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극장 영화 기록

<킹메이커>, <덩케르크>

by 월 RE


영화를 보는 시공간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고 바뀌어가는 시대입니다. 영화를 영화관에서만 보던 시절은 갔고 텔레비전이나 핸드폰 같은 좀 더 편리한 방법으로 영화를 보게 된 시절이 온 셈입니다. 영화를 보는 각자의 취향이 만들어지고 영화관에서 보는 관객, 집에서 보는 관객, 혹은 완전 외적인 곳에서 자신들만의 스크린을 만들어내서 보는 관객 등 다양한 관객층이 형성되었어요. 저는 그들 각자에게 전해지는 영화적 '아우라'의 깊이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경유하는 관객이지만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극장 영화'라는 단어를 써 보았어요. 뜻은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내가 극장에서 본 영화'. 영화를 보는 장소에 옳고 그름은 없는 것이지만 제 취향은 극장이고 그 안에 커다란 스크린과 빨간색 시트로 된 좌석, 모르는 이들과 정해진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받아들이지만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극장 영화만의 여운과 의미를 좋아합니다.




킹메이커 2022. 감독 변성현 출연 설경구 이선균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영화는 그 논점에 대해 자신들을 대변해줄 두 인물을 앞세워 1900년대 중후반 역사를 배경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기는 것,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남자를 보면서 영화가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질문에 대해 다시금 화두를 던지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이 영화관을 떠나는 관객에게 중요하게 각인될 수는 있지만 영화가 진정으로 이야기 싶어 하고 강조하는 것은 그림자라 불리는 서창대(이선균) 인물의 형태이다. 김운범(설경구)와의 관계 속 그가 어떤 궤적을 이루며 낙하하는지 그 상실의 과정과 지점에 집중한다.


김운범과 서창대 각자가 목적과 수단을 상징한다는 전제 하에, 서창대가 끝내 그림자로서 남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목적과 수단 간에 위계가 존재했고 계층 차이가 그들의 사이에 예언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사람 사이의 갈라진 길이 등장할 수는 없다. 그들이 갈등을 균열로 이끌고 균열이 결국 관계의 파멸과 (서창대의) 자멸로 이어간 것이다. 김운범이 상징하는 빛에 대한 서창대의 동경과 갈망.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그림자로만 남을 수밖에 없었던 서창대. 이미 영화에서 서창대가 김운범을 찾아가 처음 마주하는 장면에서부터 그들의 파멸은 예정되어 있었다.


예상되는 결말을 향해가는 영화지만 영화적 재미가 살아있는 이유는 무겁고 자극적이게 표현될 수 있었던 정치 이야기를 오히려 한 사람의 열정이 그릇된 욕망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적나라하고 스타일리시한 연출 방식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다만 <킹메이커>에는 연출적으로 선명한 명암의 대비는 있으나 명백한 악은 없다. 다만 최선을 망각하고 차선과 차악의 기로를 택하게 만든 환경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환경 속 놓인 인물의 시선과 그릇됨을 담아내며 ‘그림자’ 다운 결말로 치닫았다.


Ps. 나도 모르게 설경구 배우의 연기에 눈길이 간다면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불한당>을 추천합니다. 같은 감독과 제작진이 만든 전 작품이고 특유의 만화적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진짜 중요한 재미는 그의 얼굴... 그리고 팔뚝... 불한당원 여러분들의 안목에 박수를 보내요. 짝짝 설경구 배우님의 재발견(?) 하나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하네요.






덩케르크 2017.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이 영화는 시각적 연출로나 서사적 연출로나 너무나 정교하게 흘러간다. 비행하는 전투기를 비추는 카메라가 전투기가 트는 방향으로 같이 기울어지며 하늘이 기우뚱거린다. 그러면서 구름을 거쳐 끝없는 하늘이 아래의 드넓은 바다를 낳는다. 인물들의 대사가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추가되며 스토리를 탄생시킨다. 온전히 영국군의 시선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프랑스 군인들의 이야기는 완전히 배제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다가도 같은 편인 영국군들에게 살해 위협을 당하는 프랑스군 캐릭터가 숨어있던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1500명의 배우들이 줄을 지어 서있는 해변가의 장관과 그곳에 선량한 목적을 갖고 표류와 회귀를 택한 배 한 척을 필름 카메라와 IMAX로 포착해 구현한 전쟁 풍경들은 완벽히 사실적이고 또 영화적이다. 놀란 감독은 이전 <인셉션> 영화에서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층적 시간성과 왜곡된 도시의 공간을 그려내며 시공간의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보인 적이 있다. 이 영화의 배경 공간이 되는 하늘과 바다 또한 캐릭터와 같은 개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카메라의 시점과 각도는 기존 영화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현실감을 만들어내고 이를 증폭시킨다. 즉, 공간 배경이 인물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기능하는 용기 container의 존재에서 서사 전달이 가능한 고유적 배경으로 심화되어 스토리텔링의 인과를 견고히 한다.



인터스텔라와 테넷에서도 느꼈듯이 광활한 자연이나 우주의 풍광, 시간의 도치적 흐름과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서로 다른 시공간끼리의 연결 방식은 놀란 감독 영화의 고유 특징 혹은 전유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렇게 정교하게 구축된 놀란의 배경에는 항상 남겨진 이들이 존재한다. 케르크에 남겨진 40만 명의 군인들, 바다에 추락한 전투기 위의 공군, 잠겨가는 배에서 탈출하지 못한 그 사람들이 존재한다. 남겨진 이들을 둘러싼 것은 철퍽거리는 바다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하늘의 폭탄들이다. 바다와 물은 저기 멀리 보이는 영국을 가로막고 있는 방해물이지만 결국 고향 home으로 가고자 한다면 무조건 거쳐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해변가 육지에 놓여있는 육군, 해군들과 전투기에 몸을 실은 공군들이 영국에 도착할 수 있었던 방법은 바다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 도약이고 이 도약의 목적은 바다 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 배에 오르는 것과 그 배가 데려다 줄 육지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케르크에 여러 시간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바다와 그 위 배들의 기능은 좌절을 안겨주던 상징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적 상징으로 전환된다.


고향 home에 도달할 수 없는 그들에게 바다의 소음은 폭탄이 터져 다리가 끊어지는 소음이고 총알이 어딘가 박히는 소음과 같다. 생명을 위협하는 건 인간과 무기들 만이 아니라 이들 모두가 합쳐져 만들어내는 바다의 소음이다. 이 소음에 한스 짐머의 음악이 겹쳐지면서 장악력을 갖추고 관객은 완전한 영화적 체험에 빠지게 된다. 영화관 안의 사람들을 단숨에 전쟁통 안으로 밀어 넣고 극심한 공포와 긴장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관객은 영화 속 인물을 응시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고향을 향한 열망을 함께 느끼고 안도감과 행복, 뒤로 흩어지는 무너진 이성들을 공유하고 일체화되는 감각을 받아들인다. 가상의 공간인 디제시스 안으로 틈입하고 몰입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덩케르크는 정적인 이미지와 동적인 이미지가 불연속적으로 봉합되는 서사적 긴장감으로 격동하는 몰입, 환영을 이끌어낸다. 즉, 영화의 시공간 배경을 다루는 독창적, 고유적 숏이 영화적 체험의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충분했다. 이 점에서 지난 전쟁영화가 서사와 시각적 몰입의 합주를 안일하게 본 것과 이 둘을 대립적으로 해석한 관점이 만연했던 지난날의 한계와 편견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디지털 영화 시대에 필름 카메라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놓치지 않고 서사적 완전함을 갖춤으로써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 장르 이상의 생명력을 가진다.

참고) 스펙터클 이미지 : 탈연속성과 몰입의 서사, 정찬철


Ps. 덩케르크는 아이맥스에서 재개봉했습니다. 오미크론 때문에 아직 흉흉한 서울이지만 덩케르크 영화관 안에만큼은 사람들의 소리가 끊이질 않더라고요. (영화구경 겸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아마도 이런 영화는 아이맥스에서 봐야지 하는 다 같은 마음으로 오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 의견에 적극 동의하는데요. <그래비티> 이후 완전에 가까운 현존감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재개봉을 또 한다면 꼭 다시 한번 보러가고싶어요.




결과적으로 극장에 많이 가지는 못했네요.. 무서운 바이러스의 탓도 있지만 제 게으름 때문이기도 합니다.

3월에는 많이 찾아가겠습니다.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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