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추천도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저)
제2부 - 08 열정없는 직장인
으······. 살면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밤새 몸이 너무 아팠던 나는 간신히 119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렇게 도착한 응급실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는데, 글쎄 내 간수치가 좋지 않다고 한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내가 스트레스성 급성 간염에 걸린 거 같다고 한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간이 나빠지다니! 솔직히 스트레스야 뭐 그냥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 몇 개만 보면 자연스레 풀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스트레스는 그냥 별 거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별 거가 사람 잡을 뻔했다! 나는 회사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내 간을 괴롭히고 있단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헐! 내 간이 이렇게 고뇌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래. 나는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부장님이 생각났다. 몇 개월 전 새로 오신 부장님은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내게 프로젝트 하나를 총책임자로 맡기셨다. 부장님은 지금 네 직급에는 회사에 누구보다 열정을 보일 시기이니, 이번 프로젝트에 한번 최선을 다해 네 열정을 전부 보이라고 하셨다.
'열정이라고? 도대체 무슨 열정을 말씀하시는 거지······.'
아무튼 나는 부장님의 강요로 얼떨결에 그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중, 나는 이 프로젝트가 나 혼자서 해내기에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부장님께 이 프로젝트는 혼자서는 진행하기 어려울 거 같다고, 함께 진행할 직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부장님은 내가 어렵다고 느낀 건 결국 내가 열정을 보이지 않아 그런 거라며 그저 나를 나무라기만 하셨다.
부장님을 설득하지 못한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혼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부장님이 그렇게 강조하던 열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없는 열정이라도 한번 쥐어 짜내보았다. 그러다 과중된 업무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국 스트레스성 간염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실에 누워있던 나는 일어날 힘이 없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천장만 바라보는 일 뿐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나를 제외한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은 대부분 임종을 앞둔 어르신들이었다. 나처럼 임종을 앞둔 어르신들도 미동도 없이 그저 천장만 바라보고 계셨다.
그렇게 하루종일 병실에서 어르신들과 똑같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니 허탈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참나······. 50년 뒤에나 올 병실을 그놈의 있지도 않은 열정 때문에 지금 와버렸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던 프로젝트였다. 그런데도 부장님은 그저 내가 열정이 부족하다며 나무라기만 했고, 심지어 나를 열정 없는 겁쟁이로만 취급했다. 차라리 그때 부장님에게 겁쟁이 취급을 당하더라도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그나저나 큰일이다. 간수치는 계속 회복되지 않고 있고, 감기몸살 증상까지 있어 목소리도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 헐······. 나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니겠지?
낯선배: 어이. 너무 걱정 하지마. 몸은 곧 괜찮아질 테니까.
김세평: ···어?
낯선배: 그리고 이제 부장님 생각도 좀 그만하고. 일단 지금은 몸 회복에만 집중하자.
김세평: 쿨럭쿨럭, 낯··· 낯선배님? 여, 여긴 어떻게 알고······.
낯선배: 간염에 감기몸살까지 걸렸으니 많이 힘들지? 그러나 어쩔 수 없어. 지금은 버티는 수밖에 없어.
김세평: 그렇군···. 백선배 말이 맞았어······.
낯선배: 응? 아아. 결국 백선배가 먼저 알아챘구나?
김세평: 쿨럭쿨럭···, 당신은 미래에서 온 내 자신······ 맞죠?
낯선배: 와우, 백선배는 아무튼 눈치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바로 내가 미래에서 온 김세평이란 걸 눈치 채다니!
김세평: 아······,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쿨럭쿨럭!
낯선배: 하하. 살다보면 가끔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기도하고 그러잖아?
김세평: 그, 그럼 당신은 몇 년 뒤의 내 모습인거지?
낯선배: 음······. 지금 기준으로 3년 뒤야.
김세평; 그렇군···. 저, 저기 나 질문 하나 있는데···, 쿨럭쿨럭!
낯선배: 어이. 무슨 질문을 하려고 하는지 아니까 그만 이야기해. 지금 목감기가 심하잖아.
김세평: 그, 그래······. 그나저나 내 질문을 알고 있다고?
낯선배: 어······. 저기, 미안하다. 넌 여전히 독신······.
김세평: 뭐? 끄아아! 젠장! 쿠, 쿨럭쿨럭! 내가 3년 뒤에도 독신이라고? 쿨럭쿨럭!
낯선배: 어이! 진정해, 진정하라고! 몸 회복이 우선이라니까?
김세평: 이런, 젠장! 아아, 그나저나 내가 이런 질문을 할 거란 걸 어떻게 알았지? 쿨럭쿨럭!
낯선배: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내가 누구라고 그랬지?
김세평: 후···, 그렇군. 근데 원래 간염에 걸리면 이렇게 감기몸살도 심하게 오는 거야? 쿨럭쿨럭! 아무튼 나 낫기는 하는 거지?
낯선배: 응. 회복하는 데 2주 정도 걸려.
김세평: 그래? 2주나 병원에 입원해야 하다니···. 그래도 회복한다고 하니 다행이군. 쿨럭쿨럭!
낯선배: 저기 미안한데, 나는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
김세평: 뭐야, 벌써 가는 거야?
낯선배: 과거의 나에게 내 정체를 들킨 이상 계속 과거에 머무를 수 없거든. 타임머신 이용규정이 그래. 흠흠,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 책 선물이 되겠네. 자, 여기 침대 옆에 놓을게.
김세평: 쿨럭쿨럭, 역시나 책을 또 가지고 왔구나? ······에? 책 제목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책 제목이 뭐 이래? 쿨럭쿨럭!
낯선배: 후후. 책 제목이 꽤 독특하지?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란 책이야. 지금은 몸이 좋지 않으니까 나중에 회복 좀 하면 그때 조금씩 읽어봐. 이 책을 읽고 나면 네가 퇴원 후에 직장에 돌아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이 될 거야.
김세평: 쿨럭쿨럭. 고마워······. 그렇잖아도 퇴원하고 회사로 돌아가면 그 망할 프로젝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거든. 쿨럭쿨럭!
낯선배: 그래, 일단 지금은 쉬는 게 우선이다. 그럼 나는 이제 가볼게.
김세평: 잠깐, 낯선배! 아니, 김세평! 쿨럭쿨럭!
낯선배: 왜?
김세평: 그동안 고마웠어. 쿨럭쿨럭. 덕분에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잘 해올 수 있었어.
낯선배: 이봐. 고마워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네가 그동안 읽은 책들이지.
김세평: 채, 책이라고?
낯선배: 잘 생각해봐. 그동안 직장에서 널 지켜준 건 내가 아니라 바로 책이었잖아? 난 단지 네게 책을 전달해줬을 뿐······.
김세평: 그, 그렇군. 그동안 책들이 날 직장에서 지켜주었던 거였어······.
그렇게 미래에서 온 낯선배 김세평이 사라진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몸은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나는 미래에서 온 김세평에게 주고 간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를 읽기 시작했다.
“열정 같은 거 없어도 우리는 일만 잘한다.”
“우리 대부분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 열정까지 요구하는 건 좀 너무하다 싶다.”
······그렇군. 그러고 보니 부장님은 내게 내 직급은 한창 회사에 열정을 보일 직급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직급이 아니라 부장님 직급이야말로 회사에 열정을 보일 직급이지 아닐까? 왜냐면 부장님 직급에는 월급이 나보다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그렇게 부장님이 나보다 회사로부터 월급은 훨씬 더 많이 받고 있으면서도, 내게는 왜 열정이 없다니 뭐니 그런 말만 하셨을까? 아니, 회사에서는 원래 받은 만큼 일하는 거 아니었나? 나보다 돈도 많이 받으시는 부장님이야말로 회사에 열정을 좀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싫으시면 본인 월급에서 따로 떼서 내게 열정수당이라도 좀 챙겨주시던가!
“안 생기는 열정을 억지로 만드는 건 스트레스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사실 나도 문제였다. 있지도 않은 열정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억지를 부려서 결국 스트레스성 간염에 감기몸살까지 겹쳐 걸려 병원에 입원한 게 아닌가? 있지도 않은 열정 가지고 억지 부리다 하마터면 정말 열정적으로 훅 가버릴(?) 뻔했다. 이번 기회에 나도 깊이 반성한다.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강요하지 좀 마라. 좀!”
혹시 미래에서 온 김세평이 이 문장을 내게 선물하고 싶었던 걸까? 책에서 만난 바로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래,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다! 아주 강요하기만 해봐라! 그래, 죽다 살아난 나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회사만 돌아가기만 해봐라, 다 가만 안 두겠어!
그렇게 나는 퇴원 후 회사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돌아온 회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내 책상 위에는 나를 괴롭히던 프로젝트 서류들이 변함없이 쌓여있었다. 그래, 프로젝트! 이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혼자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부장님을 바로 찾아갔다.
김세평: 부장님, 저 김세평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장부장: 세평이? 퇴원했구나? 그래. 뭐 몸은 이제 괜찮고?
김세평: 잔기침이 조금 남아있긴 한데, 그래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장부장: 잔기침? 아직 다 안 나았어? 그럼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김세평: 쉬고 싶었지만 부장님이 맡기셨던 프로젝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했습니다.
장부장: 허허. 그랬구나? 그래, 역시 내가 세평이에게 그 프로젝트를 잘 맡긴 거 같다! 아주 열정이 넘치는군!
김세평: 아뇨. 부장님, 저는 이제 그 프로젝트를 내려놓고 싶어 이렇게 말씀드리러 온 겁니다.
장부장: 어어? 프로젝트를 내려놓겠다고? 너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야?
김세평: 부장님, 지난번 제가 분명 말씀드렸었죠. 그 프로젝트는 제가 단독으로 진행하기엔 벅찬 프로젝트였다고요. 제가 분명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부장님은 끝까지 제게 그 프로젝트를 강요하셨고, 결국 저는 병원까지 입원하다 온 거 아닙니까?
장부장: 야, 김세평!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병원신세를 진 게 나 때문이라는 거야? 그리고 네 직급에 승진하려면 좀 무리해서라도 프로젝트 하나정도는 성과를 내야해!
김세평: 그런데 그 프로젝트는 말씀드렸다시피 저 혼자 진행하기엔 벅찼습니다.
장부장: 네 열정이 부족했던 거지! 열정적으로만 하면 되는 걸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너 승진하고 싶지 않아?
김세평: 부장님! 승진보다 제 간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꾸 열정을 말씀하시는데, 그럼 저한테 열정 수당이라도 좀 챙겨주시던가요! 열정수당도 안 주시면서 저한테 무슨 열정을 자꾸 요구하십니까?
장부장: 뭐? 열정수당? 김세평, 너 지금 미쳤어? 야, 이거 안 될 놈이네. 야, 네 팀장 오라고해! 당장 오라고해!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회사에서 열정다운 열정을 보였다. 그 열정은 바로 나를 지키기 위한 열정이었다. 아무튼 내 열정이 통했던지 부장님은 내 요구사항을 들어줬고 동시에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까지 났다. 말이 발령이지, 사실 쫓겨난 거나 다름없다.
며칠 뒤 나는 인사담당자의 연락을 받고 새로 발령이 난 곳을 확인했다. 어라? 새로 발령이 난 곳이 마침 백선배가 일하고 있는 팀이었다. 와우. 오랜만에 백선배와 같이 또 한 팀에서 일하게 되겠군!
직장생활 가운데 나를 지키기 위한 열정이 이렇게 내 안에 꿈틀거린 건 처음이었다. 이제 앞으로 회사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내 열정을 어떻게 보여줄지 정말 내 스스로도 기대된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백선배는 나를 새 부서의 부장님에게 인사시키러 데리고 갔다.
어라? 새로 발령받은 부서의 부장님도 첫 인사부터 내게 열정을 보이라고 요구하신다. 에? 이분은 심지어 초심까지도 말씀하신다. 아이고, 이번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저기, 새 과장님, 제게 열정수당과 초심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이상 제가 그런 것들을 보여드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럼 제게 열정수당을 주세요. 아니 당장 내놓으세요. 그것도 두둑하게!”
내가 이렇게 막 말하려는 걸 백선배가 간신히 내 입을 막았다. 그래, 일단 이번만은 넘어가겠지만(?) 만약 또 내 앞에서 열정이나 초심을 강요한다면 나는 또 나를 지키기 위한 열정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미래에서 온 김세평, 고맙다.
미래에 있을 내게도, 회사에서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열정을 응원한다.
- <직장선배 김세평> 제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