관리하는 또다른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여기에 재무, 인사, 사업계획 등을 담당하는 경영 관련 부서에서 직원을 수백 명 추가 고용할 필요도 생깁니다.


 둘째,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이 더디다. 


 전통적 위계 조직은 많은 양의 업무를 일정한 품질로 수행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맞지 않습니다. 전략을 짜고 예산을 수립하며 위임/전결규정을 바꾸는 등의 활동은 여러 단계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너무 많은 사안들이 너무 높은 레벨의 임원에게까지 보고되고, 이를 위한 여러 단계의 분석과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결국 최종 의사결정이 이루어졌을 때는 이미 환경이 바뀌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셋째, 불확실 상황일수록 중앙집권적인 관료조직이 위험으로부터 더욱 위험하다.


 전형적 위계질서는 자칫 잘못하면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사결정의 위험을 높입니다. 의사결정의 규모가 커질수록 최종 의사결정에 의의를 제기할 수 있는 직급의 사람이 적어집니다. 특히 의사결정권자가 모든 상황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 위험이 가장 커집니다. 조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경영자들은 대부분 실제 현장과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위계구조가 엄격한 조직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거절하거나 수정할 권한이 종종 한 사람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그 한사람이 가진 편향과 이해관계가 의사결정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넷째, 소통과 상호작용에 불리하다. 


 위계조직은 가지치기 식으로 하향 전개된 조직 특성 상 하위조직 간의 직접 소통이 잘 안됩니다. 하위 조직들은 자원과 보상을 두고 상호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협업이 어렵고, 소통도 주로 공통의 상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비효율은 개인, 팀, 본부 별 줄 세우기식 성과관리 시스템에 의해 증폭됩니다.

 

 다섯째, 몰입과 혁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전통적 위계조직에 속한 직원들은 큰 기계의 한낱 부품 같은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실질적인 업무는 본인이 다 처리하면서도 의사결정 권한이 없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과실은 상사가 가져간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적 급여에 회사 생활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직원들은 종종 성과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와 탈진을 경험하고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몰입해 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위계조직의 폐해를 잘 알면서도 그러나 한 켠으로는 조직 경영에 있어 불가피한 시스템이라 이해합니다. 엘리엇 자크(Elliott Jacques) 역시 비즈니스 복잡도가 증가할수록 그 층위를 나누어 책임을 담당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v]


 개리 하멜(Gary Hamel)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83년 이후 미국 내 전 직종의 인력 증가가 44%인 반면 관리, 감독, 행정직 수는 100%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피터드러커는 오늘날의 조직이 1980년대 후반에 비해 계층은 절반으로 단순화되고, 관리자는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 했지만 그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관료주의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vi]


 그런데 위계조직이 그토록 많은 문제점을 낳고, 다수가 부정적으로 인식함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리 하멜(Gary Hamel)은 그 이유로 기업 경영, 관리자들에게 위계조직은 여전히 1) 익숙하고 보편적인 시스템이고, 2) 조직 변화의사결정의 주체이기도 한 기존 관리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3) 대담한 관리 혁신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회의적이며 4) 아쉬운 대로 잘 작동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우리나라 기업 현장에서 이를 바라보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한 회사의 조직/인사를 리드하는 사람으로써, 혹은 컨설턴트로서 경영을 바라볼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조직’을 다루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경영자, 리더 심지어 일반직원들에게 까지도 위계조직도는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반면에 그들에게 (뒤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저 개미군체의 특성 혹은 세포를 닮은 채 각자 독립적인 의사 결정력을 지닌 소규모 다기능 조직이 가진 서클/수평형 조직도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어렵고 생소한 접근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조직은 의사결정에 있어 중앙집중화와 탈중앙화의 딜레마에 집중합니다. 중앙에서 결정을 내릴 경우 전체적인 균형감이 높아지고 소모적인 업무 중복을 피하며 조직 전체로 고정 자원을 분산함으로써 평균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한편 때에 따라 단위조직에서 자체적으로 내려진 결정은 신속할 뿐 아니라 큰 그림이 명확하지 않을지언정 그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는 국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합니다. 영국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대부분의 사람이 중앙화된 지식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시간과 장소 같은 특별한 상황에 관한 지식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vii]


  불편하지만, 한 켠으로는 익숙하고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는 관성을 넘어, 적어도 우리가 위계의 단계를 축소하고 의사결정의 탈집중화를 꾀하는 방향을 다시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미군락과 같은 사회성 곤충, 우리의 뇌 혹은 여타 자연 복잡계에서 일어나는 자기조직화 및 창발 현상이 상징하는 교훈, 메타포를 우리 조직 경영에 가져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트남 전의 교훈


 이런 경우 불필요하고 혼란스러운 정보 간섭이 적은, 그리고 결론과 해석이 어느정도 공식화된 역사적 사건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미국에 있어 건국이래 여전히 존재하는 가장 큰 트라우마는 베트남전입니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무려 58,315명이 전사 및 실종됐고 부상 악화로 부상 약화로 수년 후 사망하여 집계가 안 됐거나 심한 부상을 입은 군인까지 합치면 참전병 300만여 명의 15분의 1인 20만 명에 달합니다. 살아 돌아온 군인들 상당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유독 시달렸습니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도 사상 처음으로 패배했고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다. 미군이자 역사학자(잠시 트럼프 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이기도 했던) H.R 맥마스터(Herbert Raymond McMaster) 는 저서 「 Dereliction of Duty(직무유기) 」 에서 베트남전은 중앙 집중화된 의사결정 구조에 의한 ‘완벽한(?) 탁상공론’이 불러온 참극 중의 참극이라 비판했습니다.


“베트남전은 야전에서 진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즈 1면, 대학 캠퍼스 여론에서 진 것도 아니다. 베트남전은 미국이 완전히 전쟁을 책임지려한 1965년의 의사결정도 패배의 핵심 요인이 아니다. 베트남전은 그저 미국민들이 자신들이 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을 깨닫기 한참 이전부터 진작 워싱턴 D.C에서 패배한 전쟁이었다.”[viii]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치, 군사 조직의 최상위 단계에서 내려진 의사결정 방식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린든 존슨(Lyndon Johnson), 36대 미국 대통령과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당시 국방장관)는 엄격하게 정의된 위계를 강요했고, 만장일치제를 고집했으며 최신 계량 기법을 이용한 정보의 중앙집중화, 분석이 가장 과학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고를 지나치게 신봉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존 F.케네디(35대 미국대통령)와 린든 존슨은 전임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세워놓은 합동참모본부의 역할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외면했으며, 현장에서 직접 전투를 하는 군의 전문성, 그에 기반한 정세 판단과 의견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국방장관 및 그를 보좌하는 중앙집중 체계 내 군인들은 현장의 군을 대변하고 정치 지도자에게 직언을 해야 하는 책임을 직무유기했습니다. 정확한 정세판단이나 대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베트남전은 아주 지엽적인 부분에만 휘말린 채 결말 없는 소모전, 최악의 패배가 되었습니다.


 맥마스터(McMaster) 는 전쟁에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컴퓨터 화면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패배나 다름없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군사 교리를 총괄적으로 재개발한 맥마스터(McMaster) 는 ‘전쟁의 끊임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가 가장 우선되어야 하며 때문에 전쟁의 전략, 전술은 현장 중심적(탈집중화)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합의된 목표에 대해 융통성 있게 현지 정보에 적응하며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최전선의 조직,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중앙집중화, 위계조직의 목적은 모든 사업 단위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중복 업무를 피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산업 사회의 생산성은 비용 절감, 효율만으로도 적정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쟁 우위, 생산성은 비용절감, 기계적 효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혁신에서 옵니다. 의사결정은 필요할 때 바로 나와야 합니다. 늦거나 잘못된 중앙의 의사결정이 가져오는 기회비용은 하위조직의 빠르고 작은 의사결정이 가져오는 기회비용 보다 훨씬 클 뿐입니다.


 오늘날 비즈니스, 경제 환경은 안정적 성장이 예측 가능한 환경이 아닙니다. 전장을 설명하는 용어였던 VUCA(Volatility: 변동성, Uncertainty: 불확실성, Complexity: 복잡성, Ambiguity: 모호성)는 이제는 비즈니스 환경을 대변하는 매우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다양한 시장에서 중앙 집중화된 조직은 그다시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탈집중화의 장점인 신속한 적응에 대한 중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습니다.


 베트남 전의 국방장관 맥나마라(McNamara)는 성능 좋은 컴퓨터, 우수한 통신 수단, 이를 통해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집중시키면 기획가가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정보 기술의 진보는 탈집중화(의사결정, 조직)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기제입니다. 정보 기술, 장비의 혁신 초점은 ‘탄력성’에 있습니다. 숙련된 전문가라면, 의사결정 지령을 받기 위해 중앙화 공간에 자리하지 않아도 종합된 일반 정보를 취득할 수 있고 이를 참고해 현장의 특수 정보를 바탕으로 즉각적인 고급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사례를 통해서 이를 재조명해봅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패배


마이크로소프트는 1993년 초창기 PC용 멀티미디어 제품 바람을 타고 CD-ROM 형태로 엔카르타를 처음 출시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백과사전을 컴퓨터에서 구현한다는 의사결정 아래 위계조직 하 수많은 전문 인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야심찬 프로젝트에 걸맞은 천문학적 비용도 투자되었습니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그들은 브래태니커 등 전통백과사전과의 경쟁에 승리, 백과사전 정보 업계를 평정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십수년 만에 ‘디지털 백과사전’을 만들려던 마이크로소프트의 꿈은 좌절됐습니다.


 2009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엔카르타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실패를 인정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백과사전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인수하기 위해 애썼지만 진정한 경쟁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아니었습니다. 위키피디아라는, 2001년 네트워크 상에서 빈껍데기로 나타나 자생하고 있는, 아무 권위도 없는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탈 중앙화된 조직으로 매우 간단한 룰만 가지고 사실상 누구든 백과사전의 저자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철저히 중앙 계획 하 전문가를 투입해 기획 상품을 만들었고, 실제 2000년대 초반 두 제품들을 비교한다면, 엔카르타가 더 넓은 주제, 더 높은 정확도를 가지는 훨씬 더 좋은 제품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좋아졌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2005년 《네이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위키피디아가 질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을 밝혀낸 연구 결과를 게재했습니다.[ix] 2006년 위키피디아의 항목 수가 1백만 개를 돌파할 때 엔카르타 프리미엄(엔카르타 고급 버전)의 항목 수는 62,000개에 불과했습니다. 2009년 게임은 끝났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위키피디아의 백과사전 전쟁 사례에는 중앙화된 시스템과 탈중앙화된 시스템의 교훈이 잘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통상 조직을 설계하고 운용할 때 조직이 창출할 결과, 그리고 그 결과를 가져다 줄 고정된 객체로서의 구성원을 상정합니다. 하지만 정작 조직 설계의 핵심은 조직이 결과를 창출하는 과정, 그 과정안에 있는 동적인 주체로서의 구성원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누구보다 잘 이용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자타공인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이었지만 정작 기술이 가진 속성 – 탄력성, 연결성 – 과 그 기술로 인해 사람들이 정보를 대하는 태도, 문화가 바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10여년이 흘렀습니다. 2018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소스코드 사이트 깃허브(Github)를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깃허브는 위키피디아와 같은 열린 공간으로 현재 7800만 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8000만개의 소스코드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플랫폼입니다. 단지 수치를 떠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성지와도 같은 공간을 인수한다는 소식은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기 충분했습니다. 물론 그 충격에는 우려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는 나티아 나델라 체제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조직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 경영을 실천하고자 어떤 노력을 하는지, 특히 조직을 해석하는 관점을 과거와 비교해 어떻게 전환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이고도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직의 공식체계 밖에서 형성된, 이전까지는 허용하지도 않던 창발적 탈중앙화 시스템을 공식 조직 안으로 편입, 확산시켜 조직의 체질과 문화를 혁신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가 얼마나 정교하고 안정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위기 앞에서 창발할 것인가 얼어버릴 것인가


 프랙탈 계에서 나타나는 자기조직화, 창발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조직문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직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메타포이기도 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비교해보며 그 맥락을 이해해 볼까요?


 1985년 어느날 미국 해군의 한 항공모함이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항구로 귀환하고 있었습니다. [x] 배를 항구에 정박하는 것은 까다로운 조종 기술을 요합니다. 더욱이 함대가 정박하고자 한 항구는 화창한 기후를 즐기기 위한 요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항해팀 승무원들이 항구로 진입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할 무렵 항해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배의 추진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것입니다. 엔진을 포함해 모든 기계, 그리고 전자장치의 가동이 멈췄습니다. 배는 순식간에 통제불능 상태가 되었고 이때 함대는 항구, 도심에서 1.6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전기가 끊겼으므로 항해사는 전자 장비 없이 배를 조종해야 했습니다. 함대의 크기를 고려할 때 전자장치의 도움없이 배를 조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전기가 끊긴 지 16분이 지난 후 항해팀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전기가 끊긴 상황에서 방향키를 사용하지 않고 수로에 정박하는 방법을 즉흥적으로 고안해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는 남아 있었습니다. 표류하는 배를 일단 정지시키고 닻을 내려야 했다. 만일 닻을 너무 빨리 내리면 거대한 배가 수로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닻을 너무 늦게 내리면 배가 손상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했습니다. 전자회전 나침반 같은 전자장비 없이 그들은 어떻게 위치를 알아 냈을까요? 전자회전 나침반 없이 배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려면 여섯 개의 방위와 여섯 개의 숫자를 활용해 각기 다른 다섯가지 계산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배의 정확한 위치를 계산하는 공식을 찾았지만 그 공식을 정확하게 풀려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배의 위치를 알아내고 이후 배를 정박할 새로운 장소를 논의하기엔 기존 훈련 방식으로는 물리적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문제, 과업을 위해 항해팀은 즉흥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훗날 함대의 카메라에 그 과정이 녹화된 영상을 분석한 UC 샌디에이고 인류학과 교수 에드윈 허친스(Edwin Hutchins)는 항해팀이 배를 정박할 만한 위치를 30개 정도를 잡아내고 증흥적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이끌어낼 때까지 적어도 새로운 13개의 조직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찾아낸 핵심적인 해결책 중 하나는 두 승무원이 집중해서 푼 다섯 가지 계산 결과를 전 승무원이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고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이 사건에서 결국 정확히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냈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해 정확한 문제해결이 이뤄진 것인지는 심지어 그들 스스로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직 내에서 자기조직화와 창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오래된 오토바이가 있습니다. 혼다라는 회사의 슈퍼커브라는 매우 작은 오토바이입니다. 슈퍼커브가 단순히 일본 본토를 넘어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계기, 그 첫 임계점은 무엇이었을까요? 혼다는 일본에서 오토바이 시장의 강자였지만 1960년까지만 해도 생산한 오토바이의 4퍼센트를 미국에 수출하는 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불과 6년 후 미 오토바이 시장의 60퍼센트 이상을 장악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사실 시작은 매우 미약하고 볼품없었습니다. 혼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자국을 넘어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세웠지만 애초에 세운 계획은 대형 오토바이 시장에서 할리데이비슨과 정면 대결하는 것이었습니다. 혼다는 최초 50cc 슈퍼커브가 미국인의 체형과 맞지 않으며, 조금 판매가 되더라도 미국인에게는 브랜드 이미지를 추락시킬 것이라고 생각해 진출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진출을 야심차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그들이 개발한 대형 오토바이용 엔진에 기술적 결함이 발견된 것입니다. 미국의 오토바이 라이더들은 일본 라이더보다 더 빠르고 더 먼 거리를 달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혼다 엔지니어들이 이 점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혼다는 즉각 판매를 중단하고 기존 판매한 오토바이는 즉시 회수했습니다.


 한편 예상치 못한 일은 또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으로 건너와 대형 오토바이를 판매하던 혼다의 미주담당 경영진 및 직원들은 개인적 볼일을 볼 때마다 슈퍼커브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이 타고다니는 슈퍼커브에 관심을 갖고 판매를 묻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이를 감지한 혼다의 담당 경영진들은 대형 오토바이의 판매중단 시기에 일본으로 돌아가 미국에 슈퍼커브, 소형 오토바이를 출시하게 해달라고 대표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때까지 소형 오토바이의 미국 진출을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회사는 즉흥적으로 계획을 바꿔 판매를 승인했습니다. 이후 소형 오토바이는 상상 그 이상의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4년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오토바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독식했습니다. 당시 혼다의 미주 담당 경영진과 직원들은 예측하지 못한 위기 앞에서 또 예측하지 못한 시장의 시그널을 포착해 즉흥적으로 본사 경영진과 협력하고(자기조직화) 혁신을 이뤘습니다.


 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1997년, 미국 괌 공항 인근에서 참담한 비행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악천 후 속 착륙을 시도하던 대항항공 801편이 추락해 승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한 것입니다. 폭우, 관제소의 착륙지원 장비(글라이드 슬롭) 고장 등의 악조건이 있었지만 조사에서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문화’ 이슈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고당시 기장은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랬을까 싶은 의사결정 상의 실수가 반복되었습니다. 먼저 관제소의 피드백을 제대로 인식,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관제소에선 착륙지원 장비의 고장을 사전에 알리고 이에 의지하지 말 것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기장은 이 장비의 신호가 비행기에 잡힌다며 어느 순간 해당장비의 정상작동을 믿고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부기장, 항공 기관사는 이를 두고 잠시 다른 견해를 이야기하다 침묵했습니다. 그 사이 비행기는 관제소가 제시하는 고도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채 아래로 아래로 하강했습니다.
          

 항공사고 조사단의 조사결과, 공개된 교신내용과 조종사들의 행동은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날씨(폭우), 관제소 환경(착륙보조 장치 고장) 등 좋지 않은 외부 상황이 있긴 했지만 참사를 불러일으킨 결정적인 이유는 외부환경도, 혹은 기체결함도 아닌, 보이지 않는 어떤 무형적인 요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장의 연속적인 오판이 있었지만,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는 어느순간 –충분히 회항이 가능한 시점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자칫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도 연결된 지극히 위기상황이라는 것 역시 몰랐을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조종사들은 상황에 맞지 않는 강도의 대화와 행동을 했습니다. 조종간은 원칙적으로나 상황맥락적으로나 기장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얼마든지 행동할 수 있는 시스템, 프로토콜이 이미 갖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괌 참사는 생명이 위태한 극적 위기 상황에서조차 권위주의적 문화가 조직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는 기장의 권위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이유 하나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 뿐만이 아닙니다. 227명의 안타까운 목숨도 희생당했습니다. 미 작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그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_Outliers]에서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이란 주제로 이 사건을 분석했습니다.[xi]


 그는 다문화 심리학 연구에서 활용되는 PDI(Power Distance Index) 지수를 활용, 이와 비행기 추락/사고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 위계/권위적 문화일수록 비행기 추락,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상관관계를 제시했습니다. 1988년부터 괌추락 사건이 발생한 다음해인 1998년까지의 기록을 보면 미국 항공사 유나이티드 항공(UA, United Airlines)의 경우 백만번 비행에 0.27번의 사고를 기록했으나, 동 기간 대한항공은 4.79로 무려 17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사실 이 시기의 대한항공 사고를 분석해보면 괌사건에서 특정된 ‘문화’ 이슈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늘상 도사리고 있었던 ‘상시적 위험’이었습니다. 대한항공은 99년 4월 델타 항공과 에어 프랑스로부터 협력 관계 중단을 통보받았고, 이 시기 주한 미군은 가능한 대한항공에 탑승하지 말 것을 권고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비행 시 귄위주의 문화가 심각한 결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7~80 년대부터 세계 항공업계가 갖고 개선코자 노력했던 주제였습니다. 1977년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에서 두 여객기가 충돌, 583명의 탑승객이 사망하고 6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참사 이유 역시 대한항공 조종석 상황을 복사 붙여넣기 했다 싶을 정도로 유사했습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나서 동질의 참사가 반복되었기에, 괌 사건은 직무수행에서 ‘문화’적 요인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상징하는 이슈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항공계를 넘어 우리사회에 보편적으로 그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고 문화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


 기업, 조직 경영 관점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초점을 맞춰 생각해봐야 할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전에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와 같은 목표지점일 것입니다. ‘극단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문제 상황에서 우리 조직은 과연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 조직의 현 주소는 어느 곳에 속할까? 우리 조직은 혹시 저 옛날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카르타 조직처럼 우리 만이 할 수 있고 우리가 시장 앞에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조직은 아닐까? 우리 조직은 예상치 못한 결함, 문제, 위기 앞에서 팔라우 함대 선원이나 오토바이 회사의 조직처럼 유연하게 문제 해결을 위한 신호를 포착하고 협력할 수 있을까? 혹시 심각한 문제 앞에서 경직된 채 상부의 명령과 통제를 무기력하게 기다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를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이 여기 있습니다. 복잡계 사회에서 경영의 본질은 예상치 못한(수시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위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 강력히 명령하고 지시하지 않더라도 조직 자체가 자기 조직화해 혁신의 신호를 포착하고 자연스럽게 창발하는 모습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경영은 곧 조직이 가진 자기 유사성이 극단의 문제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자기조직화해 창발, 혁신으로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프랙탈을 구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프랙탈은 곧 ‘문화’ 이며, 결과로서의 ‘문화’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앙집권적 통제보다는 분산화된 자율, 통제에 의한 권위보다는 자기조직화에 의한 창발로의 이행은 수많은 기업의 미래를 바꿔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했던 기업들도 이제는 태도를 바꾸어 기업, 조직 스스로를 창발적 시스템화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같은 기술친화적 용어로 미래를 표현하고 예측하기 이전에 미래의 흐름을 조직 관점에서 감히 예측해 보자면 대전환 시대에 지속가능하게 살아남은 기업은 어떤 식으로든 조직 내 ‘창발적 생태계’를 구현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수백 년간 믿어 온 것과는 정반대로, 우리 주위의 생명 형태에 다양성과 차이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종의 분화 뒤에는 그 어떤 중앙권력도 없다. 우리가 지난 시대의 오류를 계속해서 강화하는 대신 바로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창발적 제도와 조직을 구성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Joi Ito, Jeff Howe, WHIPLASH: How to Survive Our Faster Future, 2016 中[xii]




Reference

[i] Bert Hölldobler, Edward Wilson, The Superorganism, W.W.Norton&Company, 2009, 20p

[ii] Elliott Jacques, “In Praise of Hierarchy” Harvard Business Review, January 1990

[iii] ibd.

[iv] Gary Hamel, Michele Zanini, The End of Bureaucracy, Harvard Business Review, 2018 11-12,

김성남, 자율구조 만들려면 조직원 역량부터 끌어올려라 , Harvard Business Review Korea 2019. 1

[v] Elliott Jacques, “In Praise of Hierarchy” Harvard Business Review, January 1990

[vi] Ibid

[vii]Friedrich Hayek,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1945 / 위키피디아에서 정리된 내용 재인용 및 의역: https://en.wikipedia.org/wiki/The_Use_of_Knowledge_in_Society

[viii] Herbert Raymond McMaster,「 Dereliction of Duty」, Harper Perennial, 1997

[ix] Jim Giles, “Internet encyclopaedias go head to head,”, Nature 438 (December 15, 2005), pp.900-901

[x] E. Hutchins, “Organizing Work by Adaptation,” Organization Science 2, no. 1(1991): 14~39

[xi] 말콤 글래드웰Malcom Gladwell(저), 노정태(역), 아웃라이어outlier, 김영사, 2009, 7장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

[xii] Joi Ito, Jeff Howe, WHIP,LASH: How to Survive Our Faster Future, 2016,

한국어판본 44-45p 참조, 글에서 등장하는 정부라는 단어를 맥락상 조직이라고 표기했다.


Book: 상효이재, 초개인주의 Over-Individualism, 한스미디어, 2022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 미래의 창,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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