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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Sep 22. 2021

#30 편식하지 않는 이유


자폐스펙트럼 아동들은 일반 아동들에 비하여 감각이 매우 예민한 경우가 많다.


촉각이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의 경우

조금이라도 까슬한 부분이 있는 옷은 절대 입지 않으려 하거나,

타인의 손길이 몸에 닿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기도 한다.

자신의 손에 뭔가가 묻는 것을 아주 싫어하여 클레이나 슬라임을 가지고 놀 수 없는 아이도 있다.


청각이 예민한 아이의 경우

남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소리에 과도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거나,

장난감에서 나는 특정한 효과음을 지나치게 좋아하여 그 버튼만을 반복적으로 눌러대기도 한다.


미각에 이상을 보이는 아이의 경우

특정한 식감의 음식을 극도로 좋아하거나 반대로 극도로 싫어한다.

바삭한 식감에 집착하여 구운 김이나 식빵 껍데기로 식사를 거의 대신하다시피 하거나

아삭아삭한 식감만을 지나치게 좋아하여 오이를 주식으로 하기도 한다.




다른 감각에도 문제가 있으지만 미각만 얘기하자면

콩이도 미각이 예민하여 특정 식감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콩이의 미각 이상은 극단적이지 않다.

특정한 식감을 아주 좋아하되, 그렇다고 그 외 다른 식감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래서 녀석이 선호하는 음식은 있어도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은 거의 없다.

먼저 먹으려는 반찬은 있지만 먹지 않는 반찬은 없다.


콩이는 더 어려서부터 아삭거리는 식감의 음식을 좋아라했는데,

이유식을 졸업한 후, 한때 가장 좋아했던 반찬은 조리하지 않은 파프리카였다.

녀석은 파프리카를 '빠부'라고 부르면서 식사때마다 항상 파프리카를 찾았다.


아삭이는 식감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채소를 좋아라해서 아직까지는 편식이랄게 별로 없다.

고기나 생선도 잘 먹고, 오이나 당근은 말할 것도 없고, 불고기 속의 양파나 대파도 가리는 법이 없다.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 취나물 등 각종 나물도 아삭이는 느낌만 있으면 맛있게 잘 먹는다.

최근 고춧가루 들어간 살짝 매운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면서 매콤새콤한 도라지 무침의 맛도 알게 되었다.


이번 추석 연휴 전 며칠 지내고 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콩이는 취나물, 고춧잎 무침, 도라지 무침을 맛잇게 먹었다.

콩이의 발달 문제를 잘 알지 못하는 어른들은 콩이의 이러한 식습관을 예쁘게 생각하신다.

부모가 아이 식습관을 잘 들여주고 아이가 기특하게 이를 잘 따르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군것질이 늘었지만,

그래서 아랫니 윗니 충치 걱정을 해야 될 때가 왔지만,

그래도 뭐든 잘 먹는 우리 콩이가 고맙다.


극히 예민한 미각으로 식사 자체가 잘 안되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여럿 보았다.

밥을 거르고 영양가 없는 특정 식감의 음식만을 찾으니 당연히 신체적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른 자폐스펙트럼 증상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악순환 속에서 아이도 부모도 힘들다.


우리 콩이..

이래저래 자기 고집도 세지고, 아빠 말은 갈수록 안듣지만

남은 나물반찬에 참기름 넣고 대충 만든 비빔밥도 척척 잘 먹어 주는 우리딸..

보름달 밝은 오늘만큼은 특별히 더 고맙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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