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술 인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아빠입니다. 제가 술을 좋아하게 된 건 모두 아빠의 영향이에요. 그러니 음주가무를 모두 좋아하시는 아빠를 닮은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아빠는 고등학교 때부터 술을 권했습니다. 한번 무슨 맛인지 경험해봐야 한다고 하셨죠. 그때 제가 처음 마셨던 술은 진로(지금의 참이슬)였습니다. 도수도 높고 알코올 맛만 나는 그 음료를 고등학생인 제가 좋아할 리 없었죠. 한번 입에 대보고는 고등학교 때 다시 술을 먹어보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너무 썼거든요.
하지만 아빠는 뭐가 그렇게 맛있는지 저녁 식사마다 반주처럼 술을 참 맛있게도 드셨어요. 꼭 잔을 입에 터시고는 “캬~”, “크~”, “좋다~”를 연발하셨고 그걸 보는 것도 퍽 재밌었어요.
시간이 흘러 저도 성인이 되고 나니 그 쓰던 소주를 저도 마시게 되더군요. 저는 특히 회를 먹거나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있는 요리를 먹거나 삼겹살이나 곱창처럼 구이를 먹을 때는 소주가 생각납니다. 아빠는 참이슬 프레쉬는 도수가 낮아 밍밍하다면서 꼭 고도수인 참이슬 오리지널을 드세요. 식당에 가면 으레 음식을 시킴과 동시에 제가 “참이슬 오리지널 빨간 거 하나도 같이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이세요. 이제 성인이 된 딸들과 평일 저녁에, 주말 점심, 저녁에든 술 한잔 기울이면서 마음속에 담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삶의 하나의 행복이라고 하시는 걸 보면 괜히 마음이 찡해져요. 예전보다 주량이 많이 줄어드셨지만 개인당 1병씩 먹으면 모두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아 수다가 점점 길어지기도 한답니다. 평소에는 참이슬 오리지널을 먹지 않는데 함께 할 때만 먹다 보니 술만 보면 아빠가 떠오르네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술꾼에게는 참 행복한 일인 거 같아요. 서로의 빈 술잔을 채워줄 수도 있고, 부딪혀줄 사람도 있고, 알코올이 들어간 상기된 얼굴로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갈 수도 있고 말이죠. 아빠가 딸들과 함께 술 한잔 기울이는 시간을 사랑하는 것도 같은 이유겠죠?
아빠는 교직에 계시다가 교장으로 퇴임하셨는데 퇴직하고 나서부터는 이제껏 일하느라 먹지 못한 술을 자유로이 마셔보시겠다면서 매일 점심, 저녁에 모두 소주를 드시고 있어요. 사실 이제 나이가 드시면서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힘들어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이제 건강을 생각하실 나이가 되셨으니 습관처럼 마시는 것이 아닌 마시고 싶은 날에만 드셨으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술꾼의 귀에는 들리지 않네요. 저도 그리 할 말은 없는 게 소주를 마시는 아빠 맞은편에서 전 계속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