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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May 20. 2024

끊이지 않는,

  끊이지 않는 대화에 대해 생각해. 끊이지 않는 일, 끊이지 않는 공부, 끊이지 않는 성장, 성공, 우정, 사랑.....그중에서도 끊이지 않는 대화. 진짜 자유롭고 유연한 대화라면 끊이지 않을 테고, 그런 대화를 하는 너와 내가 떠올랐어. 나는 지금 너랑 가장 대화를 나누고 싶거든.


  5월의 강릉 바다를 떠올려. 우리의 첫 여행이었잖아. 금요일이었고, 나는 근로를 하는 내내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를 들었어, 아마 그 시기에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일 거야. 우리는 주로 금요일에 만나곤 했으니까. 그래서 난 아직도 저 노래를 들으면 이맘때가 생각나. 우리는 내가 근로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시외버스를 예매해 뒀었지.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내내 나는 잠들지 못했어. 잠든 것처럼 보였다면 그건 내가 연기를 아주 잘했다는 뜻이야. 내가 잠들었을 때 네가 옆에서 나를 보살피는 기분을 느끼는 게 좋았거든. 조심조심 움직이는 네 모습이 자꾸 상상돼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어. 에어컨을 켰다가 껐다가, 옷을 덮어 줬다가 다시 가져갔다가. 눈을 뜨지 않아야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잖아. 눈을 감고 있을 때 다른 모든 감각이 더 생생해지듯이.


  그 바다는 내가 봤던 바다 중에 제일 깨끗하고 예쁜 바다였어. 마침 사람도 없었고. 하긴 누가 5월에 강릉 바다를 가겠어. 그 사실이 우리를 더 설레게 했던 것 같아. 모두가 움직이는 휴가철이 아닌 그냥 5월에,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5월에 우리만 강릉에 있다는 게. 뭐랄까 너무 풋풋하잖아? 우리는 제법 영민한 청춘이라서 그게 얼마나 풋풋한 건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꾸만 말했지. 너무 좋다고. 행복하다고. 나는 끊이지 않는 대화를 생각하자마자 이 5월의 강릉이 떠올랐어. 아무도 없는 파란 바다를 보며 흔들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우리. 나는 그때 바다가 그토록 파랄 수 있는지 처음 알았어. 또 내가 이만큼이나 행복할 수 있는지도. 그건 내가 지금까지 느낀 행복 중에 제일 넓고 끊이지 않는 행복이었거든. 너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 중에 딱 이 한마디가 생각나. "와 너무 행복해서 지금 딱 죽으면 좋을 것 같아!"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그때 알았어. 나는 이미 내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느낀 것 같은데 더 살아버리면 또 슬픔 아픔을 느껴야 하잖아. 그냥 지금 딱 죽으면 후회없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물론 저 말은 지금 당장 내가 죽을 일은 없다는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말이겠지.


  너는 그런 내 말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왜 죽고 싶다고 하냐며 막 혼냈잖아. 언젠가 너도 내 말을 이해하는 날이 올까. 가장 살고 싶은 순간에 죽으면 딱 좋겠다고 말하게 되는 마음을. 그런데 너라면 절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해. 너는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고, 예쁘면 예쁘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만 절대 죽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안 할 것 같으니까. 그런 거라면 너는 평생 저 마음을 알지 못했으면 좋겠어. 너와 나는 너무 다른데, 그래서 가끔 답답하지만 그래서 더 사랑하게 돼. 나와 다른 너를 보며 안도감을 느껴.


  누가 싫고 누구를 믿는지, 뭐가 좋고 뭐가 너를 짜증 나게 하는지. 이런 아주 사소한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해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대화는 누구나와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누구나와 할 수 없는 대화가 있잖아. 그리고 누구나 내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하겠지.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 모두 집중하며 들어주겠지. 설령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너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내 이야기에 집중해 줘! 라고. 그럼 너는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일 거야.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딱 저 정도의 수다야. 서로에게 기울이며 나누는 대화. 중간중간 눈이 마주치면 마주친 그대로 오래 보고 있을 수 있는 대화. 무엇이든 느끼게 하는 대화.


  그런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내 등은 조금 더 두꺼워져 있을 거야. 든든해진 등의 감각을 느끼며 새로운 하루를 살아낼 준비를 해. 끊이지 않는 대화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흐르고 있어.








#개코 #사진찍어보내줘 에서 영감을 받았답니다. 가사 무지 좋으니까 5월에 드라이브하면서 한번씩 들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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