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빌려 적을 죽인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은 삼십육계의 세 번째 계책으로,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죽인다는 뜻이다. 직접적인 행동이나 자원 투입 없이, 타인의 힘과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전략이다. 이는 자신의 부담과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기만술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손자병법에는 '攻其無備,出其不意' 라는 말이 나온다. 적이 준비되지 않은 곳을 공격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움직이라는 말이다. 이는 뒤에서도 다룰 성동격서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삼국지에서 왕윤은 뒤에 나올 미인계를 활용, 여포의 손을 빌려 동탁을 주살한다.
또한 조조의 참모인 순욱이 유비와 조조를 견제하기 위해 제시한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두 호랑이가 먹이를 두고 다투게 하는 전략)도 차도살인의 일종이다.
유비가 서주를 장악하고 자신에게 패한 여포가 유비에게 의탁해 소패에 주둔하자 조조는 머리가 아팠다. 한 번에 상대하기 힘든 상대들인데 한꺼번에 상대하자니 조조의 전력이 그만큼 여유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백성의 민심을 안고있는 유비와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가진 여포가 함께 있다는 것은 조조에게 큰 부담이었다. 더군다나 둘 모두 조조에게 적대적이었고 끈끈히 연합하고 있었다. 조조로서는 마치 후방에 큰 걱정거리를 안고있는 셈이었다.
이때 조조의 참모인 순욱이 이호경식지계를 제안하며 말했다.
"유비가 도겸의 뒤를 이어 서주를 다스리고 있으나 천자에게 정식으로 임명받은 것이 아닙니다. 명공께서 천자께 아뢰어 유비를 서주목으로 삼고 유비에게 글을 보내 여포를 죽이라 하십시오. 유비가 천자의 명을 받고 여포를 죽인다면 유비를 보호할 이가 없으니 명공께서 쉽사리 그를 도모할 수 있고 만약 유비가 명을 따르지 않는다해도 여포가 불안한 나머지 먼저 유비를 칠 것이니 어느 경우든 명공께서 원하시는 대로 될 터입니다."
그 말에 조조는 곧 헌제에게 주청하여 유비를 서주목에 봉하고 진동장군 의성정후에 임명한다. 유비는 임명을 받으며 조조의 밀서를 함께 받는데 밀서에는 여포를 죽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비는 이를 간파하고 여포를 죽이지 않고 도리어 그 내용을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다만 그 이후 여포의 의심과 불안이 커졌고 결국 뒤이어 구호탄랑지계에 빠진다. 구호탄랑은 호랑이를 몰아 이리를 잡는다는 방법이다. 이호경식지계가 실패한 이후, 순욱은 원술에게 유비가 원술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다. 그와 발맞추어 유비에게는 다시 황제의 명으로 황제를 자칭한 원술을 공격하라고 명하였으니 결국 유비는 서주의 대군을 이끌고 회남의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우이현으로 진군한다.
이때 유비는 서주를 장비에게 맡기는데 당시 하비상이었던 조표와의 갈등이 생기게 된다. 결국 조표는 여포에게 내응하게 되고 텅텅 빈 서주에 여포가 무혈입성하게 되며 서주를 여포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후 갈 곳을 잃은 유비는 조조에게 투항하게 되고 결국 여포는 몰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이러한 이호경식지계나 구호탄랑 이외에도 중국 왕조들의 이민족 제어방법인 이이제이(以夷伐夷) 또한 이러한 차도살인의 한 방법이고 어부지리(漁夫之利) 또한 같은 맥락에서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경영에서는 어떠한 차도살인의 방법들이 있었을까.
시대가 시대인만큼 상대방의 칼을 빌려 제거하는 방법은 직접적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먼저 SNS 플랫폼인 M사는 경쟁 SNS인 S사의 '스토리' 기능을 주목하여 분석했고 이를 자사 서비스인 I와 F에 도입했다. S사는 신기술과 디자인으로 초기 성공을 거뒀지만, M사는 S사의 기능을 복제하면서 S사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았다. M사의 글로벌 사용인원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M사는 S사와 직접적인 경쟁을 하지 않으며 경쟁사의 기술을 간접적으로 활용하였고 자사 생태계로 시장을 흡수하여 경쟁사인 S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사실 M사는 초기 소셜 미디어 시장에서 모든 경쟁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았다. I사, W사 같은 유망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이들로 하여금 T사나 S사와 같은 경쟁자를 간접적으로 견제했다. 위의 사례도 같은 경우이다.
그런 반면 글로벌 대기업인 A사는 S사를 강력한 경쟁자로 간주, 직접적인 기술 경쟁의 부담을 덜기 위해 여러 특허 소유권을 보유한 전문 소송회사를 활용해 S사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대규모 소송비용을 소모하게 만들고 그 사이 시장의 프리미엄 라인을 장악한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운송 서비스인 U사는 기존 택시 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 규제당국으로 하여금 기존 택시 산업의 독점을 해체하고 새로운 운송 서비스를 허용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후 그들은 해당 시장에 안착하며 기존 시장구조를 붕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차도살인이 성공하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한다.
1. 제3자의 동기 활용
제3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해야 한다. 이는 설득력 있는 제안을 통해 가능하다. 최소한 제 3자에게도 이득이 되는 제안이여만 한다.
2. 직접적 개입의 최소화
제3자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은 관망자의 입장에서 이익을 취한다. 차도살인의 핵심은 내가 직접 칼을 들지 않는 것이다.
3. 결과에 대한 통제력 확보
제3자의 행동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후속 전략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 3자에 의해 상황이 지배당할 지 모른다!
차도살인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제3자의 힘과 자원을 활용해 경쟁자를 약화시키거나 제거하는 고도의 전략이다. 현대 경영에서는 특히 파트너십, 규제, 인수합병, 제휴 전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전략이 활용되고 있다. 이를 성공적으로 구현하려면 정확한 상황 분석, 제3자의 동기 이해, 결과에 대한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