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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ld traveler Nina Sep 01. 2020

소수로 산다는 것

날 봐, 내가 여기 있어

물리학을 전공한 파울로 조르다노의 데뷔 소설

‘소수의 고독’은 자신을 소수 같다고 느끼는 소년과 소녀가 만나 서툴게 어른이 되어 가는 성장 이야기다. 1과 자신으로밖에 나눠지지 않는 의심 많고 외로운 수, 소수. 두 주인공인 소년 마티아와 소녀 알리체는 무수한 수 가운데 제자리에서 집요하게 반짝이는 고독한 소수들이다. 그러나 그 둘은 짝이다.


winner01 / @pixabay


소수는 오직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진다.
소수는 모든 수가 그렇듯 두 개의 수 사이에서 짓눌린 채, 무한히 연속하는 자연수 안에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다른 수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다. 소수는 의심 많고 고독한 수다. 그 때문에 마티아는 소수에서 경이를 느끼곤 했다. 마티아는 소수 가운데 좀 더 특별한 수가 있다는 걸 배웠다. 수학자들은 그들을 ‘쌍둥이 소수’라고 부른다. 쌍둥이 소수는 근접한, 거의 근접한 두 수가 한쌍을 이루는데, 그 사이엔 항상 둘의 만남을 방해하는 짝수가 있다. 마티아는 자신과 알리체가 그런 사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이 방황하는 두 소수, 가깝지만 실제로 서로 닿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쌍둥이 소수. 알리체에겐 그런 생각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174p)


ddimitrova / @pixabay


어릴 적 지체 장애를 가진 동생 미켈라를 잃어버린 죄책감을 가진 마티아는 자신에 대한 죄의식으로 제 몸에 자해를 하고, 어릴 적 스키 추락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알리체는 강제로 스키를 타게 했던 아버지를 향한 증오를 거식증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년과 소녀는 만나자마자 서로의 고통을 알아보고 상처를 헤아리며 아파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서로를 향한 눈빛을 반짝인다.

마치 그녀만이 그를 세상에서 구출할 수 있는 듯이, 마치 그만이 그녀를 세상에서 구출할 수 있는 것처럼. 둘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고교 시절은 마티아와 알리체에게 결코 아물지 않을 깊고 쓰라린 상처였다.
둘은 숨 쉬는 것조차 꾹 참으며 그 시간을 지나왔다. 마티아는 세상을 거부하는 마음으로,
알리체는 세상에 거부당하는 기분으로 견뎠지만, 차츰 그 두 가지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불완전하고 비 대칭적인 우정을 쌓아갔다.
오랜 부재와 기나긴 침묵으로 이루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학교 담장이 조여와 질실할 것 같을 때,
유일하게 숨 돌릴 수 있는 순수하고 텅 빈 공간이었다. (158p)


그들의 만남은 침묵이 대다수였고 별다른 말도 하지 않는, 여느 다른 또래들과는 달랐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침묵은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으며, 그 침묵 안에서 서로 편안함을 느꼈다.


어느 때는 소수 역시 다른 평범한 수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그럴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73p)


받아들이기 두렵지만 그녀와 있을 때는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일들이 가치 있어 보였다. (205p)


pixel2013 / @pixabay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많은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마티아의 친구 데니스는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굉장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동성애자를 향한 세상의 편견에 몸서리치며 숨어서 그들만의 비밀이 지켜지는 은밀한 곳에서 그의 욕망을 채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채워지지 않고 허무하다. 이 부분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작가의 연민도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개인 성적 취향에 대해 사회가 나서서 이곳의 낙오자라고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아 마땅하다.

각각의 성향과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고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의 서로를 향한 배려면 충분하다.


날 봐, 내가 여기 있어. (88p)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종종 일어나는 요즘 같은 시기에,

고독이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해주는 소설.



제목 사진 출처 : TheUjulala / @pixabay




* 이탈리아에서만 250만 부 이상 판매

* 70년 권위의 문학상 스트레가 상 최연소 수상

*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42개국 계약



도서명 : 소수의 고독

             The Solitude Of Prime Numbers(영문)

              La Solitudine Dei Numeri Primi(원문)              

저   자 : 파울로 조르다노 (Paolo Giordano)

             1982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토리노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 <소수의 고독>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상과 캄피엘로 상을 동시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중견 작가들만 받아온

           스트레가 상을 최연소로 수상해 온 이탈리아

           가 주목했고, 250만 부 이상 팔리며 42개국

           에 번역 출간돼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인간의 몸>(2012), <검정과 실버>

            (2014), <하늘을 집어삼키다>(2018) 등의

           소설과 희곡집을 발표했다.

출간일 : 2012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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