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상이 요구하는 삶과 경영의 태도
테일러리즘의 핵심은 자르고 분석하고 쪼개어 문제를 발생시키는 독립적인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는 요소환원주의적 시스템입니다. 이는 전체는 언제나 부분의 합과 같다는 인식이 전제된 방법론으로 ‘자르고 쪼개어 점수화하고 평균을 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는 지난 수세기 동안 근대 과학을 지탱한 핵심적인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조직의 성과를 창출하는 핵심적인 인적 요인을 ‘슈퍼스타superstar’ 개인의 존재로 한정하거나, 구성원의 성과를 점수화하고 평균 내어 총합하는 것으로 재단해왔습니다.
우리는 기업현장에서 이런 현상을 수없이 목도합니다. 가령 우리가 한 개인을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을 봅시다. ‘성과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개인의 평가는 업적평가와 역량평가로 나뉩니다. 업적평가는 목표항목을 나열하고 다시 이에 대한 목표수치를 계량화해 목표대비 달성도를 점수화 합니다. 역량평가는 기업을 분해해 가치를 뽑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항목을 추출합니다. 그리고 세부 항목별로 점수를 매깁니다. 책임감과 열정과 성실함과 자기주도성과 조직 기여도 등에 분산되어 각각의 점수를 받고 그 점수를 산술적으로 계산한 것이 나의 평가 결과가 됩니다. 그리고 약속된 업적평가 점수와 역량평가 점수 비율(ex. 6:4) 공식에 대입해 최종 점수 및 등급을 도출합니다.
그 결과가 과연 기업, 구성원의 ‘업적’ 혹은 ‘역량’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일까요? 현대 기업에서 개인은 도전적 몰입과 동기를 위해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바라지도 않는 목표를 할당 받고 그곳에 걸린 점수를 따내기 위해 정신과 육체를 갈아 넣습니다. 심지어 목표는 내 노력과 무관한 통제 불가능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가치를 깊게 숙고하고 관찰하고 내재화하기 보다, 각각의 점수에 걸린 행동을 흉내내는 데 그칩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수라는 피상적인 틀에 갇히고, 계량화, 데이터화 된 평면적인 인간으로 전락합니다. 우리는 ‘분해’하고 ‘분석’하고 ‘정의’하는 데 익숙합니다. 반면 이를 다시 조직의 맥락과 심리적 환경, 메커니즘을 반영해 ‘유기적’으로 ‘구성’해 조직의 실질적인 ‘현재’와 ‘미래’를 실체화하는 것에는 미숙합니다. 피터 센게 Peter M. Senge MIT 경영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우리는 어떤 문제든지 분해하고 나누어서 생각하라고 배운다. 이러한 방법은 분명 복잡한 과제와 주제를 다루기 쉽게 해주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자신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보지 못하고 전체와의 연관성을 감지하는 타고난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 즉 ‘큰 그림’을 보려고 하면, 조각난 파편을 머릿속에서 재조립해야 한다. 그러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지적처럼 그러한 노력은 소용이 없다. 거울에 비친 진정한 모습을 보겠다면서 깨진 거울의 파편을 맞추는 행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노력해도 되지 않으니 머지않아 우리는 전체를 보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i]
뇌에 대한 최신 연구는 요소를 추출해 분석하는 것이 아닌 전체 현상과 그 현상에 관여하는 플레이어들의 유기적 상호관계로 초점을 옮기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좀 더 직관적으로 설명해줍니다. 그간 뇌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전통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연구진은 뇌를 하나의 분석 대상으로 보고 뇌 해부와 세포 구성, 뇌 기능 등을 분절하고 나누어 각각을 독립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런 방법론으로는 ‘사랑’, ‘분노’와 같은 감정이 정확히 어떤 요소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정의하고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을 몇 개의 뉴런에서 찾아 낼 수 없고 대뇌에서 다양한 형태의 분노를 책임지는 구역이 정확히 어디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뇌에 있는 세포가 아니라 그 세포들 사이(관계)를 통찰할 때 설명이 가능합니다. 일련의 맥락은 인간의 지각이 우리 뇌에서 고립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이 아니라, 생태계 내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생태계는 사물과 그 주변 사물들 사이의 관계와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뜻합니다. 보 로토 Beau Lotto 런던대학교 신경과학자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우리 뇌와 몸 사이의 상호 작용과 다른 뇌들과 몸들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세계와의 상호 작용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생명은 환경이 아니라 ‘생태계’이다. 생명, 그리고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사이공간 the space between’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아간다.”[ii]
MIT 미디어 랩 소장 조이 이토Joi Ito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뇌를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취급한다. 분리된 기관이라기 보다 서로 겹치는 여러 (복잡계) 시스템의 소재지로 파악한다. 늘 바뀌는 자극에 따라 기능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맥락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시스템들의 소재지 말이다.”
뇌 연구에서의 혁신은 뇌를 ‘대상’으로 분절하고 분리해 보기보다 뇌 자체를 복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한 유기체적 시스템으로 보고 세포와 세포와의 관계까지 고려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그 사실 그대로도 경이로운 통찰이지만 기업 경영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 관점의 변화를 촉구하는 훌륭한 메타포이기도 합니다.
피터 센게는 조직과 구성원이 더 이상 고전 물리학, 경제학적 관점을 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복잡계 적으로 사고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는 이를 ‘시스템 사고’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조직, 구성원은
지식과 인간, 조직은 살아있는 시스템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부분보다는 전체를, 분리보다는 통합을, 또 개개인의 개체에 집중하기 보다 개인 간의 상호작용, 관계로 초점을 이동해야 합니다. 테일러리즘이 표방하는 과학적 관리기법과 그에 기반한 시스템들은 인간을 곧 기계와 같다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가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관념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야는 현실 인간의 사고 자체를 평면적으로 제한해왔다는 것입니다. 사회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일찍이 「1차원적 인간」을 통해 산업사회가 갖는 철학과 시스템이 우리로 하여금 획일적인 사고와 태도, 습관을 갖게 해 결국 평면적 인간으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습니다. 마르쿠제의 지적과 같이 1차원적 사고로 이루어진 일반 경영이 가진 ‘시스템’은 1차원적 인간을 양산하는 악순환고리를 형성했습니다. 문제의 본질보다는 드러난 현상들에 대한 임기응변식 대처,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접근이 일상적인 문화가 기업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업의 정책과 제도, 운영 시스템은 오히려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그래서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고철덩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드윈 애벗Edwin Abbott의 소설 「플랫랜드」는 평면만이 전부인 2차원 공간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iii] 그는 이를 통해 그 시대의 지배적 도그마(Dogma: 비판적 사고가 허용되지 않으며 맹목적으로 신봉되어야 하는 명제)에 갇힌 사회, 구성원을 비판한다. 화자로 등장하는 A.스퀘어(정사각형)은 플랫랜드를 벗어나 모든 것이 선으로 구성된 ‘라인랜드’에서 저차원의 시선을 경험합니다. 그 안에서 2차원 공간을 설명하려는 그의 노력은 실패합니다. 훗날 정사각형은 3차원 세계의 이방인 구Sphere를 만나는데 라인랜드에서 자신의 동작을 이해시키지 못했던 A.스퀘어 역시 이방인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구Sphere는 몸으로 직접 3차원을 설명합니다. 스퀘어를 플랜랜드에서 끌어내 탈출시키고 3차원 공간으로 직접 데려갑니다. 스퀘어는 새로운 세계를 접한것에 그치지 않고 3차원 이상의 세계를 추론하고 상상합니다. 다시 플랫랜드로 돌아온 주인공은 거주민들에게 제한된 차원을 뛰어넘는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시간을 바쳤습니다.
우리가 단순계라는 플랫랜드에 갇혀 사고하는 이상 복잡계 조직•경영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구’sphere를 만날 지언정 우리는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찌 차원을 탈출해 ‘구’sphere의 세계를 가 이를 보더라도 그 과정과 패턴,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또 다른 플랫 랜드에 갇힐 뿐입니다. 복잡계 경영의 본질은 1차원적 사고를 벗어나 시스템 사고를 추구함과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자기 조직화(Self – Organization: 외부로부터의 압력, 인풋 없이 스스로 혁신적으로 조직을 꾸려가는 것)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피터 센게가 주창한 시스템 사고 역시 궁극은 ‘학습하는(자기 조직화) 조직’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조직, 학습하는 조직은 지혜, 교훈을 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를 토대삼아 진화, 창발할 수 있습니다.
References
[i] Peter Senge, 강혜정 옮김, 학습하는 조직, 에이지21, 24p
[ii] 보로토Beau Lotto(이충호 옮김), 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 해나무, 2017, 17p
[iii] 에드윈 애벗 Edwin Abbott, 플랫랜드에 대한 위키피디아 설명 참고(https://en.wikipedia.org/wiki/Flatland)
Book: 상효이재, 초개인주의 Over-Individualism, 한스미디어, 2022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 미래의 창,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