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노트12화] 몰입의 빛과 그림자

몰입관찰

by 민이


어? 벌써 세 시간이 지나갔네.

더 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이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아마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관심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일에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된다. 그 순간은 여러 행복의 호르몬이 어우러진 오케스트라 같기도 하다.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순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을 한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몰입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덜어주며 심리적 안정감까지 준다.



몰입 이론(Flow Theory)의 창시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도전과 능력이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는 상태(ego-loss)에 들어간다”라고 말한다. 이때 뇌에서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퍼즐을 맞출 때, 혹은 중요한 프로젝트에 매달릴 때 우리는 밥도 잊고 몰두한다. 심지어 자는 시간이 아까워 새벽까지 깨어 있을 때도 있다. 지루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혼자서도 충만한 시간이다.



나도 한때 칙센트미하이의 책 『몰입 Flow』를 읽었다. 그는 “몰입이 행복과 성취의 열쇠”라 말하며, 집중과 몰입이 학습과 성과를 크게 끌어올린다고 설명한다. 정말 그렇다. 깊은 몰입은 창의성과 전문성을 길러내고, 예술가·과학자·운동선수 같은 이들이 탁월한 성취를 이루는 비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몰입은 반드시 생산적인 과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때로는 사람에게도 몰입한다. 연인, 친구, 가족에게 지나치게 몰두하다 보면 문제도 생긴다. 상대방의 기분과 행동에 과도하게 집중하면서 자기 욕구를 뒷전으로 미루고, 연락이 줄거나 반응이 달라지면 불안과 집착에 휩싸인다. 결국 관계가 흔들리면 삶 전체가 흔들릴 위험도 있다.



물론 관계에 대한 깊은 몰입은 사랑과 신뢰를 키우는 힘이 된다. 다만, 그것은 ‘건강한 거리 두기’를 전제로 할 때 가장 아름답다.



그렇다면 몰입과 중독은 어떻게 다를까. 심리학에서는 ‘자율성 vs 강박’으로 구분한다. 내가 선택해 몰입하는 것은 건강하다. 하지만 외부의 보상이나 인정에 끌려 몰입한다면 그것은 중독이다.



삶 속에서 우리는 일과 관계, 흥미로운 활동에 몰두한다. 그런데 그 몰입이 나 자신을 잊게 만들면 위험해진다. 쇼펜하우어는 철학 연구에 몰입했지만 고립적인 성향으로 고독을 겪었고, 스티브 잡스 역시 세상을 바꾸었지만 동시에 사람들과 멀어졌다.



몰입은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닌다. 어떤 이에게는 천재성을, 또 어떤 이에게는 고독을 안긴다. 흔히 ‘성공과 행복의 비밀’이라는 빛만 강조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 그림자까지 함께 바라봐야 균형 잡힌 이해가 가능하다.



결국 몰입은 양날의 검과 같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날카로운 성취를 만들기도 하고, 자신을 베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몰입 속에서 나를 잊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더 깊이 만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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