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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작_세 가지 노력

지난날을 되새기며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by 지감성장

15년 전 어느 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날 중학생 때 쓴 시를 다시 읽게 되었고 단순하고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도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책을 쓴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다 보면 쓸 수 있겠지’하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렇게 읽는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책에 몰입하기가 시작된 지 15년 차가 되는 거네요. 얼마 되지 않았네요. 갑자기 욕심이 납니다. 조금 더 오랜 세월 책을 사랑했다 증명하고 싶은 욕심이요.


꾸역꾸역 우겨볼게요. 부끄럽네요. 솔직한 마음 드러내기 가요. (푸하하 하하하)


책을 읽는 즐거움은 27년 전쯤 일터에서 지정도서로 독후감 같은 걸 써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그냥 앞으로 죽는 날까지 읽으며 살겠습니다.

첫 번째 노력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작가 되는 방법들이 있지요. 누군가는 책을 읽기부터 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도 합니다. 심지어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은 다르다고도 하죠. 저는 책을 쓰는 사람은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읽으며 쓰게 되고, 쓰며 책을 쓸 힘이 생겼으니까요.


이제 겨우 온전히 저의 이름으로 된 종이책 한 권, 참여해서 함께 쓴 종이책 두 권, 짧은 내용의 전자책 한 권쓴 제가 뭘 알아서 이러저러하다는 말을 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작가가 되기를 꿈을 꾸던 저의 지난날 어디쯤에서 시작되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은 되겠지’하고 남겨봅니다.


작가가 되기 전에 여러 작가의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글체를 찾았습니다. ‘이 작가님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닿는 책을 따로 보관하고 다시 읽으며 한 권을 정했습니다. 원고를 쓰면서 그 책을 여러 번 펼쳐 읽고 쓰고 했었습니다. 물론 어떻게 쓰건 출판사 편집장의 수정에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 나만의 글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책은 지금도 다시 읽기를 하고 가까이 두고 있습니다.


그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도 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그 책을 두 번째 필사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의미 없는 노동이라고 하지만 저는 의미가 없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필사하기로 얻게 되는 여러 유익점이 있으니까요.

두 번째 노력은 필사를 했지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 일 때가 있잖아요? ‘글을 쓰는 일이 그렇게 어렵더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말을 너무 잘해서 말하듯 글을 써보라고 하니 글로는 잘 써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말을 할 때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의 흐름을 타고 말을 하게 되는데 무언가를 글로 쓰려면 생각이 멈춰 버린데요. 아마도 글을 쓰는 규칙에 발목 잡히고, 쓰는 뇌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틀리는 것과 기록으로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쓸 수 없게 하는 거겠죠.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있습니다. 심리상담을 받고 그 상담사를 비판하는 글로 글쓰기가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마구마구 험담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싫더라고요. 그래서 쓰고는 잘근잘근 씹은 것처럼 찢었어요. 이런 글을 쓰면서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져요. 규칙, 도덕, 양심… 무엇도 필요 없어요. 아주 날 것의 욕구가 드러나는 글을 낙서하듯이 끄적이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 글쓰기가 반복되면서 글을 쓰는 두려움이 멀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노트에 글을 쓰고 찢지 않고 두게 되었어요. 그러다 이렇게 공유하는 글을 쓰기까지 용기가 생겼죠. 뻔뻔해진 거일지도 모르겠어요.


최근에 <료의 생각없는 생각>을 읽으면서 더 용기가 생기기도 했어요. 정확히 자유로워졌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료작가의 용감함에 감동했거든요. 솔직하게 제가 아주 많이 부족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료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이상의 <이상 소설 전집>이 생각나더라고요. 이상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반복해서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어요. 물론 이상 소설만큼은 아니었지만요.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만약 료 작가의 이루어놓은 배경이 없었다면 그래도 몇 개월 사이 13쇄의 기록이 만들어졌을까요? 뭐 배경이 만든 결과만은 아니겠지만요. 그 결과에는 여러 노력과 결과가 다시 결과를 만들게 되는 과정이 더해져 있었겠지요.


하여튼 글은 어떻게든 쓰기 시작하고 써야 합니다. 작가가 되려면 말이에요.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우리가 배운 글을 쓰는 규칙 같은 건 가까이하지 않기로 해요. 그냥 나답게 자유롭게 평소 말하는 말투처럼 쓰는 나만의 글투로 쓰는 거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요. 만약 뭐라고 해도 '그러든가 말든가'하면 되죠. 그건 니 생각이니까요.

압니다. '니'가 아니고, '네'라는 걸요. 내 안에서 '틀렸어'하고 말하면 이렇게 고치고 싶어 지죠.

이럴 때도 그냥 뻔뻔해지기로 해요.

세 번째 노력은 쓰고 또 쓰는 것입니다.


저의 작가의 시작은

1. 책을 읽고

2. 필사를 하고

3. 글을 쓰고 또 쓰는 것

이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하고 있어요.

정답 일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작가라면 하고 생각하면 읽고, 베끼고, 쓰는 것이 자꾸 떠올라요.

누군가는 읽지 않아도 잘 쓰고, 쓰지 않아도 잘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예요. 그건 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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