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생각
우연히 동네 스마트 도서관에 들렀다가 신용목 시인의 시집을 발견하였다. 예전에 시공부를 하던 시절 읽었던 신용목 시인의 시들.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기도 했고 스마트 도서관에 남아있는 도서가 몇 권 되지 않아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건 여담이지만 한강 작가님의 노벨 수상 때문인지 매번 여유 있었던 스마트 대여 도서관 리스트 목록이 2~3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여 중이었다. 아니면 경제가 힘들다 보니 사람들이 책을 구입하지 않고 대여해서 읽는 것일까..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는데 깜짝 놀랐다.)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너무 좋았던 시집. 시를 읽는 내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읽었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물리학 책이 생각나기도 했다. 카를로 로벨리 물리학자가 쓴 이 책을 읽고 어쩌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어쨌든 지금 우리의 뇌와 사회는 '시간'을 인지하고 있기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나 홀로 완전히 무시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시를 읽으며 만약 30년 후에 내가 살아있다면 그때의 내가 다시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어린 나를 만났을 때 그 어린 꼬마에게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고 탄생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격려했을까. 긍정했을까. 돌이켜보면 고통의 시간도 많았지만 또 소소하게 웃고 행복한 시간도 많았으므로 남편 말대로 인생은 한 번쯤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도저히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일을 행하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어쩌면 신의 가장 큰 실수는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미 태어난 인생, 이 삶을 스스로 중단할 수 없다면 최대한 어떤 '의미'를 찾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제아무리 비관적인 사람일지라도 이런 아름다운 시의 문장을 만나면 잠시 나의 제한된 육체적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게 된다. 시는 언제나 나로 시작하여 나를 떠나는 여정이기에. 긴 여행과도 같은 시는 정말이지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 제목: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 ㅣ 신용목
p. 41 수요일의 주인 中
서로를 보자 나는 알아버렸네. 사랑을 만들기 위해 신은 인간이 필요했다.
그에게는 늘 이별이 부족해서 여전히 자신의 전능이 인간의 슬픔인 줄 몰랐다.
사랑 안에서만 믿을 수 있는 우리는
사랑 밖에서는 믿을 수 없는 우리는
수요일에 끝나는 이야기가 있어서 썰물을 등지고 돌아섰다. 비명을 기도 속에 남기고
인간에게는 늘 기적이 부족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이 슬픔의 종교란 걸 알았다.
p. 44 작사가 中
적는다, 누구도 나를 미워하지 않고서는 나를 지나갈 수 없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를 버릴 수 없다
p.61 러시아워 中
바다가 있었네, 여기야
소리치면
소금물에 씻기는 모래알처럼 부서지는 웃음소리, 그러나 물속을 들여다보면
검은 등을 가진 물고기들이 헤엄쳐 와 하얀 배를 뒤집고 해변이 되는 꿈
하얗게 뒤집힌 물속의
꿈
p. 84 미래 중독 中
일과를 마치고, 긴 그림자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멸망에 중독된 사람들
아니
날마다 안도가 아니면 안 되는 저녁, 날마다 위로가 아니면 안 되는 밤, 아니
날마다 화요일이 아니라서 슬픔 수요일이 있고, 날마다 모자가 아니라서 슬픈 신발이 있고, 날마다 퇴근이 아니라서 슬픈 출근과 아니
하루는, 출근이 아니라서 슬픈 퇴근이
있어서,
p. 117 북해어 中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아직 세상에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아름다움밖에 없다고...
배에서부터 하고 싶은 말이 차오르면 입안에 얼음을 넣었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물은 영원히 흘러내리는 화상 자국 같다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스치듯
무언가 획 지나가고
p.145 우금치 中
우리가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내일이 오는 것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거기 있다
밤의 전부로 가득 찬 어둠
검은 물, 계곡과 침묵
속에서는
알게 된다, 밤이라는 잉크가 없었다면 오랜 태양의 역사는 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자의 먹지 속으로 스며들어 하나의 인생에서 다른 인생으로
사랑은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p.191 발문 <슬픔과 돌 - 신용목 형에게>, 송중원(문학평론가) 中
마지막으로 시 속 하나의 장면에 이르기 위해 형이 지나왔을 시간들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의 장면에 이르지 못해 백지 위로 온몸의 기억을 태우고 있을 시간들의 시간도 상상해 봅니다. 그렇다면 백지 위에 내려앉는 것들은 몸과 기억이 재로 남은 흔적일까요. 재 속에 남아 있는 불씨를 가지고 다시 형이 끌어안았던 불들을, 매만져봤던 돌을, 머뭇거렸던 건널목을, 숨어 있던 밤들을 떠올려봅니다. 침묵 속에 있는 형을 몇 번 불러도 봅니다. 답이 없군요. 기다려봅니다. 형의 원고를 읽다가, 형의 시집들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불러봅니다. 그러고 보니 불러본다는 말속에도 불이 있군요. 누군가를 부르는 행위는 뜨거운 일이라는 것을 되처 생각해 봅니다. 뜨거운 돌을 떠올려도 봅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달빛을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그러다 어둠 속에서 돌아보는 형의 얼굴을 얼핏 본 것도 같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를 바람 속에서 들은 것도 같습니다. 형의 시가 저에게서 멀리멀리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형의 시가 멀리멀리 가서 사람들의 마음에 환하게 불을 밝혀주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