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록으로 여행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기
휴가를 가서까지 글을 써야 한다는 스스로가 만든 의무감 때문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기억 속에 남는 일들을 적는 일이 매우 즐겁다. 여행 중에 경험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경험한 것을 순서대로 모두 묘사하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안내 책자에서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것들은 따로 쓰지 않는다. 여행안내 책자에서 볼 수 없는 개인적인 감상이 중요한 것이지 여행 정보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글을 쓰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스냅사진과 같은 짧은 관찰 기록을 만드는 것이다.
즉,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관찰하고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것들 중에 인상 깊은 것들을 모아 요점만 정리해 두는 것이다. 이것은 우연히 들은 대화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특이한 표지판을 묘사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생소한 과일이 있으면 한번 베어 보고 그 맛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한다. 두 마리의 비둘기가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한다. 인상 깊게 본 그림을 표현하는 데에도 분명 문장 두세 개면 충분하다.
어느 특정한 곳에 머무르면서 휴가를 보낸다면 글을 쓰는 일은 훨씬 쉽다. 글을 쓰기에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대부분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보기 때문에 다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여행 일정이 볼거리로 가득 차 있으면 여행을 통해 내면을 풍요롭게 하려는 욕구보다 이것저것 많이 보려는 호기심이 더 커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짬이 날 때마다 기록할 수 있도록 작은 노트를 챙겨 다니는 것이 좋다. 메모한 내용들은 후에 여행의 추억을 쉽게 떠올리게 해 준다. 나는 매번 여행을 기록해 둔 덕분에 언제든지 기억을 되살려 당시에 관련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닐 때 반드시 그 자리에서 즉시 기록할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고 해서 글의 현장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휴가를 어떻게 보내든지 간에 당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본 것들을 간직하라. 그러면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당신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
여행지에서 글을 쓴다고 하면 뭔가 굉장한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보는 그 굉장한 글들은 결코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 단 한 줄이라도 여행의 순간을 기록하고, 그것을 잘 간직한 뒤에 기록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다시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기록을 한다는 것에 부담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에 방학 끝무렵에 몰아서 한꺼번에 기억을 쥐어짜 작성해야만 했던 방학 일기 때문이었을까?
여행의 순간의 기록을 미루면 여행을 할 당시의 기분은 점점 잊혀 간다. 그때는 나중에도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하면 흐릿 흐릿하다. 그나마 사진을 남겨둔 경우는 조금 낫다.
가장 좋은 것은 매일매일의 현장감을 담은 동영상이지만 우리의 여행이 <세계 테마 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또는 <윤식당>이 아니므로 여정 전체를 녹화한 후 편집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순간의 찰나를 스냅사진과 같이 기록하는 관찰 일기이다. 현지의 정보보다는 어떤 감정과 상황이 있었는지, 내 주변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남겨두는 것이 훨씬 값어치 있다.
그것이 국내이든 해외이든 당신이 여행한 그 추억을 사진처럼 찍어서 보관하자. 글을 보면 여행이 떠오른다.
2022년에는 당신의 추억들을 기록하는 한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