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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베키에 대한 변명

사실 나는 악역이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기태나 동윤이에 이입해서 <파수꾼>을 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놀랐다. 사실 <파수꾼>은 기태의 죽음을 둘러싼 비극을 다루면서 기태라는 복잡해 보이는 인물을 이해해보는 여정의 드라마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랄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베키(백희, 희준)는 영화의 중반 즈음 동윤이에게 야구공과 함께 사건의 주도권을 넘기며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데도 베키에 이입해 영화를 봤던 것은, 지난 고교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나는 당연하게도 베키에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베키였을 텐데도 기태 혹은 동윤이에게 이입한다는 것, 심지어는 베키를 원망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두 번째로 극장을 찾아서야 기태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관람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교실에 열을 맞춰 앉아있는 아이들이 비슷해 보일 수 있겠지만, 조금만 유심히 관찰해보면 몇 개의 그룹으로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다. 소수의 '노는' 아이들이 있고, '완전히' 노는 건 아니지만 그들과 가까운 무리가 있다. 물론 대다수는 이도 저도 속하지 않는 보통의 아이들이었고 나 역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세 그룹은 느슨하게 섞여 있었고 (어떤 순간에는) 서로 친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번은 노는 친구의 비행을 선생님으로부터 '카바 쳐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과 후에 어떤 아이에게 맞은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끄럽고 분한 감정이 들어, 경찰이나 선생님께 폭력을 고발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묘한 쾌감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고 다음날 우리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종종 이야기도 섞었고 어떨 때는 서로 장난을 치기도 했던 것 같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랬다. 서서히 완전히 멀어졌지만.


<파수꾼>을 보고 그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에게도 기태와 같은 사연이 있었을까? 내가 그들을 '노는 친구'로 간단히 정리해버리는 순간 나도 그들에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순간이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우리는 멀어졌고 이제는 서로의 사정을 알 길이 없으므로.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베키가 동윤이를 만나 기태 아버지 이야기를 전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에게 말할 필요는 없지만, 아버지는 알 자격이 있지 않으냐"라고 말한다. 그 말이 무겁게 마음에 박혔다. 너의(혹은 우리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싶지 않고 나는 그저 착한 쪽에 남고 싶다는, 자기보호로 가득 찬 그 말이 곧 내 학창 시절 같았다. 친구의 부모님 앞에서 공손하지만, 괴롭히던 친구와 마지막 대면에서는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는….





오디션에 처음 갔을 때 감독님께서 “네가 하고 싶은 역이 뭐냐”라고 물어보셨는데, “동윤이가 참 멋있어요. 하지만 전 희준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웃음) 학창 생활을 돌이켜봤을 때 난 분명 기태나 동윤이와는 좀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단편 작업할 때도 계속 희준 비슷한 역을 많이 했다. 하지만 희준 대사를 읽으면서도 기태와 동윤이가 멋있으니까 상대적으로 희준이가 너무 짜증 나고 싫었다. (일동 웃음)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핏빛 청춘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다"(링크), 씨네 21


(박정민 배우가 한 말의 뜻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희준이가 짜증나고 싫었다'는 표현이 못내 아쉬웠으나, 곧 이해가 되었다. 연민과 상처를 가진 기태와, 죄의식을 안고 살아갈 동윤이에 비해 베키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부탁이니까 피하지만 마라'는 말이 자기 자신을 향하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나는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그런 베키를 설득력 있게 그려줘서 고마웠다. 내가 베키에 이입할 수 있도록, 그래서 온전히 선했다고 믿어왔던 지난 시간에 의문을 가져볼 수 있도록 해 주어서.



<파수꾼>을 볼 때마다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내가 저질러 놓았지만 정작 나는 모르는 상처와 폐허를 상상하고 더듬어봐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건 살아온 모든 시간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일이며 사실 나는 악역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해 보는 일이다. 






<파수꾼 Bleak Night>(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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