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까지 멀리 갈 수 있을까?
지하철이 두둥두둥-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멀리멀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 이대로 목적지에 다다르고 싶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거든. 그저 멀리멀리 가고 싶었어. 그런데 어느 만큼이나 멀리 인지는 아직 모르겠어. 내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먼 곳으로 가고 싶은데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멀리는 도저히 알 수가 없잖아.
멀다를 비싸다로 이해하곤 했다. 라고 시작하는 시가 있어. 박은지 시인의 '정말 먼 곳'이라는 시야. 멀다를 비싸다로 이해하다니…. 첫 문장부터 나는 이 시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어.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아니까. 20대의 우리는 자주 가난하고 가끔 패기가 넘쳐서 비행기표를 끊었다가 다시 가난을 직면하고는 언제 반환하는 게 가장 손해를 덜 볼 수 있나 하고 고민하잖아. 반환 수수료가 아까워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지불한 돈의 반값밖에 돌려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고 말이야. 돈과 젊음 앞에서는 왜 이리 우매해지는지 모르겠어. 돈과 젊음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돈도 젊음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욕심부리다 보니 결국 반쪽짜리 돈과 젊음이 되어버렸지 뭐야. 돈이 없어서 우리는 서로에게 자주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너랑 내가 비슷하게 가난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서로에게서 만큼은 애처롭지 않을 수 있으니까.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변명하려 들지 않아도 되니까.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하는 관계는 우리 마음을 더 가난하게 만들잖아.
정말 먼 곳으로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시를 쓰지 않았을 거야. 내 손에 쉽게 잡히는 것들은 오래 생각하지 않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오래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아주 간절한 것들이야. 돈, 부, 꿈, 쉼, 힘, 밥, 집…. 같은 것들. 나에게 오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너무 오래 생각해서 이미 왔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들이 너에게도 있어? 그 꿈에서 깨어나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궁금해. 나는 꿈에서 깨는 게 무서워서 매일매일 다른 꿈을 꾸려고 노력하거든.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날들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 같아. 왜 이런 말 있잖아. 꿈도 크다. 꿈에서 깨시지! 같이 꿈을 비웃기에 아주 좋은 말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큰 꿈을 꿔 본 사람일까? 너무너무 큰 꿈이 깨져버려서 유머로 승화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 말이 장난처럼 불리기에는 너무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해. 꿈이 크지 않으면 그걸 꿈이라고 할 수 없잖아. 좁고 낮은 곳에서 크게 상상할 수 있는 건 꿈뿐이니까.
언젠가 네가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나. 삶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면 너는 선물을 한다고 했지. 너의 친구에게, 동료에게, 가족에게 필요한 것들을 헤아렸다가 선물하는 그 마음을 오래 생각해. 충분하지 않은 마음도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알아버린 것 같거든. 너는 너에게만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거야. 삶이 자기 자신으로만 채워진다고 생각하면 아찔했던 거야. 무엇보다 그렇게 멀리멀리 가고 싶었던 거야. 나에게서 너로, 저기로, 조금씩, 멀리멀리. 너와 네 친구들의 삶이 한결 나아지길 바라면서 말이야.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멀리멀리 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 있을 너를 상상했어.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절벽 밑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았어. 너를 자세히 상상할수록 멀리 떠나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법을 알 것만 같았어. 너의 잠든 모습, 거칠고 짧은 손, 기다란 속눈썹, 끊이지 않는 농담, 잘 살고 싶은 마음과 그럴수록 조급해지는 마음까지도. 그것만으로도 나는 아주 멀리 다녀온 기분이 들었어.
어디까지 멀리 갈 수 있을지 샘하다가 인생이 온통 지나가 버린 데도 나는 멀리 가기를 멈추지 않고 싶어. 내일은 내일만큼 멀리 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 다녀와서 그곳은 어땠는지 말해줄게.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