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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May 21. 2021

마음의 온도, 일몰, 비행의 상관관계

[제주 여행] 갑자기 떠난 여행은 예기치 않은 행복을 선사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여러 가지의 마음의 파동에 허덕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내면의 온도는 사뭇 다를 때가 있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내면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사소한 것에도 쉽게 바스러졌다. 누군가의 사소한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 받았고, 상처 받는 나 자신을 때로는 ‘넌 이렇게 연약하면 안 된다’고 몰아세웠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느새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고, 죄인이 되기도 했다. 이제껏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인생의 쉼표를 하나 찍는데 이렇듯 난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 내게 답을 알려주었으면 했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로 돌아가 아무 잘못도 없는 담임 선생님에게 따지듯 물어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꼭 쓸모 있는 인간이어야만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미 인간으로서 소중함을 부여받는 것인데 말이다. 여행과 사람을 좋아하고 긍정적이었던 나는 퇴사를 하고 코로나로 세계일주를 못 가게 된 1년 사이 조금은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중국인 후배가 퇴사를 한다면서 같이 제주에 가자고 했다. 떠날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다면서. 제주라니 듣자마자 너무 설레었다. 아마도 내가 염세주의자가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여행을 떠나지 못한 욕구불만이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년 적어도 한 번은 떠났던 해외여행을 못 가니 몸이 근질거리는 데다가 코로나로 마스크에다가 외부에도 맘껏 못 다니다 보니 더 갑갑했다. 특히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내가 방 안에만 있으려니 힘든 건 어쩌면 당연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와 비슷한 여행 열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여행 당일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오후에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왕복 항공권을 알아보다가 언제 돌아올지를 정하는 것이 어려워, 2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아시아나 항공권을 편도로 샀다. 편도로 사는 항공권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상상으로 그저 티켓을 사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비가 흐르는 저녁, 공항에 도착하니 제주로 향하는 사람들은 듣던 대로 많았다. 수하물을 부치고 입국 수속을 밟은 뒤 비행기에 탑승해 자리를 찾아 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내가 선택한 자리는 비행기 꼬리 가장 뒤편 좌측 공간이었다. 늦은 오후 비행이라 일몰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다. 많은 비행기들이 차례를 기다리느라 30분 정도 지연된 후 이윽고 내가 탄 비행기도 하늘로 이륙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항공기의 질감에 참으려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도가 높아지자 비구름이 사라지고 맑은 하늘과 구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붉게 물들어 가는 일몰의 순간을 맞이하자 난 그만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일몰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여행을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창문에 새겨진 노을은 염세적이었던 내 마음속도 따뜻하게 물들였다. 이런 것이 행복이다 싶었다.     


창문으로 비치는 다양한 빛깔의 하늘
불타는 노을은 차갑게 식은 내 마음도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이 노을의 순간이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고작 1시간이었지만 두 눈에 가득 담아 다시 올 그날까지 간직해야 할 보물상자 속에 넣어두었다.

나의 제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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