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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노트14화] 전성기의 꽃봉우리

노년 인식

by 민이


“그러고 보니, 그때가 내 최고의 전성기였지.”

“어렸고, 활기찼고, 풋풋했지.”


우리는 가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젊은 날의 전성기를 떠올린다.

빛나던 외모, 최고조의 신체적 능력, 그리고 날카롭게 돌아가던 머리.

그 시절은 분명 ‘몸과 두뇌의 전성기’였다.


언니가 앨범을 펼치며 말한다.

“이야, 이때가 언제야. 내 리즈 시절이지~”


화창한 여름날, 바닷가 근처에서 빨간 비키니를 입은 언니의 사진이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썬글라스, 날렵한 몸매,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

지금의 푸근한 모습과는 다른, 젊음의 에너지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앨범을 넘기니 대학 시절 사진이 나왔다.

강의실에서 친구들과 그룹 토론 중인 장면.

언니는 큰 전지에 매직으로 주제를 적고 있었다.

장학금을 받으며 과 대표를 맡을 만큼, 리더십이 강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언니는 40대 중반, 아이 둘의 엄마다.

한때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았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머리도 굳은 것 같아. 예전처럼 잘 돌아가지 않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답답해졌다.

왜 사람들은 나이 든다는 걸 쓸쓸하게만 느낄까?


우리는 흔히 전성기를 ‘젊었을 때 잘나가던 시절’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전성기일 뿐이다.

진짜 전성기는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나답게 온전히 살아가는 순간’에 온다.


니체는 말했다.

전성기는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자기 초월의 순간이라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시점,

그것이 인생의 진짜 정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삶의 경험은 조각가가 이상적인 형상을 깎아내듯

자신을 다듬는 긴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유연함, 지구력, 문제 해결 능력이 자라난다.


MIT와 하버드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언어 능력·감정 조절·지혜는 40~60대에 절정을 이룬다.

즉, 인생의 전성기는 한 번만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봉우리가 지나가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는 산맥처럼,

우리는 인생의 여러 전성기를 오르내리며 살아간다.


스탠퍼드의 사회정서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 은

노년기를 ‘마음의 전성기’라 부른다.

자아 인식과 공감, 내적 평온이 깊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노년층이 젊은층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결국 나이가 든다는 건 단지 쇠퇴가 아니라,

지혜와 평온을 향해 성숙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몸은 예전만 못할지라도, 마음은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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