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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실재하지 않는 비행기

거꾸로 선 비행기 조각을 CG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우리가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단지 “현상"에 불과한데, 이것은 그 이면에 어떤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한 표지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실재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과 다르다면, 우리는 그러한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그러한 실재가 존재한다면 그 실재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이 있을 수 있는가? (버트란드 러셀, <철학의 문제들>, 박영태 옮김, 이학사)



<그녀 Her>(2013)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장면이 있지만,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함께 찍을 수 없는) 사진 대신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해 듣는 장면을 좋아한다.  



Well, I was thinking, we don’t really have any photographs of us. And I thought this song could be like a photo that captures us in this moment in our life together.


테오도르는 “Photograph” 음악을 들으면서 거꾸로 서 있는 거대한 비행기 작품을 감상한다. 영화를 보고 글을 찾아보다가 이 씬이 촬영된 Pacific Design Center에는 비행기 조각이 없으며, CG로 만들어진 완전한 허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링크) 나는 실재하는 다른 조각을 찾는 대신 많은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면서 굳이 CG로 거꾸로 선 비행기를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촬영 장면을 상상해본다. 부분적으로 만든 비행기 소품과 블루스크린이 설치되고, 호아킨 피닉스는 그곳에 거대한 비행기가 있는 것을 상상하며 연기한다. 나중에 CG를 통해 비행기의 전체 모습을 그려 넣는다. 완성된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느꼈던 비행기의 실재감과, 사만다를 실재하는 존재처럼 사랑했던 테오도르의 마음을 대응시켜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지금 실재한다고 믿는 비행기처럼, 테오도르도 그녀를 믿고 있는 것이라고. 만약 실제로 존재하는 조각을 가지고 촬영했다면 그런 대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로맨틱한 CG의 사용이 아닐지.



CG가 영화 안에서 의미를 가지는 경우는 많았다. 수많은 블록버스터의 파편과 외계 생물들…. 그러나 그것은 CG라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CG라고 생각하는 순간 깨져버리는 무언의 약속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녀>의 비행기는 CG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그 장면의 의미를 더해주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다.


그렇다면, CG가 “존재해야 하는” 사물을 시각화하는 기능을 넘어서서 “존재할 필요가 없지만 구현한” 의미의 단위로도 스크린에 실재할 수 있을까? 문장을 쓰는 동시에 우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이미 그 CG를 통해 OS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마음이 되어보았으므로.



<그녀 Her>(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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