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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준 Dec 19. 2024

숯 위에 얼음을 올리다

빙탄 불상용

흔히 삼천갑자 동방삭이란 말을 어릴 때 들어보곤 했을 것이다.
한 갑자가 60년이니 삼천갑자면 18만년이다. 이 삼천갑자의 전설 때문인지 강림도령 설화나 여기저기에 있는 탄천이란 지명 유래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 사람이다.

다만 동방삭은 이름부터 전설 속 인물일 것 같은데 한 무제때의 실존 인물이다. 그는 어릴적 부모를 읽고 형 밑에서 독학하여 학문을 이룬 인물로 언변에 능해 한 무제에게 총애를 받았다. 전설 속 모습과 비슷하게 그는 괴짜였는데 그의 일화는 친구 사마천이 쓴 사기에 많이 실려있다.

우스꽝스런 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는 학문이 우수했다. 그는 스스로를 추천하는 상서를 죽간 3천 간에 써내려 바쳤고 무제가 몇 달이나 탐독할 정도였다.

그는 평소에 강력한 철권 통치를 행하는 무제의 광대처럼 일생을 보냈는데 마지막에는 무제에게 시경의 시를 인용해 간신을 멀리하고 첨언을 물리치라고 직언을 하고 곧 병으로 죽었다. 이에 친구인 사마천은 '새가 죽을 때 그 소리가 구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하다.'는 말을 인용하며 그의 죽음을 기리기도 하였다.

어쨋거나 그는 초나라의 시인 굴원을 추모하며 지은 글을 통해 당시에 쓰임받지 못한 자신을 빗대어 한탄하였는데 그 중 한 글이 초사에 같이 실려 전해진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얼음과 숯이 함께 할 수 없으니
내 처음부터 목숨이 같지 못함을 았았노라
홀로 고생하다 죽어 낙이 없으니
내 나이를 다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노라

동방삭이 기린 굴원은 충신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로 간신 자란의 모함으로 추방당했다. 그는 멱라수를 떠돌다 어부를 만났는데 어부는 그를 알아보고 어찌 높으신 분이 떠도시냐 묻자 굴원이 말한다.

"온 세상이 흐린데 나 혼자 맑으며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으니 추방당했소."

그러자 어부가 말하는 것이 성인은 만사에 얽매이지않고 능히 속세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쫓겨났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굴원은 새로이 머리를 감으면 관의 먼지를 털어 머리에 쓰고 목욕을 하면 옷의 먼지를 털고 입는데 어찌 내가 더러운 그들과 어울리겠느냐. 차라리 강에 몸던져 죽지않음만 못하다. 라고 말하곤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동방삭은 도가적 학풍의 인물로 당대에 쓰임을 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쓰임받지 못한 상황을 얼음과 숯이 어울릴 수 없다며 굴원을 추모하며 돌려 말했다. 그가 보기에 굴원이 처한 환경과 자신이 같았기 때문일 것이라.

동방삭은 이 말 말고도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우리들 조직에도 이러한 일이 많다. 개발과 사업부서가 대립하고 세일즈와 마케팅이 대립하기도 한다. 임원과 직원이 맞서는가 하면 리더와 팔로워들의 다툼도 적지 않다. 분명 얼음과 숯은 같이 쓸 수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요즘 조직에서 굴원을 참소한 자란과 같은 간신은 찾기 드물다. 있다하더라도 그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방향이 달라서 문제지.

어쩌면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진다. 분명 얼음과 숯을 같이 쓰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물 위에 얼음을 두면 차가웠던 물이 더 차가워질 뿐이고 불 위에 숯을 올리면 불길이 그치지 않고 더 타오르기만 한다. 물론 숯같은 사람과 얼음같은 사람이 대립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상생과 협업은 좋은 일이지만 모두에게 강요할 수 있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적절히 관찰하고 누가 얼음이고, 누가 숯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본분 중 하나이다.

다만 생각을 바꿔 가끔은 숯 위에 얼음을 부어 둘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꼭 얼음과 숯을 더불어 쓸 필요가 무어 있을까. 필요하다면 숯에 얼음을 끼얹는 것이 어쩌면 더 조직을 위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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