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탄다. 주말 오후임에도 서울 지하철은 여전히 사람이 많다. 혹시 앉을 자리가 있나 둘러보지만 그럴 리가 없다. 앉는 것 다음으로 편한 지하철 입구 문 쪽에 자리를 잡고 선다. 그래도 여기선 조금은 기대어 설 수 있다. 등을 꼿꼿이 붙이고, 지금 향하고 있는 곳에 대해 생각한다. 토요일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추운 겨울바람을 뚫고 영등포에 있는 동료들을 만나러 가고 있다. 가서 글을 읽고, 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가고 있다.
얼굴을 코트에 파묻은 채 동료들이 미리 써 올린 글을 읽는다. 소설 같은 에세이도 있고 에세이 같은 소설도 있으며 아름다운 시도 몇 편 있다. 글을 통해 동료들을 먼저 만난다. 오늘이 우리의 첫 공식 만남이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성격을 가졌는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만나게 된 이유는 오로지 ‘글’ 하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어 한다는 것. 우리는 서로의 얼굴도 성격도 심지어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채 글로 먼저 만난다. 글에는 말보다 더 연한 정보가 담겨 있다. 우리는 서로의 한 겹 뒤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처음 보는 자리인데도 이상하게 긴장되지 않는다. 힘을 주어 강해 보일 필요도,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쓸 필요도 없다.
저녁 여섯 시. 주황빛 조명 아래 동료들이 모두 모였다. 해가 완전히 져서 밖은 깜깜하다. 각자만의 하루를 살아낸 뒤, 그간 쌓인 수다는 글에 숨겨둔 채 얼굴을 마주하고 앉는다.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설렘 속에 합평이 시작된다. 합평이란 여러 사람이 모여 한 편의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비평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서로에게 독자이자 비평가가 되어주는 셈이다. 무려 네 명의 독자가 바로 내 앞에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이 내 글을 다 읽어주기를 기다린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누군가 첫마디를 꺼내주길 기다리고 있을 때, 하루가 말한다.
“합평이 시작되기 전의 이 침묵을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해요. 동료 중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한순간 찾아오는 이 침묵은 천사가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모두 주황빛 조명 아래에서 천사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마침내 나스히가 입을 연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단단하다. 어딘가 뿌리가 깊은 목소리로 내 글의 구석구석을 살핀다. 동료들의 눈으로 내 글을 한 번 더 읽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내 글을 보는 일은 생소하고도 조금은 도망가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 역시 나의 최선과 시선으로 동료들의 글을 읽고 헤아린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자신을 숨길 틈도 없이 들키고 만다. 자연의 순환에 대해 생각하는 자신에 대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자신에 대해서, 직장 동료에게 분노하는 자신에 대해서, 젊음을 갈망하는 자신에 대해서, 울고 절망하고 연약한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얼굴 뒤의 얼굴은 아는 사이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이 말도 안 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실용적인 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여서 글을 쓰고, 글에 대해 말한다. 최초의 독자 혹은 유일한 독자가 되어 서로를 주목한다. 돌아가며 들킨다. 어쩌면 글 쓰는 사람은 들키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숨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혹은 숨기는 일이 너무 버거워서. 숨기는 것도 두렵고 들키는 것도 두려워서 그냥 고백하듯 써 내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들키고 나면 더 이상 그것은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출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들킴으로써 시작되는 우정도 있기 때문이다. 앞모습을 보고 시작되는 우정도 있지만 뒷모습을 보고서야 시작되는 우정도 있다. 글이 만들어내는 우정은 뒷모습을 보고 시작되는 우정과 닮아 있다. 기꺼이 나의 뒷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동시에, 너의 뒷모습 또한 살피겠다고 선언하는 아주 담대하고도 번거로운 우정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와 연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가 방금 무엇을 했는지, 이 일이 얼마나 말도 안 되고 아름다운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한다. 옆에서 숲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다. 숲은 실용적인 시간만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는 사람 같다. 들키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눈빛을 하고 우리와 함께 걷는다.
동료들의 눈빛과 목소리를 기억하며 이 글을 쓴다. 들키고픈 이야기들을 가득 만들어내며 어디선가 걷고 시를 쓰고 출근할 동료들. 다음에는 어떤 동료의 뒷모습을 보게 될까. 우리는 또 무엇을 들키게 될까. 되도록 더 많이 들키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