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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Mar 23. 2021

팀장님, 저 좀 다른 팀으로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Prologue #2_팀장 면담


“요새 업무적으로 어려운 일은 없고?”


“네네, 업무적으로는 어려운 일은 없어요.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개인적으로 조금 힘든 점은 있어요.” 


실제로 그랬다. 업무적으로 엄청 어려운 일을 시킨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내 활달한 개인 성향과 정적인 이 비서 업무가 맞지 않았던 영향이 컸다.  


“어떤 부분이 힘들어?”


“팀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제가 이 팀에 처음에 오게 되었을 때 팀 업무와 비서 업무를 겸직하는 거라고 하셨었죠. 근데 본부장님이 부사장님으로 승진하시면서 업무 내용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에게는 이 팀의 문화 기획 업무를 더 배우고 경험하고 싶은데 부사장님의 승진으로 그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요. 그리고 제가 여행 좋아하는 것도 아시죠? 여행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인 제게 부사장님 일정에 완전히 맞추느라 못 가게 되었잖아요. 기획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던 프로젝트 끝나고 비수기 장기 휴가를 못 가게 되었는데 다른 팀원들이 가는 걸 보면 너무 부럽고 그래요... 제가 기획 업무나 마케팅 업무로 아예 빠지고 새로운 비서를 뽑으면 안 될까요?”


“아... 그건 힘들어. 나도 너 힘든 거 잘 알고 있어. 힘든 티 안 내고 잘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근데 부사장님이 마케팅 총괄이신데 비서 역할을 하던 네가 갑자기 비서는 안 하고 본부 내 다른 업무로 간다고 하면 입장이 좀 곤란해져서. 말은 안 하셔도 불편해하실 수도 있고 말이지.”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마케팅 본부 소속에서 이동이 그렇다면 아예 저 좀 다른 팀으로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음... 혹시 그럼 특별히 마음에 두었던 생각한 다른 팀은 있어?”


“팀장님도 해외 사업팀 계셨지만 저도 해외 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 분야 팀으로 가보고 싶어요. **투어 쪽이나 글로벌 사업부 쪽이요. 한번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투어나 글로벌 사업부라... **투어 팀장도 잘 알고, 전에 해외 사업팀에 같이 일했던 상무님이 아직 계시니까 한번 이야기해볼게. 이야기해보고 나서 피드백 오면 다시 말해줄게.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면담은 30분 정도 했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끙끙 앓았던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너무 버릇이 없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이 참 많았다. 되돌아보니 내가 생각이 너무 많은 거였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내가 너무 고민을 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이야기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역시 내가 직접 인사팀을 통해서 알아보는 것보다는 팀장님 통해서 이동을 알아보는 것이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았다. 회사의 마당발이신 팀장님의 평소 모습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가 잘 성사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떤 결과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이야기하고 내 의견을 피력한 것만으로도 오늘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긴 기다림의 2주가 흘렀다. 팀장님이 오전에 날 찾았고 회의실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번에 상무님이 부사장님께 업무 보고하러 오셨을 때 널 되게 좋게 보셨나봐. 상무님께 이야기 드렸더니 긍정적으로 생각 하시고 , 형식상 수요일 오후에 한번 보자는데 그때 잠깐 이야기하러 다녀와 .”


“와..정말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이렇게 잘 풀리다니 너무 신기했다. 이제껏 고민만 하던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람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니 평소에 잘 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번 기회를 통해 몸소 체험했다. 


"아, 근데 거기에 직원들이 해외 호텔이랑 계약을 맺어서 운영하는 거라서 관리를 위해 해외로 1년씩 돌아가면서 근무를 해야 한다나봐. 작년에 보낸 직원이 이제 돌아올 때가 지나서 새로운 직원 보내야 한다고 하더라고. 해외 근무는 괜찮지??"

해외 근무라니 생각도 못했다. 사실 꿈에만 그리던 선망의 대상이 해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걸 내가 하게 될 수도 있다니 설레였다.  


"저야 해외 근무 당연히 괜찮죠!!"



간단하게 팀장님과의 2차 면담이 끝났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었다. 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오후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서 다른 건물에 위치한 해당 법인에 가서 실무를 맡고 계시는 분을 만났다. 면담의 자리로만 알고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영어테스트가 있다며 면접 아닌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 부서가 무엇을 하는 곳이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나의 장단점이 무엇이고 혹시 어학연수나 유학의 경험은 없는지 등등 다양한 것을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영어 면접에 너무나 당황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이야기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다시 이야기해달라고 말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라 이야기 하는 내내 즐거웠고, 이렇게 떨어져도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얼굴 뵙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자고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몇일이 흐른 뒤 팀장님이 다시 부르셨다. 


"글로벌 사업팀에서 너랑 같이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2주 뒤에 바로 출국해야 한다는 데 괜찮겠니?"

"네??? 2주 뒤라구요???  아...일단 알겠습니다. 근데 그럼 전 뭘 준비해야 하죠?"

"그 팀이랑 인사쪽에 내가 이야기 해 둘테니까 실무쪽에서 연락이 와서 뭘 준비하라고 이야기 해줄거야. "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해외로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가게 될줄이야. 

뭘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자리로 돌아와 멍하니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오래 지나지 않아 인사팀과 해당팀의 실무를 맡고 있는 직원에게 번갈아 가면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항공 티켓 발권과 장기 여행 비자 수속을 해야 해서 내게 영문명을 일단 달라고 하고 추후 준비되면 여권 사본을 보내달라고 했다. 다음에는 해당팀에 가서 사업부의 다른팀 소개와 함께 새로운 팀원(곧 해외로 출국해서 얼마 보지 못하지만)을 짧게 소개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 그리고 나서 인사팀에서 보직 변경에 따른 근로 계약 변경 사항을 안내하고 바뀐 법인의 근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준비하느라 하루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흘렀다.  


그렇게 2주가 흐르고 평생 여행으로만 가게 될 거 같았던 태국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 뭐가 필요할지 몰라 다양한 옷을 넣었고,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지도 몰라 각종 한국 먹거리를 잔뜩 넣었다.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이민자처럼 이민가방과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끌고 처음으로 수하물 오버차지를 지불하는 경험도 했다. 

가족들이 공항에 바래다 주면서 평생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당분간 못본다고 생각해 함께 울었다.


그렇게 나는 1년 간의 장기 출장을 위해 태국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올랐다.



<Today's playlist>

마음이 힘들 때 찾아보게 되는 노래 :

도망가자 by선우정아



< 외국인 근로자로 산다는 것은 매주 화요일 발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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