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한 개의 도전
자, 세상에서 나와 제일 안 어울리는 도전과제를 가져왔다.
누구나 한 번쯤 춤에 대한 열망을 가지지 않을까? 모든 걸 일반화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난 그런 적이 있다. 비밀이지만 내적 관종끼가 넘쳐나던 청소년기 시절, 학우들 앞에서 춤을 기깔나게 잘 추어 인기를 한 몸에 얻는 망상도 꿔봤다. 그때는 또래들의 관심과 인기가 갈급한 시절이니까. 내가 외적으로 멋져짐으로써 인기가 많아질 것이라는 상상의 나래들을 펼치는 것이다.(그러니까 청소년기 때 말이다. *INFP) 물론 상상으로만 펼쳤었다.
당시에는 몸은 따라주지 않고 머리로만 상상하던 것을 드디어 어른이 되었을 때 내 돈 내산으로 배우게 되었다. 혼자서는 춤의 치읓을 어떻게 긋는지조차 모르겠으니, 모든 한국인으로서 공감할법하게 나는 학원을 끊는 해결책을 선택했다. 못하면 학원에서 배워야지. 어디로 간단 말인가. 크, 이것이 바로 어른의 맛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돈을 쓰는 느낌. 용감하게 카드로 가까운 댄스 스튜디오의 월 수강권을 시원하게 긁었다.
그래, 그때는 이걸로 모든 것을 벌써 다 배운 자신감이 들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수업 방식과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랬다. 수업은 시간대마다 장르/수준별 선생님이 계셨고, 나는 방송댄스보다 힙합이 멋있어 보였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힙합과 유사해 보이는 걸스 힙합 수업을 선택했다. 주 2회 정도의 수업이었고, 한 달에 한 곡, 1분 정도의 길이의 춤을 배우는 코스로 내 도전과제 하기에 일정이 아주 적합했다. 상담 선생님은 잘 배울 수 있을까 내심 걱정하는 어린양 에게 한 달의 현타만 견디면 된다는 꽤나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주셨다.
대망의 첫 수강일, 방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있었다. 대략 15~20명 남짓한 여자 수강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남자 선생님이 수업을 가르쳤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다들 나보다는 어린 친구들 같아 보였다. (그랬다. 요즘 학원을 다니면서 내심 느끼는 게, 나보다 다 어린 친구들밖에 없는 것 같은 우려가 든다. 내 또래들아, 다 어디 있니..?)
거기다 아마 연습생(!)으로 보이는 것 같은 학생들도 사이사이 보였다. 마른 몸에 긴 생머리를 가진 아이들이 몇몇 보였다. 방은 이미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거의 꽉 차 보였는데, 이래서야 춤 연습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방은 앞 좌우 면이 유리였는데, 캘리그래피가 있는 벽돌 인테리어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지만 구조 자체는 발레 수업실과 비슷했다.
선생님의 동작에 맞춰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준비운동을 시작했고 이후 기본적인 동작들을 테스트 삼아 연습했다. 문제의 시작은 처음부터 있었다. 수강생들 모두 잘 따라가는 듯했고, 문제는 마치 나 혼자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건 발레완 전혀 다른 춤이었다. 솔직히 발레를 바로 직전까지 배웠던 터라 아무리 못한다고 해도 기본은 따라갈 줄 알았는데... 아무리 내가 수년을 배운 발레 프로는 아니라지만... 물론 장르가 전혀 다르지만... 이렇게 춤을 못 춰도 괜찮을 일인가?
'진짜 못한다'의 수식어를 그때 몸소 체험했다. 이런 건 굳이 깨우칠 필요는 없었을 법했지만, 여하튼 이때 배웠다. 사람이 진짜 못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수치스러워서 차마 눈조차 뜰 수 없구나... 나는 앞으로 계속 학원에 다닐 수 있는 것인가... 거울 속에서 혼자 엇갈리는 나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구의 잘 못이란 말인가? 아무의 잘 못도 아니다. 그저 이 죄 많은 몸뚱이가 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영역을 발견한 것뿐이다. 누가 impossible 이 nothing 이랬어? 누구야? 분명 진짜 impossible을 겪지 못한 놈이 그런 문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정말 못해도, 없던 자신감도 더 사그라들어 마이너스의 영역으로 가도, 카드는 이미 긁혔고 한 달의 도전과제는 이미 정해졌다. 돌이킬 수 없다. 많은 수강생들이 한꺼번에 같이 추는 수업 구조라, 뒤에 어정쩡하게 내뺄 수도 없다. 도망갈 구석은 없고 나는 반 강제적으로 계속 춤을 췄다. 몸치라는 사실은 분 초마다 드러났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수업을 들을 때 막 유쾌하진 않았다. 수업 때마다 내 단점만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동작을 잘 외우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몸이 잘 안 따라줬고, 우선 기본적인 웨이브도 잘 안됐다. 다른 친구들처럼 여유롭게도 하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만 하는데, 사실 이 걸스 힙합이 열심히만 해 보이면 또 우스워 보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선생님이 거울 속에서 나를 유심히 보시는 듯했고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도 수업은 꾸준히 갔다. 인내와 끈기는 내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로, 나는 이런 춤 수업뿐만 아니라 못하든 잘하든, 즐겁든 아니든, 무언가 하기로 했으면 꾸준히 하는 편이다. 아마 수강비용이 아까워서 그랬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홈트보단 헬스를 끊는 게 그런 원리가 아니던가. 난 어찌 됐든 무엇을 시작했으면 완결성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못하든 잘하든 결과적으로 하던 것을 완결 지어야 하는 고약한 성미가 있는 것이다. 우선 시작하면, 인내한다. 버틴다. 그것이 재밌든 재미없든. 느린 거북이처럼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한다. 이렇게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나름 괜찮아진 것도 있고, 나중에는 월등히 잘해서 재미를 붙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못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있다. 그건 당장 포기하면 알 수 없지만, 우선 이어나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에라 모르겠다. 우선 계속하고 보는 것이다.
매일같이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니 아주 조금 나아졌는지는 몰라도, 여전히 '못함 레벨'인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한 달만의 결과를 보자면, 난 힙합춤을 지독이 도 못 추는 인간이 맞다. 난 이 한 달간의 수강 이후로 이어서 클래스를 연장하진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았다. 우선 기본기가 너무 심하게 부족했다고 생각했으므로 다음엔 1:1 수업을 찾아 재도전해 볼 심산이었다. (지독한 놈...)
수업 마지막 날에는 개인 댄스를 촬영한다. 나는 용감하게 영상을 찍겠다고 사인했다. 우선 한 달 치의 결과를 수급받아야 하겠다는 각오로. 창피한 마음을 무릅쓰고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췄다. 착한 어린 친구들이 벽에 앉아서 박수를 쳐 줬고, 선생님이 카메라 뒤에서 열심히 응원해줬지만 영상 속의 내 모습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창피했다. 녹화한 영상을 다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우지 못하고 내 폰 속에 판도라처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창피함도 지나니 우선 한 곡을 완결 지었단 마음이 뿌듯했다.
물론, 당시 한 달 동안 들었던 그 노래를 다시 듣지 못하고 있다.
한 춤의 경험을 얻고 한 곡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