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e Devil(Netflix Original), Marvel - Main Title
프로세스가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우리의 핵심 철학입니다.
Our core philosophy is people over process.
-Netflix-
‘복잡성이 높아질수록 단순한 원칙을 수립하라’는 통찰을 적극 적용한 대표적 기업이 넷플릭스입니다. 넷플릭스는 조직 안팎에서 모두 인간의 개개인성, 다양성에 주목하는 회사 중 하나입니다. 비즈니스적으로 소비자 개개인의 들쭉날쭉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이를 적시에 추천, 제공하는 기술이 핵심이지만 동시에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프로세스를 넘어선 사람(People over Process)이라는 것을 공식화합니다. (넷플릭스는 자신의 문화강령 전문을 홈페이지에 싣고 있다. 우리의 해석과 함께 검토해볼 수 있도록 이 챕터의 마지막 장에 공개된 해당 강령을 실어 두었습니다.)
강력한 기술기반 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가 조직 운영에서 강조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유와 책임’이라는 추상적인 문화적 프레임, 원칙입니다. 넷플릭스를 모방한 많은 기업들이 ‘자유’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 혼동해 조직적 혼란에 빠진 것과는 별개로 넷플릭스는 ‘책임’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의 자유로 자유의 의미를 그들의 문화 문서(Culture Deck) 곳곳에서 명확화 합니다. 더불어 시스템, 프로세스를 단단하게 엮어 다양성이 만들어 내는 무수한 복잡성에 대응하기 보다 사람 중심의, ‘느슨한 연결, 그러나 높은 수준의 동맹(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을 추구합니다. 구체적 전략과 목표를 조율해 이를 중심으로 동맹을 맺되, 이를 제외한 영역에서는 서로를 신뢰, 관용한다는 함의는 ‘똘레랑스’가 가지는 함의 -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 - 와도 매우 밀접합니다.
넷플릭스 이전에도 ‘핵심가치’라는 명목으로 조직을 경영하고자 했던 기업은 매우 많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기업 대다수라고 해도 무방할지 모릅니다. MIT Sloan의 분석에 따르면 약 700여개의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80% 이상이 웹사이트에 공식적인 기업의 핵심가치를 제시하고 있고 지난 30여년간 주요 비즈니스 잡지에서 인터뷰한 CEO의 4분의 3 이상이 회사의 핵심 가치에 대해 논하고 있다고 합니다.[i]
이쯤 되면 원칙/가치 수립은 기업이라면 반드시 해야하는 법칙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대부분은 기업과 직원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 효과를 주기 보다는 전시용에 불과한 경우가 많음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디젤 게이트를 촉발시킨 폭스바겐, 대형 사기극으로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엔론, 웰스파고 등은 그들의 핵심가치로 윤리성 또는 성실성을 포함시켜 강조하고 있었고 최근 안전성 문제가 지속 붉어지고 있는 보잉의 원칙에도 품질과 안전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원칙’ 혹은 ‘가치’가 있지만, 그것은 실질적인 조직의 의사결정 기준이 아니었고 의사결정과 운영 방법은 방법대로 – 대부분은 앞서 기술한 테일러리즘 기반의 기계적, 관료적 경영 – 가치는 가치대로 이원화해 관리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넷플릭스의 ‘원칙’이 특별한 이유는 원칙을 창조했다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원칙’을 만들고 그 중요성을 대중화시켰다는 점입니다. 그것의 핵심은 경영의 실질적인 통합적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기업의 원칙은 궁극적으로 ‘누가 승진하고 보상을 받고, 또 해고를 당하는지’ 실제 이행되고 보여지는 결과를 통해 진짜인지 여부를 판단 받습니다.
회사의 진짜 기업가치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가치가 아니다.
누가 보상받고 승진을 하고 내보내는지로 보여지는 것이 곧 진짜 가치다.
The actual company values, as opposed to the nice-sounding values, are shown by who gets rewarded, promoted, or let go.
Netflix Culture Deck, 『Freedom & Responsibility』[ii]
‘원칙’에 기반한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비단 넷플릭스의 전유물만은 아닙니다. 아마존 역시 세세한 규율보다 작동하는 원칙을 문화화 한 조직 운영을 꾀합니다. 아마존 역시 넷플릭스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원칙을 모든 프로세스와 기능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강력한 문화 경영을 하고자 하는 회사 중 하나입니다. 관련해 12년여간 아마존에서 제프베조스의 기술고문 역할을 수행한 콜린 브라이어 Colin Bryar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마존의 원칙은.. 대부분의 기업에서 운영하는 것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다른 업무방식을 이끌어 냈습니다.. 어떤 직원이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여 누가 봐도 ‘장기적 사고’를 무시한 채 단기적 판단에 근거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면, 또는 ‘고객 중심’의 판단이 아닌 경쟁자 기준이된 제안이나 비판을 내놓았다면 회의 참석자 중 누군가가 마음에 걸리는 바를 입 밖으로 꺼내기 직전까진 회의실에 불편한 침묵이 흐를 것입니다.. 아마존의 원칙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아이디어를 토론할 때나 문제 해결을 위한 최상의 접근 방식을 결정할 때도, 우리는 우리의 리더십 원칙을 항상 적용합니다. 아마존에서 오래 일할수록 우리의 원칙은 삶의 일부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더 많이 스며들게 됩니다.[iii]
또 다른 기업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 브릿지워터 어소시테이츠_Bridgewater Associates 를 봅시다. 브리짓워터는 보수적인 산업이라 평가받는 금융 영역에서 16가지의 단순한 원칙 기반으로 조직과 시장의 복잡성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제 1 원칙은 극단적 진실성과 투명성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칙은 다섯가지 연계된 부제로 제시되어 조직 구성원이 다양한 상황 맥락에서 응용하면서도 이것이 개개인에 따라 달리 해석해 왜곡할 수 있는 여지를 줄입니다. 이에 따라 브리짓워터가 수립한 모든 프로세스와 업무방식은 공개가능해야 합니다. 관리자들은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동시에 동료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솔직함’을 명분으로 감정적/편파적 태도를 취하는 것, 자신의 솔직함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태도는 배격됩니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라는 계명으로 유명한 배달의 민족을 비롯 국내 스타트업씬에서 가치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 기술기반 스타트업 상당수 역시 마찬가지로 조직의 개개인성을 수용하면서도 민첩하게 ‘조직화’된 효과를 구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스템을 복잡화 하는 대신 단순한 원칙_Principle에 기반한 ‘프레임워크 내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맥락의 금융, 기술, 디자인, 비즈니스, 관리 조직과 개성 높은 구성원이 모인 조직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경영진과 구성원은 ‘본질에 집중하고 짧은 시간 안에 빠른 변화와 가치를 만들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최소한의 원칙, 약속’을 정하고 구체화하는 것으로 복잡한 관리프로세스와 통제적인 규율을 대체했습니다.
작동하는 원칙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까요? 넷플릭스 등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원칙 중심의 경영을 하는 기업의 핵심은 무엇보다 구성원 관점에서 ‘왜’ 원칙을 생각하고 지켜야 하는지 그 ‘맥락’이 풍부히 드러나 있다는 점입니다. 왜 원칙이 필요하고, 원칙을 따르는 것은 또 왜 나와 조직에게 필요한지, 우리가 그를 통해 추구하는 조직 운영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련의 기술(記述)이 내러티브(narrative)를 형성해 조직 안팎으로 강력히 구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제시했던 넷플릭스의 문화강령을 통해 좀 더 깊이 들어가볼까요?
작동하는 원칙을 구성하는 가장 첫걸음은 공감 가능한 ‘목적’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조직은 왜 존재하고 원칙은 왜 가져야하는지, 그 목적에 대해 공감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는 회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떻게 공동의 목적을 위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하나로 집결시키는지를 나타냅니다. 목적은 회사와 직원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거시적인 방향과 의미를 제시해 줍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삶의 그 어떠함도 견딜 수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왜’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내릴 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행동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청소’라는 것에 대해 기존의 조직 경영은 마치 알고리즘을 짜듯 ‘쓰레기가 땅에 떨어져 있으면 줍는다.’ 혹은 ‘의자가 책상 밖으로 삐져나와 있으면 넣는다.’라는 식의 명령어를 주입하기에 바빴다면, 원칙 중심의 조직 경영은 우리가 왜 ‘청소’를 해야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각 구성원이 스스로 조직의 원칙에 부합하는 답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좀 더 풍부한 행동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플릭스 역시 문화강령 말미에서 소설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의 명언을 빌어 직원에게 할 일을 세분화해 지시하는 것보다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넷플릭스 체제의 길잡이이자 핵심이라고 소개합니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이 나무를 모으고 일을 분담하게 일일이 시키는 대신 사람들이 넓고 끝없는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생텍쥐베리, 어린왕자 / 넷플릭스 문화강령 中-
넷플릭스는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원칙과 이를 기반한 자율성 강화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맥락도 전달합니다. 과거 형식 없이 원만했던 조직이더라도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삐걱대기 마련인데 이때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관료적인 절차와 세부적인 규칙을 도입합니다. 이런 표준적 관리 방식이 안착하면, 회사 비즈니스 모델의 효율이 올라가기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자리 잡고, 남다른 생각으로 현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환영받지 못하게 되는 등 조직은 빠르게 경직됩니다. 이런 유형의 기업은 그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현 시점에서는 작동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 변동 앞에서 유연히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시점에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넷플릭스가 가지는 원칙은 모든 상황에서 그대로 따라하면 되는 세세한 규칙의 개념이 아니라 모호하고 추상적인 상황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목적, 나침반을 제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넷플릭스의 목표는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넷플릭스는 직원들이 회사에 최선인 일을 판단해 실천할 것이라고 믿으며, 자율과 권한을 보장하고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판단과정을 돕습니다. 이렇게 자율성이 높으면 혼돈에 빠질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는 복장 규정도 없지만, 옷을 입지 않고 출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지는 모든 일에 규칙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직장에서는 옷을 입는 게 좋다는 사실을 대부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문화강령 中-
조직의 목적과 원칙이 제시되었다고 작동하는 원칙과 자율성 높은 체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에 기반한 원칙이라 하더라도 원칙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추구하는 것인지 모호하거나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과도하게 직접적이라 특수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협소한 원칙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적정 수준의 추상성과 구체성이 조율되어야 합니다.
원칙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상황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단 하나의 상황에만 적용이 되는 원칙은 위에 언급했듯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이 아니라 대상을 통제하는 방식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원칙은 하나 이상의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또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원칙의 범주가 반대로 너무 광범위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일에 맥락을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생각해봅시다. 맞는 말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구성원에게 모든 일의 맥락을 공유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그 구체적 맥락을 전하지 않는다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허무한 메아리가 되어 조직에 질서 있는 자유 대신 혼돈을 가져올 공산이 큽니다. 위와 같은 원리를 감안하고 넷플릭스의 원칙 스테이트먼트(Statement) 일부를 다시 읽어봅시다.
- 넷플릭스에서는 직원들의 주체적인 의사 결정을 장려합니다. 어떤 결정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으면 매니저와 상담하더라도, 결정은 직접 내리기를 기대합니다. 직위와 관계없이 모든 리더의 역할은 개개인이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맥락을 정확히 제공하는 것입니다.
- 넷플릭스는 회사 전반에서 의사 결정 능력을 배양하려고 힘씁니다. 고위 경영진이 의사 결정에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조금 관여하는지가 넷플릭스의 자랑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경영 방식은 아닙니다. 각 리더는 교육과 맥락을 제공하고 현황을 숙지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맥락을 제대로 제공했는지 확인하려면 세부 내용 중 일부를 뽑아 살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부를 살피는 목적이 작은 결정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맥락을 보강해 현명한 결정을 유도하는 것이란 점에서 미시적 경영과 다릅니다.
- ‘통제 대신 맥락 공유’에는 일부 사소한 예외가 있습니다. 응급 상황이라서 적절한 맥락이나 원칙을 고민할 시간이 없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팀원이 아직 맥락을 숙지하지 못해 확신이 없거나, 적임자가 아닌 사람에게 의사 결정이 맡겨진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 넷플릭스에서는 상사의 만족이 아닌, 넷플릭스의 비즈니스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매니저 의견에 반대해도 됩니다. 무엇이든 숨기는 건 절대 안 됩니다. 매니저에게 “반대하시는 건 알지만 진행하려고 해요. 이 방법이 낫다고 보거든요. 제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미리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해도 됩니다. 넷플릭스에서 지양하는 일은 매니저가 선택하거나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위는 넷플릭스가 조직을 운영하는 원칙에 대해 ‘통제 대신 맥락을 공유’함으로써 구성원이 자율적이면서도 능동적으로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맥락을 담은 강령입니다.
이는 분명 한가지 상황이 아닌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되, 구성원에게 ‘맥락’을 ‘왜’ 공유해야 하고,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지 그리고 맥락 공유에 대한 예외는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맥락이 담겨 있어 잘못된 해석과 오용을 방지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성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은 이를 통해 자유가 ‘특별한 상황(원칙)에서’ 작동하는 것임을 인식해 주체적이면서도 질서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한 강력한 놀이입니다. 특히 서사성이 있는 이야기, 내러티브(Narrative)는 단순한 사실보다 흡입력이 강합니다. 철학자 알레스데어 맥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에 따르면, 내러티브는 모든 인간이 삶을 이해하는 기본 원리이며,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자아를 구성합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 로버트 콜스(Robert Coles)는 인간이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 문화, 생각 뿐만 아니라 좋은 행위와 그렇지 못한 행위, 옳은 행동과 옳지 않은 행동, 그 사이에 존재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배운다고 말한다. 즉 내러티브는 사람이 경험을 조직화하고 이해하며 지식을 구성하는 주요한 사고양식으로 조직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원칙’에는 이런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작동하는 원칙을 가진 조직은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원칙을 조직 안팎으로 구전(口傳)시켜 이를 문화화 합니다. 조직의 리더가, 그리고 구성원이 ‘원칙’을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하나의 서사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 원칙은 다듬어 지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추게 됩니다. 우리가 알아채야 할 것은 이렇게 형성된 내러티브는 조직의 원칙을 강력하게 강화하는 기제인 동시에 조직 고유의 정체성, 특수성을 형성하는 매개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넷플릭스의 원칙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넷플릭스의 원칙은 처음부터 그냥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여타의 일반적인 회사처럼 원칙 혹은 핵심가치가 유행하기에 당대의 잘나가는 기업을 벤치마킹해 도출해낸 것도 아닙니다. 넷플릭스의 원칙은 넷플릭스가 창업 후 위기를 겪고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비즈니스가 처음부터 잘 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1997년 창업한 넷플릭스는 불과 설립 3년만에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회사 역시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한 것입니다. 투자가 힘들어진 넷플릭스는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비디오 프랜차이즈(넷플릭스는 당시만 해도 DVD 우편서비스가 메인 서비스였습니다) 회사인 블록버스터(Blockbuster)에 회사를 매각하려 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2001년 넷플릭스는 생존하기 위해 직원의 1/3을 해고해야 했습니다. 남은 사람들로 고군분투하던 넷플릭스는 이내 시장에서 기회를 찾게 됩니다. 침체 일로였던 비즈니스가 살아나면서 어느 순간 다시 사람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왔습니다. 한사람이 두배의 업무를 – 그것도 자신이 담당한 영역을 넘어 – 해야했습니다. 여느 회사, 상황이라면 조직이 혼돈, 불만으로 얼룩질 법했지만 넷플릭스의 조직 분위기, 문화는 그 어느때 보다 좋았고 구성원들은 몰입(flow)하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Wilmot Reed Hastings Jr.)와 당시 인사책임자 패티 맥코드(Patty Mccord)는 넷플릭스의 몰입하는 문화가 오히려 회사의 위기 상황에서 싹트기 시작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비즈니스 사정이 나아진 후에도 사람은 부족하고, 또 그 와중에 잘못된 예측과 서비스로 실패를 했음에도(넷플릭스는 2003년 300달러짜리 하드드라이브로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처참히 실패했다), 경영진을 포함한 구성원은 하루하루가 기다려지고 높은 몰입을 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넷플릭스 고유의 원칙과 문화적 프레임워크가 탄생한 것입니다.
당시 넷플릭스에 남아있던 구성원들은 높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또 유사한 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 능통하면서도 능동적으로 협력해 조직에 높은 성과를 이끄는 구성원들로 대부분의 조직이 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위기가 있었음에도 그 위기를 극복하고 발빠르게 사업의 방향을 바꾸거나 더 큰 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소수의 의사결정과 성과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능동적인 의견제시와 의사결정, 행동이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이 특별한 경험 속에서 넷플릭스의 원칙을 아우르고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기준이 탄생합니다.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다.’ 넷플릭스는 화려한 라운지, 식사와 간식거리 제공 등 형식적인 복지가 아닌 사람이 최고의 복지임을 천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밝힌 최고의 동료, 사람은 다름아닌 ‘어른’입니다. 넷플릭스는 ‘어른’을 채용해 ‘어른답게’ 대우하는 것을 기준으로 그 모든 원칙과 맥락을 구성한 것입니다.
넷플릭스가 말한 ‘어른’은 결국 우리가 서론에서 이야기한 ‘인간다운 인간’의 정의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그것을 독선으로 발휘하지 않는 인간, 때로는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이 예측한 것이 언제든 백지화되고 모든 것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 오히려 그 변화, 도전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더 나아가 조직의 혁신, 변화 과정에서 스스로를 판단해 때로는 스스로 물러날 줄도 아는 사람,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의견과 행동은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용기내서 말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어른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든 타인을 어른으로 대우해 기계적인 명령과 지시보다는 어른답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 상황 맥락을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 넷플릭스의 문화 강령 속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지금까지는 가정하지 않았던 조직 내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일련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사업초기 무수한 시행착오와 시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조직, 인재에 대한 비범한 관점을 수립했고, 그 강력한 전제에 따라 구성된 구성원이 공감하며 추구하는 가치를 규범화 했다. 그들이 속한 비즈니스 시장에서 시간을 거치며 그들 고유의 경험이 하나의 서사로 구성되면서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작동하는 원칙, 문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i] https://sloanreview.mit.edu/article/when-it-comes-to-culture-does-your-company-walk-the-talk/
[ii] Netflix Culture Deck, 『Freedom & Responsibility』https://jobs.netflix.com/culture?lang=%ED%95%9C%EA%B5%AD%EC%96%B4
[iii] 콜린 브라이어 Colin Bryar, 빌카 Bill Carr, 순서파괴 Working Backwards, 다산북스, 2021
넷플릭스의 Culture Deck은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위의 글을 읽고 전문을 한번 꼼꼼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Netflix Culture Deck, 『Freedom & Responsibility』https://jobs.netflix.com/culture?lang=%ED%95%9C%EA%B5%AD%EC%96%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