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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예고편의 아름다움

다른 두 대사를 붙여서 만들어진 예고편의 결


<캐롤>의 International Trailer는 영화와 떨어트려놓고 감상해도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개봉을 기다리며 이 예고편을 여러번 반복해 감상했다. 그러면서도 예고편을 보면서 혼자 쌓아간 상상과 기대감이 정작 본 영화의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예고편은 본 영화를 생략, 압축하며 나름의 리듬과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에 경계하게 된다. 그저 그런 영화에서 좋은 그림과 음악을 골라 2분짜리 예고편을 멋지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기에, 혹은 본래 영화가 가진 것과는 다른 방향의 기대감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캐롤>은 예고편이 주는 감흥을 그대로 이어가며 기대보다 더 아름답고 더 완전한 영화였다. 너무 좋아서 어떤 말을 보태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그리고 영화를 보며 예고편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경험도 감동적이었다.



캐롤과 테레즈가 함께 점심을 하는 장면에서 예고편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을 발췌, 편집한다. 캐롤(케이트 블란쳇)이 압도적이고 우아한 목소리로 "Therese Belivet"이라고 말하면 테레즈(루니 마라)도 지지 않는 에너지로 "Carol"이라 말한다. 캐롤은 예상 밖이라는 듯, 고개를 들어 테레즈를 다시 보며 표정을 고친다. 예고편을 보면서 서로에게 성큼 다가가는 대담함으로 기억했던 이 장면이 사실은 천천히 서로의 성의 유래와 이름을 묻고 부르는, 조심스러우면서도 텐션이 가득한 장면이었다는 걸 확인하며 예고편과 영화 사이의 미묘한 결의 차이에 감탄했다.



We gave each other the most - breathtaking, of gifts.
I will not negotiate anymore. I want it and I will not deny it. Would you?

예고편 말미에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깔리는 케이트 블란쳇의 내레이션을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서 'the most breathtaking of gifts'라는 표현이 테레즈를 향한 것이 아니라 린디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도 놀랐지만 'I will not negotiate anymore. I want it and I will not deny it. Would you?'라고 이어지던 대사의 본래 장면을 확인한 순간에 마음이 툭 내려앉았다.


나는 이 대사가 굳건한 사랑을 테레즈에게 고백하고 동의를 구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야 앞의 두 문장은 하지와 양육권을 논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인정하는 대사이고, 마지막 문장은 테레즈에게 새로운 집에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는 장면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I will not negotiate anymore. I want it and I will not deny it.' 캐롤의 단호하고 낮은 대사가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사적인 고백이 아니라 둘의 사랑과 정체성의 인정을 방해하는 나머지 세상을 향한 선언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 선언에 'Would you?'를 붙인 예고편의 선택에 감탄했다. 'Would you?'라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I will not negotiate anymore. I want it and I will not deny it.'라는 말이 필요했고, 온 세상에 'I will not negotiate anymore. I want it and I will not deny it.'라고 말함으로써 단 한 사람에게 'Would you?'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과 장소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두 대사를 붙여놓은 편집의 논리가 아름다웠고, 다시 그 대사 사이에 흐르는 시간과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 영화 본편을 보며 한 번 더 감동받았다. 그 시대에 'Would you?'라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결심을 고쳐내야 했을지 영화가 감상하게 했다면, 예고편은 이해하게 했다.



사실 <캐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혹은 그 말을 찾지 못한 채) 눈빛으로, 손짓으로, 어깨를 쓰다듬는 온기로 전달하는 감정을 그려냈고 그 점에서 특히 아름다운 영화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감정의 언어를 이어 붙여 캐롤에게, 테레즈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관객의 마음이 예고편에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Carol…"하고 끊어진 전화 너머로 말하는 테레즈의 "I miss you…"가 예고편에서는 온전히 캐롤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캐롤 Carol>(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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