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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완전한 순간에 물러나는 음악

엘리오와 올리버 사이에서 음악이 흐르고 사라질 때

(이 글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중요한 장면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유적을 빙 둘러 다시 만나는 짧은 시간동안 엘리오(티모시 샬라메)가 자신을 고백하는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중에 하나였다. 둘러 말하고, 말을 곱씹으며, 상대의 말과 작은 표정에 매달려 의미를 해석할 때, 확인받지 못해서 절망적인 순간의 감정이 일상적이고 단정한 표면으로 포착되었다.



Oliver:  Is there anything you don't know?
Elio:  I know nothing, Oliver.
Oliver:  Well, you seem to know more than anyone else around here.
Elio:  Well, if you only knew how little I really know about the things that matter.
Oliver:  What "things that matter?"
[long pause]
Elio:  You know what things.
Oliver:  Why are you telling me this?
Elio:  Because I thought you should know.
Oliver:  Because you thought I should know?
Elio:  Because I wanted you to know.
Elio:  (to himself) Because I wanted you to know. Because I wanted you to know. Because I wanted you to know.
Elio:  Because there's no one else I can say this to but you.
Oliver:  Are you saying what I think you're saying?



이 씬은 올리버(아미 해머)는 엘리오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잡아달라고 부탁하고 건물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건물로 사라진 올리버가 엘리오와 다시 마주보는 잠시동안 일렁이는 설레임과 같은 선율(Une Barque Sur L'océan from Miroirs)이 몇 단락 반복되다가 급작스럽게 사라진다. 음소거하는 듯 불쑥 사라지는 음악이 환기 효과를 불러 일으켜, '이건 뭐지?'라는 생각에 곧장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너무나 중요한 고백 장면이 이어졌다. 올리버가 유적 너머로 사라지며 대화가 잠시 중단되자 음악이 흐르다가 반대편에서 둘이 만나자마자 음악은 다시 사라진다. 이런 효과는 올리버가 우편물을 받기 위해 프레임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까지, 한번에 길게 찍은 씬에 걸쳐 연이어 반복된다. 왜 음악을 그렇게 사용했을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전작들을 보지 못했는데, 영화속에 몇 번 불쑥 등장하는 효과들 - 어두운 화면에 중첩된 빛에 노출된 필름, 붉게 반전된 인서트 장면 등 - 이 인상적이었다. 관습적이지 않은 효과가 적용된 장면들은 잠시 거리를 두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일깨웠는데, 생각에 잠기거나 회고하는 인물의 마음으로 들어가보는 감독 고유의 스타일이 아닐까 짐작했다.


음악이 등장할 시점에 되려 빠르게 사라지는 방식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짐작했다. 보통 드라마틱하게 감정이 고조되는 만남의 순간에 관객이 인물의 감정과 동기화할 수 있도록 음악을 배치한다. 그러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바로 그 순간 음악을 페이드-아웃 시키기를 자처한다. 그 결과 음악은 마주보기 전의 설레임의 찰나와, 내가 뱉은 말을 곱씹으며 깊은 파문으로 초조해지는 순간에 남았다. 이것은 엘리오의 내면으로 들어가 음악을 편집한 결과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섰는데 그날 밤 이 장면에 대한 감독의 해석이 담긴 영상을 발견했다. (언급했던 음악이 빠르게 사라지는 첫 지점은 영상 바로 초반으로, 감독의 코멘터리에 겹쳐 잘 들리지 않습니다.)



Scene From 'Call Me by Your Name' | Anatomy of a Scene, The New York Times



The piece of music that we used by Ravel, it's always there in the scene whenever they are separated and disappears when they are together.
And I thought it was a nice balance between the music of the couple together and the absence of this togetherness that needed to have another kind of music.
이 장면에 쓰인 라벨의 음악은 엘리오와 올리버가 떨어져 있을 때마다 흐르고, 반대로 만날 때마다 사라집니다. 그들이 함께 있는 순간의 음악과, 그렇지 못할 때를 위한 다른 종류의 음악간에 좋은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질문의 방향이 잘못된 걸까. 어쩌면 중요한 것은 음악에 방점을 찍고 그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되려 음악이 없는 상태가 필요했기 때문에, 오로지 사라지는 효과만을 위해 음악이 필요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음악이 사라져야 했을까?"가 아니라 "왜 음악이 없어야 하는 순간일까?"라고 물어야 했다. 위 코멘터리에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음악이 사라지는 순간을 가리켜 'the music of the couple together'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박혔다. 아무런 음악도 흐르지 않지만 거기에 그런 종류의 음악이 있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랑을 마주볼 때 오직 당신이라는 음악으로 가득해진다면, 어쩌면 그런 압도적이자 명백한 순간에는 마음 속 모든 물결이 사라지고 음악조차 없어진다고 해석해도 될까? 정리도 표현도 불가한 감정이 목젖까지 올라오는 듯한 갑갑함은, 그런 감정의 고조는 오직 상대를 마주보기 전에만 있다고 말이다.





사랑을 잘 모르는 관객은 영화를 통해 그것을 대신 경험한다. 음악의 고양을 통해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친밀한 김정을 짐작하듯 느껴보곤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 흐르는 음악조차 사라지는 사랑은, 만나서 완전하기에 영화 밖의 다른 어떤 도움도 필요 없는 감정 아래서만 흐르는 공백의 음악은 정말로 모르는 것이라서 나는 질문을 계속 바꾸어 보아도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답을 내릴 수 없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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