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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May 12. 2024

인간 이해 1: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인간다움이란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설과 모순, 이성과 사랑

Philip Glass, Opening(Official Video)

 

 과학기술이, 혹은 다른 무엇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이 그것에 온전히 의존할 수 없고 조직의 지속 가능한 생존 혹은 성장 역시 궁극적으로는 우리 인간의 주체적인 힘(autonomy)에 의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경영, 비즈니스 현장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다움이란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 논의한 ‘원칙’, ‘문화’, ‘세계관’, ‘조직’, ‘목표’ 등의 맥락 역시 이와 관계된 것이지만 이 장은 보다 우리 ‘인간’에 집중해 탐구해 보려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인간 자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전제될 때 나머지 체계와 맥락 역시 이를 중심으로 그 의미와 목적이 비로소 통합,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첫 출발을 새삼스럽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해보려 합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흥미로운 주제로 다뤄졌습니다. 인간본성에 대한 대표적인 대립구도는 성선설과 성악설입니다. 성선설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관점이고, 성악설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관점입니다.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四端이 천성에서 발생하므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소는 인간 본성은 본디 선하나, 문명과 사회제도의 영향을 받아 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순자는 루소와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인간의 성품은 악하나 인간이 노력함으로써 선을 취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라 가정, 인간의 본성이 악함을 추론하였고 쇼펜하우어 역시 죄악이 인간 본성에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에 제거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경영과 조직 패러다임 앞에서 필요한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은 무엇일까요?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간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가 인간본성에 있어 중요한 초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인간 본성이 선하든, 악하든 앞으로의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적응’ 할 것인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이 ‘자기를 위한 인간Man for Himself’에서 밝힌 인간본성에 대한 생각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인간 본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문화는 인간의 고정된 본능으로부터 형성된 결과물이 아니다. 또한 문화는 인간 본성이 수동적으로 완벽하게 순응해야 하는 고정된 요소도 아니다. 인간은 불만스런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지만 그 적응 과정에서 자신의 본성에 내재된 고유한 속성에 따라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명확히 반응한다… 따라서 인간 과학은 인간 본성 자체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한 모델을 구축하려는 학문이다.[1]"


 에리히 프롬은 본성의 선, 악 탐구보다는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실존적으로 이분법적 모순을 가진 존재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의식함과 동시에 자신의 무력함과 한계를 깨닫습니다. 살아 있는 동시에 죽음을 예상합니다. 누구나 잠재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삶의 시간이 너무 짧아 이를 모두 펼쳐낼 수 없습니다. 혼자인 동시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평생 이와 같은 실존적인 이분법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가야만 합니다. 그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는 저마다 독특한 인격_personality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를 수 있지만 인격 안에서도, 나타나는 비생산적인 지향을 인식하고 생산적인 지향을 추구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역설과 모순을 해결해주는 해법은 생산적인 사랑과 이성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생산적인 사랑과 이성을 통해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성의 힘으로 인간은 어떤 대상을 파고들어가 실질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대상의 본질을 파악합니다. 더불어 사랑의 힘으로 자신과 상대를 갈라놓는 벽을 허물고 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때 생산적인 사랑은 사람의 성장을 위한 수고와 배려와 책임이 전제된 정서적 힘입니다. 생산적인 이성은 대상에 대한 존중에 기반한 객관성(객관성 1)을 바탕으로 현상 전체를 고려해(객관성 2) 본질과 관계성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어떤 인격이든 생산적 사랑과 생산적 이성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인간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우선 바로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든 객관적인 자기 인식(메타인지), 대상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그 본질을 파악하고 타인, 문화와 관계 맺음을 통해 상호 영향을 미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관점은 최근의 과학이 밝혀낸 인간에 대한 ‘속성’과도 일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이 입장이 참이라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조직을 경영함에 있어 인간에 대한 두가지 측면에 좀 더 제대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어떤 인간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이라면 다음에 직결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인간상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과학적 근거이자 논거는 ‘성장 마인드셋’[2]입니다. 이는 왜 인간의 본성과 능력이 고정된 것이 아닌지를 뒷받침하는 근거 이론으로 작동하는 동시에 우리가 어떤 인간상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조직은 개인의 단순계적 집합이 아닙니다. 즉 ‘선한 사람’을 단순히 합한다고 해서 ‘선한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선과 악, 혹은 능력 측면의 고성과와 저 성과는 개인의 자질을 넘어 주변 상황 맥락, 시스템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두번째로 초점 맞춰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즉 우리는 단지 선한 [의도]만으로 상황과 사회,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가 의도한 대로 어떻게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늘 탐색하고 그 사이(Gap)를 관리하는 것에 관심과 역량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행동 경제학과 사회심리학 근거 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넛지Nudge'의 맥락에 대해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넛지는 '슬쩍 찌르다'는 뜻을 가진 용어로 행동경제학에서 '선택 설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시스템 상의 설계로 사람의 선택을 많이 받게 하거나, 또 반대로 선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다는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넛지의 개념과 맥락을 인식하고 우리 조직 내부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우리의 조직 운영 시스템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방향으로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도와 결과의 차이를 보다 지혜롭게 인식하고 [의도]를 의도한 [결과]로 잇는데 까지 우리의 인식과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Reference

[1] Erich Fromm, 강주헌 옮김, 자기를 위한 인간 Man for Himself, 나무생각, 50p

[2] 성장마인드셋은 스탠포드 심리학자 [캐롤 드웩]이 연구, 주장한 이론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도서, 영상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 도서: 마인드셋 (링크)

- 영상: TED 영상- 자신이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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